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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인조의 길을 걸을 것인가

최종수정 2019.08.14 11:32 기사입력 2019.08.0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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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에 있는 남한산성 도립공원.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은 주말이면 등산객들로 붐빈다. 비교적 야트막한 산길을 따라 잘 정비된 성곽과 등산로, 우거진 수목은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의 심신을 맑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남한산성이 인기인 이유는 이 같은 외적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산성길을 걸으며 만나는 곳곳의 유적들은 우리에게 병자호란의 뼈아픈 교훈을 되새기게 해준다.


1636년 후금에서 청(淸)으로 국호를 개명한 청태종이 조선을 침략한다. 인조는 급히 남한한성으로 피신해 이곳에서 청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청의 고립 작전과 모진 겨울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43일 만에 항복했다. 잘 알려진 삼전도의 치욕이다. 이때 조정 대신은 각각 최명길과 김상헌을 위시한 주화파와 척화파로 나뉘어 격렬히 대립했다. 인조는 그 사이에서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번민을 거듭했다. 소설가 김훈은 당시 상황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소설 남한산성을 지었다. 소설 남한산성은 2017년 영화로도 제작됐다.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과 한국 정부의 대응을 당시 상황과 빗대어 이야기하는 이가 많다. 그런데 각자 처지에 따라 보는 각도가 다른 듯하다. 어떤 이는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결사항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그런 이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한 지난 2일 브리핑에서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싸워본 나라는 다시 일어나도 싸우지도 않고 항복한 나라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는 명언을 인용하며 결전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병자호란이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은 '명분보다는 실리'에 있다.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근본 원인은 당시 배명사상에 물들어있던 성리학자들이 청나라를 '오랑캐'라며 배척했기 때문이다. 최명길을 비롯한 주화파들은 국력을 급격히 키우고 있는 청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척화파들은 군신 관계를 요구하는 청나라의 요구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서 싸울 것을 주장했다. 인조는 척화파의 친명반청 정책에 동조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전쟁 준비도 없이 청나라와 맞섰던 조선은 싸움이 시작되자 곧바로 허물어졌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떠안아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 여당은 지금 일본과의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다. 지난 4일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장 뒤편에 걸린 현수막에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다릅니다. 다시는 지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한국의 대화 요구를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일본을 상대하는 청와대와 정부는 굴욕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단지 명분만 내세워 일본과 경제 전면전을 치르겠다고 나서는 것 또한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과연 전쟁을 치를 준비가 돼 있는지부터 점검하는 게 맞다. 일본은 지난해 말부터 치밀하게 이번 경제보복을 준비해왔다.

김현종 2차장이 인용한 처칠의 말은 무모한 전쟁도 불사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처칠도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의 도움이 없었다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처칠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동안의 고립주의 원칙을 깨고 1941년 무기대여법을 제정, 연합군에 무기를 빌려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일본과 벌일 경제전쟁에서 우리에게 힘을 보탤 우군이 있는가?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우리를 도울 만한 친구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 러시아는 한일 간 벌어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중재에 나섰지만 시늉에 그쳤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을 쏘아올리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동북아, 더 나아가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은 고립돼 있는 상황이다. 마치 남한산성에 갇혀있는 인조처럼 말이다.




강희종 경제부장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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