트럼프, 성과 내려 北 소통채널 복원할 듯
비핵화 어렵다 판단하면 '스몰 딜' 가능성
한반도 안보 악영향…주한미군도 손대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을 앞두고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이 거론된다. 안보마저 거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태도가 반영된 분석이다.
15일 외교가에 따르면 시기가 문제일 뿐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여러 차례 과시했고, 이미 2기 내각에 북·미 대화 경험 등을 갖춘 관료들을 중용했다.
'비핵화 어렵다' 판단하면 군축 협상 가능성
북한은 여전히 국제적으로 고립된 위치에 있다. 다만 트럼프 1기 때와 다른 주요 변수가 발생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핵탄두 소형화' 등을 내세울 만큼 고도의 발전을 거듭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군대를 파병하면서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배도 얻었다.
이 때문에 북·미 대화의 새로운 국면이 트럼프 당선인과 김정은 위원장 간 '나쁜 브로맨스'로 발현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단기적 성과를 내고자 하는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의 핵을 사실상 인정하는 수준의 위험한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트럼프는 '하노이 노 딜' 당시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했던 알렉스 웡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보좌관으로 승진시켜 불러들였다"며 "생각보다 더 이른 시점에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고, 이 경우 트럼프가 '스몰 딜' 카드를 꺼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스몰 딜은 말 그대로 작은 규모의 협상 내지는 거래를 뜻한다. 오랜 시간 공전해온 북한 비핵화 과제에 대해 '달성 불가'라는 판단을 내릴 경우 핵무기 동결 또는 군축 협상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반도가 아니라 미 본토에 대한 위협만이라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톱다운 방식의 의사결정을 선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은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 문제에서 '코리아 패싱'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전쟁 종식'을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러시아 파병 철수 여부 등을 협상 지렛대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안보도 거래 관점으로…방위비 분담금 시비
한국 입장에서 우려는 이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외교·안보 사안까지 거래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그는 선거 기간 동맹국을 상대로 방위비 증액 압박에 나섰는데, 취임 이후 이런 공세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가이드라인 2%보다 대폭 높아진 수치다. 동맹마저 비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셈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부터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에 비유하며,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약 14조원)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지난해 타결된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따라 2026년 적용될 한국의 분담금보다 9배 가까이 많은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 인상이라는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감축 카드까지 꺼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017년 그가 처음 집권했을 땐 한반도 정책을 수립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경험이 축적된 만큼 이번에는 각종 현안에 있어 '속도전'을 펼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2017년 6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방위비 증액 등을 본격적으로 요구했었다. 이번에는 이보다 더 이른 시점에 방위비 이슈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전망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당선인은 주한미군의 존재를 미국의 안보 이익으로 연결 짓지 않는다. 온전히 '남의 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미국의 젊은 군인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식의 인식을 여러 차례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4월 한 시사주간지 인터뷰에서 주한미군 철수 관련 질문을 받고 "(주한미군은) 위태로운 위치에 있다"며 "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방어하느냐"고 했다.
한반도 안보 직격탄…전문가들 "옵션 다양화"
오는 20일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한 뒤로도 한국은 당분간 탄핵 정국에 따른 '외교 공백'이 지속될 전망이다. 개인적 친분을 중시하는 트럼프 당선인을 상대하는 데 있어 보다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지만, 정상 외교가 불가능한 만큼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쌍중단'이라는 구체적인 우려를 제시했다. 한미 연합훈련과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부정적인 트럼프 당선인이 이를 북한의 ICBM 발사 및 핵실험 중단과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2018~2019년처럼 전격적인 회담을 추진하기보다 대화 채널부터 복원하려 할 것"이라며 "대화 초입부터 쌍중단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미 연합훈련 및 미 전략자산 전개의 중단은 곧 북핵 대응 능력의 약화를 뜻한다. 이는 다시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연계된다. 박 교수는 "트럼프는 미 본토가 안전해야 정치적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데, 북한이 핵 관련 합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다"며 "결국 비용의 문제다. 우리가 비용을 보전하는 대신 오히려 핵동맹을 강화하는 계기로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자체 핵무장 등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부분 비핵화와 제재 해제라는 '스몰 딜'에 나선다면, 이 과정에서 트럼프의 성향과 북한의 '두 국가론'에 따라 한국은 당연히 배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자체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 핵연료 재처리 기술 확보 등 다양한 옵션을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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