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2월도 ‘합창’의 시간이다. 서울시향은 지난 21-22일 지휘자 티에리 피셔와 ‘합창’을 했고 KBS교향악단은 27-28일 요엘 레비와 함께 한다. 정명훈 재임시절 서울시향 ‘합창’은 패키지 가운데 가장 먼저 매진되는 시리즈였고, 어느 악단이든 연말 ‘합창’은 효자 상품이다.
인류애를 노래하는 메시지의 강렬함으로 ‘합창’은 정치적 목적이 결부된 이벤트에도 자주 연주된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에 열린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의 공연에선 독일어 가사 ‘환희’(Freude)를 ‘자유’(Freiheit)로 바꿔 노래했고, 유럽연합(EU)은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를 가사로 사용한 마지막 악장 주제부를 ‘유럽의 노래’로 택했다. 요즘 들어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대전 종전행사에는 전쟁 당사국인 프랑스·독일 정상이 번갈아 불어와 독어로 유럽연합가를 부르고, 새로운 평화 시대를 기린다. 2011년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와 내한한 다니엘 바렌보임은 임진각에서 북쪽을 향해 ‘합창’을 연주했다. 향후 남북 공동 음악회가 성사된다면 ‘합창’이 연주되는 그림도 자연스럽다.
오늘날에도 베토벤과 ‘합창’이 높게 평가되는 근거는 작곡가의 도전 정신에 있다. 베토벤은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이 확립한 고전 교향곡 형식에 도전했고 더 나은 방식을 고민했다. 하이든 시절의 교향곡은 2개의 주제를 가진 소나타 형식의 1악장, 느린 템포의 2악장, 미뉴엣 타입의 춤곡이 결부된 3악장, 소나타 형식이나 다양한 멜로디가 나오는 론도가 개입된 4악장으로 규격화됐다. 언제 어떤 방향으로 악곡이 진행될지 예측이 가능한 교향곡의 흐름은 모차르트(1756-1791)의 41개 교향곡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소리가 교향곡에 들어온 점 외에도 ‘합창’은 여러 도전을 매개한다. 이전까지 악단의 최저음을 담당하는 ‘숨은 공로자’ 역할에 머물던 더블베이스에 솔로 파트를 부여했고, 첼로와 더블베이스에 ‘환희의 찬가’ 도입부를 맡였다. 베토벤 후대의 작곡가들은 ‘악성’(樂聖)의 노작을 넘기 위해 베를리오즈처럼 표제음악으로 이야기를 남기거나, 바그너처럼 오페라 성향의 관현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합창’을 경외하고 이에 신음하는 창작자의 순수한 마음에서 클래식의 역사는 진화했다.
20세기 베토벤 ‘합창’이 위력을 유지한 건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뱅글러의 몫이 크다. 1911년부터 ‘합창’을 꾸준히 지휘했고 1942년 히틀러 생일 전날에도 같은 곡을 지휘했다. 그러나 이날 공연에서 괴벨스와 악수하는 모습이 정치 선전에 이용된 이후 지휘자의 여생은 나치 부역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괴벨스는 2차 세계 대전을 ‘독일의 세계적 문화유산, 베토벤을 지키는 성전(聖戰)’으로 과장했다. 1951년 2차 대전 후 처음 열린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푸르트뱅글러는 ‘합창’으로 페스티벌 재개를 축하할 만큼 애정이 각별했다.
지휘자 펠릭스 바인가르트너는 영어 가사로 런던 심포니와 녹음했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합창’은 다양한 오디오·비디오 포맷으로 재생되어 오늘날까지 사랑받는다. 오늘날 CD의 재생시간이 74분으로 통일된 것도 카라얀의 ‘합창’을 음반 1장에 담기 위한 필립스의 결정에 따른다. 세계적 거장 지휘자라면 베토벤 교향곡 전곡(총 9곡)을 통해 업적을 남기려 하고 ‘합창’으로 정점을 찍는다. 지휘자가 바라보는 ‘합창’의 시각이 얼마나 다른지 초심자도 쉽게 익힐 수 있는, 살아있는 교재가 음반으로 널렸다.
21세기 ‘합창’ 열기가 유독 뜨거운 곳은 일본이다. 도쿄도 교향악단, 요미우리 심포니, 재팬 필하모닉이 성탄절에 ‘합창’을 연주했고, NHK교향악단을 비롯한 일본 전역의 오케스트라가 '다이쿠'(第九)의 이름으로 12월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환희의 찬가’를 올린다. 1943년 도쿄예술대에서 학도병을 출병을 격려하는 음악회에 ‘합창’이 연주됐고, 1947년 같은 곳에서 전몰 학도병 추도 행사에 ‘합창’이 쓰이면서, 숭고함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계속 이어진다.
2010년대 후반 들어 ‘합창’의 1등 소비국 일본이 ‘듣는 합창’에서 ‘직접 즐기는 합창’으로 본격 진화하고 있다. 프로 악단 뿐 아니라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합창단이 12월 ‘합창’ 공연 대열에 합류한지 근 이십 년째다. 일본에서 최초로 ‘합창’이 연주된 곳은 1918년 도쿠시마현 나루토에 차린 독일군 수용소다. 아베 정권은 대동아공영 시대의 향수에 매달리지만, ‘합창’ 연주 100주년을 맞은 일본 시민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평화를 노래하고자 한다.
2018년 송년 우리에게 ‘합창’의 의미는 무엇인가. 베를린 국립 도서관 소장의 자필 악보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 목록에 등재됐고 필사본은 2003년 소더비 경매에 출품되면서 ‘인류 최고의 예술 작품’으로 소개됐다. 이 좋은 것을 온전히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합창’이 권유하는 현대적 가르침은 타협이다. 테너, 베이스,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가 다른 성부의 소리를 듣고, 내 소리를 조율하면서 함께 노래해야 새 시대가 오는 걸 베토벤은 음악과 실러의 텍스트로 설파했다. “모든 이들은 형제가 되어라, 너희들의 온유한 날개가 머무는 곳에서”(Alle Menschen werden Brueder, Wo dein sanfter Fluegel weilt).
작곡가의 상상력과 지휘자의 독창적 해석, 연주자-오케스트라의 헌신과 관객의 몰입이 균형적으로 조화되어야 온전한 ‘합창’이 완성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합창’을 만들기까지 공공자원의 투입을 결정하는 정치권이 투자 대비 실질에 대한 허무한 계산 대신, 예술에 대한 비생산적 열정을 인정하는 포용의 자세다. 경매장에서 거래되는 고가 미술품은 낙찰자의 것이지만 베토벤 ‘합창’은 내 것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것이다.
객원기자ㆍ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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