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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모의 酒저리]예산사과와인, '추사' 이름 걸고 '불가유이'한 술 꿈꾸다

최종수정 2022.11.25 18:00 기사입력 2022.11.25 18:00

<6> 충남 예산 '예산사과와인'①

예산 사과로 만든 브랜디 '추사40' 오크통 숙성으로 풍미 더해
희석식 소주 대항해 만든 '추사백'… 증류식 소주의 접근성 높여
술 공장 아닌 다양한 문화·체험 요소 더해진 유럽식 와이너리 지향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가 레이블에 사용된 예산사과와인의 '추사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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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구은모 기자] “난초 꽃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뜻하지 않게 깊은 마음속의 하늘을 그려냈다. 문을 닫고 마음 깊은 곳을 찾아보니 이것이 바로 유마힐(維摩詰)의 불이선(不二禪)이다.”


조선 말기의 문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말년에 북청 유배시절부터 시중을 들던 달준을 위해 난초 그림 한 점을 그린다. 그림이 매우 마음에 들었던 추사는 인도의 현인(賢人) 유마힐이 침묵으로 깨달은 선의 경지같이 자신의 난초 그림이 뛰어나다고 적고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라는 이름을 붙인다.

난초 특유의 곡선미는 보이지 않고 거칠며 연약한 듯 보이기도 하는 불이선란도의 난초는 이전의 어떤 난초와도 차별화되는 독창적인 난초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추사 스스로도 “단지 하나는 있을 수 있으나 둘은 있을 수 없다”며 “지가유일 불가유이(只可有一 不可有二)”라고 평했다.


김정희는 추사체를 완성한 인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추사체는 김정희가 중국 문필가들의 글씨체를 연구하고 장점을 모아 확립한 독자적인 서체다. 중국의 서체를 토대로 시작했지만 단순히 모방에 그치지 않고 연구와 응용을 거듭해 전에 없던 독차적인 서체를 선보인 것인데, 그와 그의 글씨가 지금까지도 높게 평가받는 이유다.

예산사과와인 사과밭에서 사과수확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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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서 맛본 농업의 가능성… 와이너리 설립으로 이어지다

추사의 고향인 충남 예산에서 추사의 이름을 걸고 불가유이한 술을 꿈꾸며 나아가는 양조장이 있다. 서양에서 유래한 술이지만 그 술을 우리 땅에서 우리 농산물로 우리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빚어가는 곳, ‘예산사과와인’이다.


예산사과와인이 문을 연 건 2008년이지만 와이너리 이야기의 시작은 이십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12월, 대학생이던 정제민 예산사과와인 부사장은 가족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새로운 땅에서 정 부사장을 사로잡은 건 와인 그리고 와인을 품고 있는 와이너리였다. 이전까지 막걸리와 소주 외에 다른 술을 마실 기회가 거의 없었던 그에게 와인과 와이너리는 말 그대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정 부사장은 “그곳에서 와이너리는 단순한 술 공장이 아닌 농업을 기반으로 가공과 체험관광이 더해진 요즘 말로 6차 산업의 현장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포도밭에 아름다운 건물을 지어놓고 레스토랑과 체험관광을 운영하고,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센터의 역할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농업이 이렇게 멋지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과 흥미로움을 느꼈다”며 “한국에 돌아가면 이러한 스타일로 농사를 지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와인에 빠져든 지 13년, 정 부사장은 이민생활을 정리하고 2002년 한국으로 돌아온다. 귀국 직후 곧바로 양조 사업에 뛰어든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이민·유학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며 사무실 한켠에 와인 공방을 차리고 와인 동호회를 조직해 취미 삼아 와인을 만들었다. 회원들과 복분자 철에는 고창으로, 포도 철에는 영동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와인을 만들었다.


너무나 즐거웠던 시절이었지만 취미에 그치기에는 못내 아쉬웠다. 정 부사장은 결국 자신만의 술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장인이 운영하는 사과밭 한쪽에 와이너리 건물을 세우고 술을 빚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부터 품어왔던 오래된 꿈이었다.


처음부터 사과로 술을 빚을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와 보니 양조에 사용할 포도가 마땅치 않았다. 한국에서 많이 기르고 소비되는 캠벨이나 거봉 등의 품종은 양조에 적합하지 않았고,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자니 기후조건도 맞지 않고 포도나무를 길러 술을 담그기까진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고민이 깊어지던 차에 정 부사장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장인이 예산에서 농사짓는 사과였다. 정 부사장의 장인인 서정학 은성농원 대표는 1987년부터 예산 고덕면에 터를 잡고 사과농사에 평생을 바쳤다. 서 대표는 이탈리아 티롤 지방 등을 돌아다니며 은성농원에 유럽식 사과밭 스타일을 적용했다. 과거 일본식 사과밭은 가지가 옆으로 많이 퍼져 한 그루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었다. 하지만 유럽식 밀식재배는 줄간 간격은 넓고 주간 간격은 좁게 구성해 일조량이 고르고 기계화에 용이해 생산량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약 1만평 규모의 은성농원에선 매년 35~50톤가량의 사과가 재배되는데, 직접 재배한 사과에 예산지역에서 수매한 사과를 더해 양조에 사용하고 있다. 예산사과와인은 지난해 150톤가량의 사과를 양조에 사용했고, 올해는 300톤가량으로 사용물량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정 부사장은 “사과는 생식용과 양조용의 품질 기준이 다르다”며 “신맛과 떫은맛이 강한 사과는 양조용으로 사용하고, 완숙되고 당도가 높은 사과는 생과용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사 40' 증류에 사용되는 상압 다단식 동 증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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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사과향에 그윽한 오크향 더해진 사과 증류주 ‘추사 40’

‘추사 40’은 예산사과와인의 얼굴 같은 제품이다. 추사 40은 프랑스 노르망디의 깔바도스와 같은 사과 브랜디로, 가을을 대표하는 사과로 가을의 이야기와 맛을 담아낸 술이란 뜻에서 추사로 이름 붙였다. 여기에 추사 김정희의 고향인 예산 사과를 사용한 것도 추사라는 이름을 선택하게 된 배경이 됐다. 추사 40의 병 레이블에 담긴 그림 역시 김정희의 불이선란도다.


추사 40은 100% 사과만을 착즙해 발효한 후 다단식 동 증류기로 증류해 오크통에 숙성한 제품이다. 추사 40에는 예산지역에서 수확한 부사와 홍로, 감홍, 아리수 등 다양한 품종의 사과가 들어가는데, 정 부사장은 “깔바도스를 비롯해 사과 증류주는 복합적인 향과 맛을 위해 여러 품종의 사과를 블렌딩해 만든다”고 설명했다.


선별된 양질의 사과가 입고되면 깨끗이 세척해 파쇄하고 착즙한다. 착즙한 사과즙을 효모와 함께 발효시키면 도수 7~8도(%)의 사과와인 형태의 원주가 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원주는 다시 상압 다단식 동 증류기를 통해 증류 과정을 거친다. 정 부사장은 “보통 꼬냑이나 위스키는 상압 단식 동 증류기로 두 번 증류하는 반면 우리는 타워가 높은 다단식 증류기를 사용해 한 번의 증류로 고농도의 알코올을 뽑아내고 있다”며 “사과 1톤을 착즙해 와인을 만들면 보통 700리터 가량이 생산되고, 이걸 증류하면 최종적으로 70리터 정도의 증류주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상압증류로 뽑아낸 증류주는 오크통 숙성을 통해 맛과 향을 가다듬고, 이후 정제수를 타 40도로 도수를 조정한 뒤 다시 한 번 두 달 가량 숙성을 거쳐 병입한 뒤 판매된다. 추사 40은 포르투갈에서 제작된 프렌치 리컨디션드 오크통을 사용하며 1~3년 숙성 원액을 블렌딩해 판매하고 있다. 정 부사장은 “아직 성장하는 단계인 만큼 3년 숙성 원액을 공급하기도 버거운 상황이지만 지금처럼 성장세를 이어가고 양조하는 술이 늘어난다면 고숙성 제품과 캐스크 스트렝스 제품 등도 자연스럽게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사 40과 함께 예산사과와인을 떠받치고 있는 술이 ‘추사백’이다. 추사에 흰 백(白)자를 더한 추사백은 오크통 숙성을 해 호박색을 띠는 추사 40과는 달리 스테인리스통에서 3개월가량 숙성만 거쳐 맑고 투명한 색을 띤다. 추사백은 상압증류를 하는 추사 40과는 다르게 55도에서 감압증류를 한다. 상압증류를 하면 원재료의 풍미는 진하게 묻어나지만 상대적으로 거칠어 숙성기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감압증류는 저온에서 증류해 숙성하지 않아도 부드럽고 깔끔한 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정 부사장은 추사백은 가격이 중요한 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추사백은 희석식 소주에 대항해 주정과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대중적인 상품으로 기획한 제품”이라며 “상대적으로 가격을 낮춰 젊은 소비자들도 쉽게 증류식 소주의 장점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사과 브랜디 '추사40'의 원액이 저장돼 있는 오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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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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