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내부' 관리의 후손이 양도
韓·日전문가, 해석 엇갈려

한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친필이 발견됐다.

엽서에 담긴 안중근 의사와 이토히로부미. 연합뉴스

엽서에 담긴 안중근 의사와 이토히로부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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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통신은 11일 한국의 전직 국회의원이 대한제국 시절 국가기관인 '궁내부'에서 근무했던 한 관리의 후손으로부터 올해 1월 "한일 관계에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이 족자를 양도받았다고 보도했다.


해당 족자는 1910년 한일병합 이전 대한제국 국가기관인 '궁내부'에서 근무했던 한국인 남성(사망)이 생전 보유했던 것으로, 이 남성이 사망한 뒤에도 그의 후손들이 족자를 집안에 소중히 보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입수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소장자들이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유물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한국에서 '침략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이토 히로부미의 유물을 소지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친일파나 매국노로 비난받을 것을 우려했다는 설명이다.


발견된 작품에는 '여화낙처만지화연우'라는 일곱 글자의 한시 구절이 적혀 있다. 이는 "지는 꽃잎 땅에 가득 떨어지니, 자욱한 봄비와 어우러져 아름답구나"라는 의미로, 봄날의 서정적인 풍경을 묘사한 내용이다.

글씨가 담고 있는 의미를 두고 한일 양측 전문가 간의 해석이 엇갈렸다. 한국 전문가는 일본이라는 꽃이 조선 땅에 쏟아지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든 성과를 칭송하는 내용이라며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한국인에게는 굴욕스러운 문구"라고 지적했다.


반면 일본 서적 역사를 연구하는 일본인 연구자는 "벚꽃의 낙화와 봄비의 조화를 노래한 것으로 정치적 의도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초대 총리이자 초대 한국 통감을 지낸 인물로 조선의 국권 침탈을 주도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가 한국에서 발견된 사례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인물에 대한 강한 부정적 인식 탓에 작품 자체의 예술적 가치보다는 역사적 사료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교도는 국내에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 때문에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워 이를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이 적으며, 실제 보존 실태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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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토의 글씨가 논란이 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에는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현 화폐박물관) 머릿돌에 새겨진 '정초'(定礎) 두 글자가 이토의 친필로 판명됐다. 문화재청은 전문가 자문단의 현지 조사를 거쳐 이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이후 철거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으나, 2021년 문화재위원회는 아픈 역사를 교훈으로 남긴다는 취지에서 머릿돌을 보존하되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소진 기자 adsurd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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