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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의 건강맛집] '곰보추탕' - 미꾸라지 노니는 양지육수 뚝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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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의 건강맛집] '곰보추탕' - 미꾸라지 노니는 양지육수 뚝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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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먼저 어휘 정리부터 할 필요가 있겠다. 미꾸라지와 미꾸리 그리고 추어탕과 추탕. 미꾸라지(Chinese Weatherfish)와 미꾸리(Oriental Weatherfish) 모두 잉어목 기름종개과의 민물고기지만, 생김새는 다소 다르다. 미꾸리는 미꾸라지보다 몸과 수염의 길이가 짧다. 또한 미꾸리는 전체적으로 몸이 둥근 반면, 미꾸라지의 몸통은 세로로 납작해 동그리ㆍ납재기라는 방언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제 추어탕과 추탕 차례다. 추어탕은 미꾸라지 혹은 미꾸리로 끓이는 여름의 대표적인 보양 음식이다. 하지만 요즘 미꾸리 추어탕을 먹기는 쉽지 않다. 자연산 미꾸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미꾸라지에 비해 양식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추어탕을 끓이는 방식은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크게는 서울식을 추탕으로 부르고, 남도식을 대개 추어탕으로 칭한다. 미꾸라지를 통째 넣어 끓이는 서울식과는 달리 남도식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삶아서 갈아 넣는다.


미꾸라지는 서민의 대표적인 식재료 중 하나로 꼽히지만 실상은 역사와 전통이 꽤 깊은 '귀하신 몸'이다. 갈치, 꽁치, 가물치, 멸치 등 다분히 '멸시'의 의미가 담긴 여느 생선들과는 달리 미꾸라지는 '추어(鰍魚)'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는다. 가을 추(秋), 고기 어(魚), 그러니까 가을을 대표하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미꾸라지를 언급한 과거 사료들도 여럿 발견된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미꾸라지를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속을 보하고 설사를 멈추며 주독을 푼다"고 설명했으며, 조선 고종 대의 명의 황필수가 집필한 방약합편(方藥合編)은 "맛은 달고 성은 평하다. 기를 더하고 주독을 풀고 당뇨병을 다스리며 위를 따뜻하게 한다"고 미꾸라지를 극찬하기도 했다.


[아시아경제의 건강맛집] '곰보추탕' - 미꾸라지 노니는 양지육수 뚝배기 원본보기 아이콘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대광고등학교 주변에 위치한 '곰보추탕'은 추어탕을 서울식으로 끓여내는 미꾸라지 전문 식당이다. '곰보추탕'의 메뉴는 소박하다. 추탕과 미꾸라지 튀김 이렇게 딱 두 종류다. 우거지를 넣고 된장 국물 베이스에 요리해낸 남도식 추어탕과는 달리 '곰보추탕'은 우거지를 뺀 각종 채소와 고추장을 넣어 얼큰한 서울식 추탕을 낸다. 쇠고기 양지머리를 푹 고아 국물을 내 육개장 느낌이 강한 빨갛고 진한 국물이 근사하다. 채소와 부재료도 듬뿍 들어간다. 조미료를 대신해 단 맛을 내는 늙은호박에 느타리버섯, 두부, 호박, 고추장, 고춧가루, 밀가루, 유부, 대파, 양파, 계란, 마늘, 생강, 소금, 후추 등 14가지 재료가 적재적소에서 맛을 낸다.


조리법은 한결같다. '곰보추탕'은 예전 방식 그대로 미꾸라지를 직접 손질하고 모든 재료를 일일이 저울에 달아서 사용한다. 양지머리를 푹 삶은 육수에 채소를 넣고 끓인 뒤 한번 쪄낸 미꾸라지를 나중에 넣는다. 미꾸라지가 무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조리법이 한결같으니 맛도 저절로 따라온다.


[아시아경제의 건강맛집] '곰보추탕' - 미꾸라지 노니는 양지육수 뚝배기 원본보기 아이콘


'곰보추탕'에서 맛본 추탕의 미꾸라지는 검지 손가락 정도 크기로 한입에 먹기에 불편함이나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한 숟가락 크게 떠 입안에 넣자 깔끔한 국물 맛과 함께 부드러운 살코기가 입 속에 녹아 들었다. 뼈도 전혀 억세지 않아 가만히 씹으니 고소했고 묘한 식감이 식욕을 자극했다. 쇠고기 양지 육수를 기본으로 된장이 아닌 고추장을 넣고 끓인 육수는 육개장처럼 개운한 맛을 냈다. 곁들어 들어있는 채소들도 단출했지만 각각의 맛이 살아 있었다. 두부와 유부는 담백한 육수와 잘 어울렸다. 채소들 중 식감의 일품은 의외로 늙은호박이었는데 달달한 감칠맛이 자칫 미꾸라지의 비린내를 잡아 주고 풍미를 더했다. 또한 무미(無味) 한 튀김옷을 묻혀 기름에 튀긴 다른 곳의 미꾸라지 튀김과는 달리 '곰보추탕'에서 내는 미꾸라지 튀김은 튀김옷에도 색색 가지 채소와 양념을 첨가해 두 번 기름에 튀겨낸다. 따로 양념 간장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간은 적당했으며, '반건조 오징어' 느낌의 미꾸라지에서는 비린내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곰보추탕'에 들어섰을 때부터 아니 택시에서 내려 안암천 변 동네에 들어섰을 때부터 21세기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이 아닌 70~80년대의 빛바랜 사진 속 언제쯤으로 온 듯 했다. '곰보추탕'의 추탕은 추억 그 자체였다.


우리집은 // '곰보추탕' 조명숙 사장


"나이를 먹으니 몸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져서 이제 식당을 접고 쉬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30~40년 꾸준히 식당을 찾는 단골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집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이리로 달려와 뚝딱 추탕 한 그릇을 비우는 손님들을 보면 내가 계속 식당을 해야한다는 하는 의무감을 느껴요."


'곰보추탕'이 서울 용두동 안암천 변에 자리한지는 벌써 70년째다. '곰보추탕'의 주인 조명숙(70) 씨는 20대에 시집을 와서 시아버지가 하던 추탕 장사를 물려받았다. (시아버지가 얼굴이 얽은 '곰보'여서 식당 이름이 '곰보추탕'이라고 한다) '곰보추탕'은 2대에 걸쳐 45년째 서울에서는 접하기 힘든 추탕 요리만을 고집한다. 미꾸라지는 중국산이 아닌 국내산만을 쓴다. 3배 이상의 가격 차이가 나지만, 수입산이 뼈가 억센 반면 국내산 미꾸라지는 몸이 동글동글하고 살이 많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요리하기 때문에 잇몸에 상처를 낼 수도 있는 수입산은 절대 쓰지 않는다. '곰보추탕'의 철칙이다.


'곰보추탕'은 예전에는 여러 주방장을 두고 영업할 정도로 '잘' 나갔지만, 현재는 조사장이 주방장 없이 홀로 '곰보추탕'을 운영한다. 분점을 내자는 혹은 식당을 다른 곳으로 확장ㆍ이전하자는 유혹의 손길도 많았다. 하지만 조사장은 모두 거절했다. 가장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예전 방식 그대로 추탕을 만드는 '곰보추탕'의 '고리짝' 방식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추탕을 별로 좋아하지 않죠. 하지만 한 번 먹으면 꼭 다시 찾아오게 됩니다. 추탕 맛을 절대 잊을 수가 없거든요." 조사장의 말에서 '장인(匠人)'의 고고한 자부심이 절로 느껴지는 것 같다.


자문위원은//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은미


미꾸라지는 땀을 많이 흘려 몸이 허해지는 여름에 기력을 보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대표 식품이다. 미꾸라지는 겨울에는 먹이를 먹지 않고 동면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 기름기가 빠져서 맛이 별로다. 하지만 산란기를 앞둔 봄에는 먹이를 많이 먹고 살과 기름기가 오르므로, 8월부터 10월 말까지가 미꾸라지를 '득템'하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미꾸라지에는 단백질과 칼슘과 비타민AㆍB2ㆍD가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비타민E는 동량 쇠고기의 무려 20배가 들어있다. 지방 함량이 높지만 대부분이 고급불포화지방산인 탓에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비만환자에게도 적합한 식재료다. 또한 위궤양을 방지해주는 뮤신(mucin)이 들어있어 강한 살균 작용 효과가 있으므로 위장과 간의 기능이 허약한 사람에게 좋으며, 발기부전과 불능 치료에도 좋아 장어와 함께 남성들이 '환장'하는 스태미나 식품의 왕이다.


'곰보추탕'의 추탕은 미꾸라지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뼈와 내장을 포함한 전부를 다 먹을 수 있어 좋다. 내장 중 알과 난소에 포함된 비타민 A와 D를 온전히 섭취할 수 있어 야맹증 치료와 성장기 어린이의 뼈 형성에 특효가 있다.




백승관·태상준 기자 jokonly@
사진_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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