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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열의 體讀] 요즘같은 시절, 의사 윤한덕 당신이 더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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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응급의료 기반 다진 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평전 나와

늦은 응급처치 사망환자 보고 결심
1994년 비인기 신규 응급의학 지원
메르스 사태 당시 최일선에서 사투
"2시간씩 쪽잠 전쟁터 군인 같았다"

전신을 가리는 '레벨D' 방호복은 흡사 우주복을 연상시킨다.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복장으로 검체를 채취하거나 환자를 치료할 때 입어야 한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방호복을 입은 채 음압병실에서 나오고 있다.<이미지:연합뉴스>

전신을 가리는 '레벨D' 방호복은 흡사 우주복을 연상시킨다.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복장으로 검체를 채취하거나 환자를 치료할 때 입어야 한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방호복을 입은 채 음압병실에서 나오고 있다.<이미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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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사람은 아프면 병원을 찾는다. 갑자기 다치거나 늦은 밤에 아프면 응급실로 간다. 이런 상식이 우리나라 제도 안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건 30년도 채 안 된다.


1993년 열차가 전복하고 항공기가 떨어지고 여객선이 침몰하는 사고가 잇따랐다. 이듬해 다리가 무너지고 유람선이 불타는가 하면 가스폭발 사고도 터졌다. 1995년 서울 한복판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온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긴박한 사고현장에서 환자를 좀 더 빨리 병원으로 옮겨 치료한다는 응급의료의 기본 정신에는 이처럼 아픈 흔적이 배어 있다. 1980년대 들어 공적 차원에서 응급환자 이송 체계를 도입했다. 그러나 실제 제도로 자리 잡고 일선 국민이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1991년 정부 부처 차원에서 응급의료 병원 지정 등 운영규칙을 만들고 1994년 응급의료 법률이 공포됐다. 현대적 의미의 응급의료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첫발이었던 셈이다. 1960년대부터 국가 차원에서 응급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한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후발주자였다.


지난해 2월 자기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故) 윤한덕 당시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삶은 그 자체로 국내 응급의료의 역사다. 윤 센터장은 1994년 전공 선택 당시 국내에 몇 안 되는 데다 모교에 막 생긴 응급의학을 택했다. 새로 생긴 인기 없는 응급의학은 근무 강도가 셀 수밖에 없다고 알려졌지만 중요치 않았다.


윤한덕은 당시 담당 교수에게 "새로운 학문이 하고 싶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그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건 그보다 1년 전 수련의 시절 응급실에서 겪은 사고였다. 어린 초등학생이 후진 차량에 치여 갈비뼈가 으깨진 상태에서 응급실로 실려왔다. 긴장성 기흉으로 위험한 상태였다.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급히 요청한 전문의나 전공의가 늦게 오면서 아이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제때 치료 받았다면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아이였다. 최근 나온 평전 '의사 윤한덕'의 저자 김연욱은 윤한덕이 이 사고로 중증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추정했다.


윤한덕이 과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 당시 총대를 메고 대응했던 일도 요즘 다시 회자되고 있다. 윤한덕이 생전 일했던 국립중앙의료원은 메르스 이후 중앙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임상적 특성을 살피는 등 바이러스 전쟁 국면의 최일선에 있다.


2015년 국내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와 국립중앙의료원 차원의 대응이 필요했다. 이에 윤한덕은 기획반장으로 안팎의 실무대응을 총괄했다. 어느 때보다 위급한 상황인 데다 환자의 증상 정도를 살피고 정부와 호흡 맞추기가 중요했던 만큼 응급ㆍ임상ㆍ정책에 모두 정통한 윤한덕이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16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김연욱 제공>

2015년 4월 16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김연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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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조정실장 제안받았지만 거절
"환자 치료가 최우선" 끝까지 현장
시스템 구축과정·발자취 되짚어

그동안 알려지지도 않은 새 감염병 환자가 생기면 음압병상에서 치료해야 했다. 윤한덕은 당시 음압병상이 부족하자 시설부 직원과 머리를 맞대 만들어냈다. 환자 이송용 음압구급차도 내놨다. 안명옥 당시 국립중앙의료원장은 하루 2~3시간 자며 일하는 윤한덕을 보며 "전쟁터 군인이 이렇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메르스 사태 당시 국립중앙의료원에는 의심환자 등 총 67명의 환자가 다녀갔다. 그러나 의료진 등 추가 감염된 사람 없이 진료를 마쳤다. 안명옥 원장은 사태가 마무리된 뒤 윤한덕에게 기획조정실장 자리를 제안했다. 그러나 윤한덕은 응급의료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1권은 윤한덕의 생애를 조명하고 우리나라의 응급의료 시스템 구축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2권에서는 그가 평생 응급의료에 매진하며 남긴 발자취를 되짚는다. 윤한덕이 응급의료 체계를 갖추기 위해 쪽잠으로 버텨가며 일에 매달린 건 무엇보다 환자를 최우선시했기 때문이다. 그가 의사든 병원이든 의료정책 관료든 환자 치료에 방해만 되면 척을 진 건 그래서다. 일선 의료현장에 의대 동기나 선후배, 스승이 있었지만 가깝게 지내지 않은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전국 각지의 응급병원ㆍ응급실 평가자인데 사적 관계가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 윤한덕' 표지

'의사 윤한덕'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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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살리기라면 물불 가리지 않았던 이국종 아주대 교수는 지난 2월 고인의 영결식에서 "한반도 전체를 들어 올려 거꾸로 흔들어 털어봐도 선생님과 같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두려움 없이 헤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추도했다. 윤한덕은 생전 이 교수의 이름을 편히 부르며 가깝게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초 윤한덕의 아들 윤형찬군과 해맞이 산행에 나선 뒤 지난해 가장 가슴 아픈 죽음으로 윤한덕의 사망을 꼽기도 했다.


한 사회에서 약자가 단순히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소외되거나 차별 받는 건 옳지 않은 일이다. 우리 사회가 올바르다면 설령 그런 면이 있어도 고쳐 나아가려 노력하는 게 맞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는 물론 갑작스럽게 다치거나 의료처치가 필요한 응급환자 역시 약자다. 누구나 언제든 큰 외상을 입을 수 있다. 알 수 없는 감염병에 걸릴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잠재적 약자다. 저자의 표현대로 과거에 지옥이나 다름없었던 응급실은 윤한덕의 피와 땀을 갈아넣으며 한층 나아졌다. 이제 남은 과제는 우리의 몫일 테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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