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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사이언스빌리지]돼지껍데기에 숨은 비타민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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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 과학저술가

김병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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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이거 많이 먹으래~ 콜라겐이 풍부해서 피부에도 엄청 좋다더라.'

우리나라 국민이 즐겨 먹는 대표적인 회식 메뉴가 삼겹살인데, 최근 삼겹살을 먹고 후식처럼 주문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돼지껍데기'입니다. 껍데기는 겉을 감싸는 단단한 물질을 이르는 말이므로 옳은 표현은 돼지껍질이 맞지만 이미 껍데기는 고유명으로 고착됐지요. 한때 중년 남성의 전용 술안주였던 이 음식은 이제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건강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껍데기에 콜라겐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일부러 챙겨 먹는 음식이 됐죠. 피부에 좋으니 많이 먹으라는 말은 사실일까요? 콜라겐이 몸에 좋은 것은 맞지만 꼭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질문이 생깁니다. 오늘은 콜라겐이 가진 비밀과 이 물질과는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익숙한 화학물질 하나를 꺼내 보겠습니다.
콜라겐 유행은 돼지껍질뿐만이 아닙니다. 팩과 같은 미용 제품은 물론 식품과 건강보조제에도 넘쳐 나고 있습니다. 콜라겐이 세포와 조직을 단단하게 해서 피부를 탄력 있게 만든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능이 피부 탄력에 그친다면 이 물질이 다소 부족해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콜라겐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인체에 중요한 물질입니다. 뼈의 주성분이 칼슘과 인산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단단한 콜라겐 틀에 이런 성분이 채워져 있습니다. 마치 건축물처럼 식물 세포벽은 셀룰로오스로, 동물은 콜라겐이 중력을 버티게 하는 겁니다. 우리 몸의 단백질 중 무려 30%가량이 콜라겐이라면 이해가 될 겁니다. 그리고 콜라겐은 고대 이집트 때부터 접착제로 사용할 만큼 붙이는 기능이 탁월해 '세포 간 시멘트'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포는 물론 조직과 인체 기관을 붙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형태에 따라 많은 종류의 콜라겐은 세포는 물론 근육이나 인대, 피부조직에 존재하고 연골이나 뼈에 기초가 됩니다. 콜라겐이 모자라면 결합조직에 문제가 생기고 미생물이나 감기와 같은 감염성 질환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콜라겐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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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콜라겐을 먹으면 좋을까요? 화학적으로 콜라겐 분자는 거대한 섬유 단백질입니다. 그러니까 인체는 어떤 경로로도 콜라겐을 직접 흡수할 수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몸으로 들어온 콜라겐 단백질은 소화기관을 통과하며 아미노산으로 분해된 후에 흡수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분해된 아미노산을 다시 조합해서 필요한 콜라겐을 합성하는 것이지요. 결국, 콜라겐을 만드는 재료는 콜라겐만이 아닌 겁니다. 중요한 사실은 콜라겐 재료인 아미노산이나 촉매 혹은 효소가 몸에 충분히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단백질을 많이 먹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요? 여기에 또 다른 화학물질 하나가 필요합니다. 바로 비타민입니다. 콜라겐 이야기에 뜬금없이 비타민을 꺼낸다는 것은 분명 둘 사이에 중요한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콜라겐 단백질을 조금 더 깊게 공부해 보겠습니다. 콜라겐은 기본적으로 글리신, 라이신, 프톨린이라는 세 가지 아미노산 재료로 구성됩니다. 이 재료는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등을 섭취해 세포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유전자가 단백질 생성을 위해 번역이 일어난 후 콜라겐이 바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아미노산의 특정 위치가 변신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라이신에 특정 부분이 수소와 산소로 치환되고 하이드록실라이신으로 바뀝니다. 변신한 아미노산들이 수소결합으로 뭉치면서 단단한 콜라겐 구조체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 변신 과정에서 비타민이 깊숙하게 관여합니다. 레티놀이란 이름의 비타민A도 관련되지만, 특히 비타민C가 담당합니다. 그러니까 비타민C가 없으면 우리 몸은 콜라겐을 제대로 만들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비타민C 부족으로 인한 초기 증상은 잇몸에서 피가 자주 나고 손톱 위 피부가 벗겨지기도 하고 면역력 저하로 감기에 잘 걸린다는 겁니다. 이런 증상은 피부세포와 혈관 조직이 약해지고 면역기능이 떨어진 겁니다. 사실 직접적 원인은 콜라겐 부족이라고 해야 합니다. 물론 다른 재료의 부족도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현대인들에게 단백질이나 탄수화물과 같은 영양소는 이미 충분해서 아미노산이나 효소 합성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몸은 비타민C를 합성할 수가 없어서 따로 외부에서 공급받아야 합니다.

얼베르트 센트죄르지

얼베르트 센트죄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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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인류가 이렇게 중요한 물질을 스스로 합성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진화했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닙니다. 진화학자들은 영장류가 진화 중에 식물과 과일을 섭취하기 시작한 어느 단계부터 비타민C를 합성하는 능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주장은 비타민C 합성에 필요한 포도당의 상실입니다. 포도당은 뇌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뇌가 커지면서 비타민C 합성능력은 포도당을 뇌에 양보했다고 합니다. 상실의 원인이 뭐가 됐든 결과적으로 인간은 비타민C를 외부로부터 섭취해야 한다는 겁니다.

인류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18세기입니다. 당시 영국 해군 함대는 2000명의 선원을 태우고 세계 일주를 했고 선원 중 절반 이상이 괴혈병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생깁니다. 영토 확장을 거듭하던 해군 강국에 괴혈병 치료나 예방법을 찾는 일은 무척 중요했지요. 여러 실험을 통해 레몬이나 라임 주스가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효력을 발생시키는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실험은 근대 통계 의학의 시초라 할 정도로 많았지만, 인류는 그 효력이 있는 물질의 존재 외에는 알지 못했지요. 이 숙제는 20세기 초에 풀립니다. 1920년 말 헝가리 생화학자 얼베르트 센트죄르지가 식물의 즙으로 부터 헥수론산(hexuronic acid)이라는 화합물을 분리했고 괴혈병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는 탄수화물 구조를 연구하던 영국의 화학자 노먼 하워스를 찾아갔고 구조를 분석한 결과 헥수론산이 당에서 추출한 산과 화학적으로 유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워스는 비타민C의 구조를 밝혔고 헥수론산의 이름을 아스코르브산으로 바꿨지요. 아스코르브산은 비타민C의 화학명입니다. 그는 1933년에 탄수화물로부터 비타민C를 합성해냅니다. 그 후 핵심 합성 기술을 개발한 폴란드 화학자 타데우시 라이히슈타인의 공정 특허를 사들인 호프만 라로슈이라는 기업이 합성 비타민C를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인류에게 손쉽게 비타민C를 공급한 기여로 1937년에 센트죄르 지는 노벨생리학상을 받고 노만 하워스는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됩니다. 영국이 비타민C 의 대표적인 공급 국가로 자리 잡은 이유입니다.

아스코르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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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비타민C를 꼭 챙겨 먹어야 할까요? 사실 현대인의 먹거리에서 비타민C 부족을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식단에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가 많았다면 보충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제 천연과 합성이란 오해와 섭취용량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합성비타민은 마치 화학물질 취급을 받고 심지어 합성 비타민C가 포함된 음료에서 벤젠이 나오면서 오해와 공포가 깊어집니다. 사실 비타민C의 구조와 생성과정은 무척 간단합니다. 추출 방식과 원료 종류에서 차이가 날 뿐 천연과 합성의 차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비타민C를 흡수한 인체는 천연과 합성을 구별조차 못 합니다. 소비자들을 케모포비아로 옮긴 비타민 음료 한 병에 들어 있는 벤젠의 양은 바나나를 먹어도 섭취되는 양이지요. 이쯤 되면 우리가 얼마나 천연과 합성의 함정에 빠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섭취 용량도 제각각입니다. 물론 지용성 비타민과 달리 수용성인 비타민C의 경우 일정량 이상 섭취하면 나머지는 배출됩니다. 하지만 우리 몸이 하루 권장량을 정확히 채우고 나머지를 버리지 않습니다. 과유불급이란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많아지면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상처에 흉터가 잘 생기는 것도 콜라겐의 과잉 합성이고 간이나 폐의 섬유화 같은 질환도 콜라겐 과잉이 증상을 가속시킵니다. 여기에 비타민C도 기여를 했을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유치원 다닐 나이에 배웠습니다. 음식은 편식하지 말고 적당량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지요. 우리 주변은 과학을 앞세워 변장한 지식이 파편처럼 널렸습니다. 건강에 관심이 커진 현대인에게 유혹은 깊게 파고듭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정작 어릴 때 배운 중요한 진실을 잊고 있지요. 어느덧 집안에는 콜라겐 같은 건강 보조 제품이 쌓여 갑니다. 먹거리가 넘쳐 좀처럼 영양 부족을 찾기 어려운 현대인에게 꼭 필요했을까요? 아니면 다른 형태의 잉여와 편식일까요? 세상이 과학적으로 유혹한다면 우리도 과학적으로 세상에 대응해야 합니다. 과학적 사고는 과학으로 설명된 사실을 무작정 공부하고 흡수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고 밝히며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김병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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