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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K와 재난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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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에서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는 K는 장사를 하면서 요즘처럼 어렵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최근 2년간 K는 악전고투했다. 그중에서도 지난 3~4월은 그가 가게 문을 연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학창 시절부터 30년 넘게 옆에서 지켜본 K는 어지간해선 어렵다고 얘기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삼수생으로 첫 수능 세대가 돼 한 해 두 차례나 수능시험을 치렀을 때도, 대학 졸업예정자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를 맞아 어렵사리 합격한 기업에서 입사 보류와 합격 취소 통보를 차례로 받았을 때도 K는 군말을 하지 않았다.


신입사원 시절 겁 없이 만든 신용카드 덕에 카드대란(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을 온몸으로 맞았고, 첫 내 집 마련의 기쁨을 느낄 틈도 없이 글로벌 금융 위기와 함께 찾아온 부동산시장의 침체는 꽤 오랜 시간 그의 어깨를 눌렀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차린 가게는 그럭저럭 K에게 안정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본사의 집요한 요구와 해마다 치솟는 임대료는 K에게 부자가 될 기회를 빼앗는 것 같았다. 장사가 잘되면 잘되었기에, 또는 잘 안 되어도 그런 사실에는 아랑곳없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설상가상 폭등한 최저임금 탓인지 섬광 같은 시간에 탈색된 것인지 K는 흰머리가 늘어갔고 탈모는 진도가 빨랐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대하는 K를 보고선 생소함을 느꼈다. 꽤나 진보적인 그였기에 K를 아는 친구들은 당황했다. K가 운영하는 가게 주변 기업들의 저녁 회식이 줄어든 변화는 자연스레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가게 손님들의 줄어든 발길과 법인카드 사용한도만큼 자영업자 K의 가세는 기울었다.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은 K에게 더 많은 시간의 노동을 요구했다. K에겐 주 40시간, 아니 주 52시간 노동이 없었고 최저임금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생산수단을 가지지 않은 '무늬만 자본가'였고, 이제는 보통명사 같은 '사장'이라는 이름의 '고독한 자영업자'가 바로 K였다. 언제부턴가 그는 스스로를 '자영업 노동자'라 부르며 자조했다.


그에게 결정타를 날린 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다. 지난해 12월 가게에서 '우한 폐렴' 보도를 볼 때 K도, 친구들도 남의 나라 얘기인 줄 알았다. 통계 확인이 습관성 일과가 된 것만큼 일상은 변했다. 비어 있는 시간이 더 많던 식당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 건 지난주부터라고 한다. 정부 대응과 방역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어느 정도 일상이 회복됐고,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불을 당겼다.

K도 처음엔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반대했다. 기본소득에 대한 특정 집단의 반감의 연장선에 있기도 했던 초기 재난지원금 논란은 K의 논리와 같았고, 애국적이었다. 일부에게만 준다하면 지급 대상 비율을 문제 삼았고, 전체를 거론하면 현금 살포니 돈 뿌리기니 해가며 나라 걱정을 먼저했다. 제 집 곳간이 든든한 고액 자산가는 성장을 걱정했고, 당장 먹고살 궁리를 해야 하는 서민들은 국가 부채를 염려했다.


그럼에도 며칠 전 만난 K에겐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막상 받고 보니 일단 숨통이 트이더라는 게 K의 얘기다. 극심한 가뭄이 오면 일단 충분한 비로 대지를 적셔줘야 한다. 응급환자는 먼저 살리고 봐야 한다. 종합검사를 받자거나 치료 방법을 토의하자는 건 환자를 살리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K의 미소에는 '4인 가족 100만원 한도'만큼의 유효기간이 있다. 유효기간 없는 이 땅의 K들의 웃음을 보고 싶은 주말이다.


김민진 중기벤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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