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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미국의 부자와 한국의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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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김봉수 특파원] 미국 뉴욕 거주 한인들 사이에 회자되는 얘기가 하나 있다. 뉴욕 시민들에게는 수돗물이 공짜인데, 이는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가 세운 록펠러재단이 상수도 시설 설치와 관리 요금을 부담하고 있는 덕분이라는 것이다. 일부 교포들이나 저서들을 통해 널리 퍼져 있지만, 요즘 표현으로 '가짜뉴스'다. 뉴욕시 홈페이지에만 들어 가봐도 상하수도 요금을 징수하는 코너가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징수 규정에 따르면 뉴욕시 거주자들은 지난해 7월1일 현재 100큐빅피트(약 2831ℓ) 당 3.9달러의 수도 요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도 이 같은 '가짜 뉴스'가 널리 퍼진 이유는 뭘까. 현지인들에 따르면 일단 뉴욕시 거주자들의 상당수가 임대 생활자라는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집을 계약할 때 수도 요금을 집 주인이 부담하는 경우도 있어 세입자 입장에선 '공짜'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세입자 부담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저런 공과금까지 한꺼번에 묶어서 월 임대료에 포함시키는 경우엔 세입자로선 일일이 알 수가 없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일상적인 미국 부자들의 기부 문화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미국은 유독 기부에 공을 들이는 부자가 많다. 예컨대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워싱턴DC 한복판에 늘어선 항공우주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등 17개 스미소니언 박물관 입장료가 '무료'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 박물관들은 국공립이 아니지만 영국 과학자 제임스 스미손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미국민들은 '어떤 억만장자가 얼마를 기부했다'는 뉴스에 익숙하다.


록펠러만 해도 공짜 수도를 제공하진 않았지만 기부 천사로 유명하다. 19세기 말 뉴욕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주급 4달러짜리 회계원으로 시작해 미국 석유 생산량의 95%를 주무른 그는 억만장자가 된 후에는 자신의 재산을 쉼 없이 이곳저곳에 내놓았다. 1913년 그가 설립한 록펠러 재단은 현재까지 20억달러가 넘는 장학금을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제공했다. 록펠러가 생전 기부한 돈은 약 5억3000만달러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280억달러(약 145조원)에 달한다.


록펠러와 동시대의 라이벌들이었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금융왕' 존 피어폰 모건 등도 기부로는 뒤지지 않았다. 카네기는 공공도서관 설립을 위한 카네기협회를 만들고 수많은 대학ㆍ미술관 등을 지어 기부하는 등 일생 동안 자신이 모은 돈의 90%인 3억6500만달러를 내놓았다. 모건도 말년에 학교, 교회, 자선사업 등에 엄청난 기부를 했고, 뉴욕의 명소 중 하나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세우기도 했다.

미국 부자들의 기부 전통은 요즘도 계속되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마이클 델 델컴퓨터 창업자 등이 지난해 미국 고액 기부자 상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미국의 억만장자 19명이 2020 대선 후보들을 향해 "나도 (불평등 같은 사회)문제의 일부"라며 부유세 부과를 촉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미국 억만장자들의 기부 전통을 '인정욕구'로 진단하는 이들도 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그의 저작 '왜 미국 부자들은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는가?'에서 카네기를 예로 들면서 "최고의 부자가 되는 인정 욕구를 충족시킨 뒤엔 그 돈을 남을 위해 정승같이 씀으로써 또 한번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킨다"고 말했다. 구교도들의 탄압을 피해 유럽에서 건너 와 신대륙을 개척한 신교도들 사이에 '십일조'를 강조하는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까닭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기업가들 중에도 물론 기부왕들이 있다. 가뭄이 들면 인근 100리 안의 백성들을 먹여 살렸다는 경주 최부잣집의 전통은 한국 사회에 여전히 유유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 이따금씩 터지는 일부 기업가의 인격 파탄적인 갑질과 불법 행위에 묻히는 분위기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기업인들 중 가끔 "한국 경제를 60년 동안 이렇게 키워 놨는데, 왜 우리는 국민들에게 칭찬을 받지 못하느냐"고 한탄하는 이들이 있다. 준법 경영 등 꾸준히 노력한다면 한국 부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도 결국엔 달라질 것이다.




뉴욕=김봉수 특파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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