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최대열의 體讀] 끝나지 않은 두 개의 전쟁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남산 딸깍발이]베트남 보트피플 출신 美 대학교수가 본 '베트남 전쟁'

'사이공식 처형' '네이팜탄 소녀'
베트남에 대한 우리의 기억
대부분 시각적 이미지의 힘

한국인 축구감독 박항서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동남아 최고로 끌어올렸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40여년이 지난 현재, 한국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열린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2018 결승전 1차전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베트남 팬이 국기모양의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응원하고 있다. [콸라룸푸르 AFP 연합뉴스]

한국인 축구감독 박항서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동남아 최고로 끌어올렸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40여년이 지난 현재, 한국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열린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2018 결승전 1차전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베트남 팬이 국기모양의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응원하고 있다. [콸라룸푸르 AFP 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2월, AP의 사진사 에디 애덤스는 '사이공식 처형(Saigon Execution)'이라는 제목을 단 사진을 타전했다. 묶여있는 포로를 권총으로 쏘는 순간으로 우리가 베트남전을 말할 때 먼저 떠올리는 심상 가운데 하나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는 미국 내 반전운동에 불을 붙였다. 나아가 전쟁이 끝난 후에는 사이공(현 호치민)ㆍ베트남, 혹은 전쟁 자체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사진 속 총을 맞는 이가 수십여 곳에서 무차별적으로 시민을 죽였던 혐의를 받은 인물이라는 등 구체적인 맥락은 거세된 채 '베트남의 시민이 고통 받고 있다'는 인식이 빠르게 번져 고착됐다.


베트남과 전쟁에 관한 책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를 쓴 비엣 타인 응우옌 미국 남가주대(USC) 교수는 "베트남에 관한 우리의 생생한 스크린 기억은 대부분 시각적 이미지"라며 사이공식 처형을 비롯해 네이팜탄을 맞은 소녀가 벌거벗은 채 길 위를 달리는 사진, 차별에 반대해 분신하는 스님의 사진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베트남인들이 겪은 고통의 증거이자 이미지를 전달하는 온갖 장치가 지닌 힘의 증거"라며 "베트남인의 괴로움은 고정되고 그들이 겪은 고통의 이미지는 이 전쟁에 희생된 또 다른 이의 기억을 차단하고 지워버린다"고 지적했다.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전쟁 이후,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망각하는 방식 역시나. 각종 소설이나 회고록, 묘지, 기념물, 영화, 사진, 박물관 전시물, 비디오게임 등 전쟁의 기억을 담고 있는 우리 주변의 흔한 매개체로부터 괴리감을 느끼거나 혹은 집단 간의 갈등이 불거진다면, 여전히 기억전쟁은 끝나지 않은 걸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베트남전쟁 중에 태어난 저자는 사이공이 함락된 1975년 해상 난민이 돼 미국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생활했다. 책 앞쪽에서 스스로를 두고 "미국이 저지른 짓에 실망했지만 미국의 변명을 믿고 싶어 하는 베트남인, 베트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베트남을 알고 싶어 하는 미국인(인 것 같다)"이라고 했다. 베트남전이 끝나고 베트남과 미국 사회 이면을 이중간첩의 시각으로 그린 자전적 관점의 장편소설 '동조자'로 2016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모든 전쟁은 두 번 치러진다는 발상"에서 책 쓰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전쟁터, 두 번째가 기억 속이다. 같은 베트남전쟁을 두고서도 누군가는 미국전쟁ㆍ항미전쟁, 또 누구는 2차 인도차이나 전쟁, 월남전 등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호명이 서로 다른 건 전쟁이 어떻게 알려져야 하고 기억되어야 하는지,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시작과 끝을 명확히 단정 지을 수 없을 뿐더러 국가나 지역 등 특정 공간, 혹은 주체에 한정해 이름을 붙이는 것 역시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당장 베트남전쟁만 하더라도 전쟁 당시 캄보디아ㆍ라오스에서 각각 70만, 40만 명이 숨졌고 이후 연관된 역사적 사건 등을 따져보면 사망자는 6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미국인은 물론 전쟁을 이겼다는 평을 듣는 베트남인도 기억하지 않으려는 부분이다.


실제 전쟁과 기억 속 전쟁
명칭 둘러싼 논쟁, 인식의 한계
윤리·미학 등 키워드는 '공정'
"한국은 피해자 아니다" 일침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표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표지

원본보기 아이콘


나아가 "(그러한 이름을 둘러싼 논쟁은)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들, 경제적 손실 그리고 자본이 얻는 이득의 문제를 덮어버린다"면서 논의를 확장한다. 책의 큰 얼개를 윤리, 산업, 미학으로 구분 짓고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정으로 잡고 있다. 어디에서도 관찰자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정체성이 반영, 자신뿐 아니라 타자를 기억하는 윤리적 측면의 기억을 강조한다. 아울러 산업측면에서는 전쟁기계에 포섭된 시민이 결국에는 전쟁을 피해 도망가는 난민신세로 전락하거나 영원히 멈추지 않을 전쟁의 지속에 일조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일찌감치 전쟁에 직접 참가했던 한국에 대해서도 따로 한 장을 빼 내용을 채웠다. 과거 한국전쟁 전후의 상황부터 최근까지, 나아가 직접 한국의 곳곳을 살피는 등 시공간을 넘나들고 있다. 눈길을 끄는 건 이 장의 제목이 '인간이 되는 것에 대하여'라는 부분이다. 저자는 "한국은 스스로를 일본이나 미국 혹은 북한에 대해 피해자로 생각하고 싶어 한다"면서 "그러나 한국은 피해자에 머무른 적이 없다. (중략) 인간 이하의 자리에서 졸업하여 아제국주의의 지위에 올랐다"고 했다.


베트남전쟁에 대해 무지하거나, 혹은 애써 외면하려는 우리 사회 다수를 겨냥한 표현이다. 2000년대 만들어진 뮤직비디오에선 오히려 한국의 병사가 베트콩 부대에 살해당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일종의 '기억세탁'이다. 저자는 "돈이 기억을 지배하고 기억이 돈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한국은 새 역할을 기꺼이 맡는다"면서 "한 나라의 부는 자기 나라의 기억을 멀리 퍼뜨릴 수 있는 능력이다. 무기화된 기억은 이제 그 나라가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까지 정당화한다"고 일갈한다.


저자가 직접 찾아간 베트남 호이안 근처의 하미 추모비에는 과거 전쟁 당시 살해당한 135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아직 배속에서 나오지 못해 이름을 갖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도 있다. 누가 죽였는지는 적혀있지 않다. 마을 사람들은 한국의 군인이 그랬다는 걸 기록하고 싶어 했지만 추모비 건립에 돈을 댄 한국의 퇴역군인이 기록삭제를 요구했다고 한다. 씁쓸했다. 기억에서 시작해 망각으로 끝나는 책의 구조는 완성도를 더한다. 다만 저자 자신이 발로 뛰며 살핀 내용을 풀어가는 도중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문사철 지식, 사색적인 어투의 배경설명은 곰곰이 곱씹으며 읽어야 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