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무역 질서가 분열되고 국가 간 관세 장벽이 높아지면서 경제적 영향력의 척도는 이제 '금융 자본의 규모'에서 '실질적 생산력'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돈의 가치를 잘 매기는 '금융의 힘'보다는 혼돈 속에서도 물건을 직접 만들고 공급망을 유지할 수 있는 '생산의 힘'이 중요해졌다. 권력의 핵심이 금융에서 생산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금융이 생산을 앞지른 국가가 그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패권은 도로와 항만, 기계 설비 같은 전통적 기반부터 오늘날의 소프트웨어(SW)와 인공지능(AI)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기반해왔다. 물론 이런 기술력도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실질적인 결과물로 증명될 때만 의미가 있다. 국가가 생산 역량을 확대하는 것보다 금융 자산 같은 미래 가치를 사고파는 데만 치중한다면 그 시스템은 위태로워진다.
금융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생산이 없는 금융은 불안정하다는 의미다. 미래에 벌어들여야 할 돈, 그러니까 부채가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생산 능력보다 훨씬 빠르게 커진다는 것은 좋지 않다. 특히 실제 벌어들이는 돈의 규모를 들키는 순간, 경제의 거품은 터지고 시스템은 무너지게 된다. 이 패턴은 아주 오래됐다. 16세기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발견한 은으로 풍요를 누렸다. 그러나 이렇게 유입된 은은 산업을 일으키지 못했다. 자본은 대출과 투기, 제국 유지비로 활용됐다. 스페인은 직접 생산하지 않는 물건들을 수입했고, 감당할 수 없는 전쟁에 자금을 댔다. 이후 금융적 풍요가 생산 역량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금융 수익이 생산적 투자를 앞서기 시작하면 자본은 금융 자산으로 이동한다. 엘리트층은 생산 현장에서 멀어진다. 불평등은 심화하고 경제 회복의 탄력도 떨어진다. 충격이 닥치면 서류상의 부와 실질적 역량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다.
이런 긴장은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성장 방식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양국은 구조적 차이를 보여주고, 이는 중대한 지정학적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금융이 가치 창출에서 과도한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금융 부문은 기업 이익의 약 25~40%를 차지했는데, 이는 실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7~8%보다 훨씬 높다. 금융은 리스크와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조정 시스템'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이 실물 경제를 압도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기술 혁신이 일어나 산업 전반의 체질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긴 과정이 필요한데, 금융은 이 성장의 결실을 성급하게 현금화하는 데만 몰두하게 된다. 경제 전체의 기초 체력이 약해질 위험이 있다.
AI는 미국의 이런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올해 미국의 하이퍼스케일(초대형 데이터센터) 기업들은 AI 관련 설비 투자에 6000억달러 이상을 쏟아부을 전망이다. 기술적 잠재력은 부인할 수 없으나 이 투자가 경제 전반의 생산성으로 확산할지, 아니면 미래 약속에 대한 금융적 청구권으로만 남을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투자자들의 걱정은 AI의 수익화 속도가 시장의 기대치를 따라잡을 수 있느냐에 쏠려 있다.
중국은 다른 길을 택했다. "과학 기술이 곧 생산력"이라는 덩샤오핑의 신념부터 오늘날 강조되는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책은 실물 경제에 혁신을 내재화하는 데 집중해 왔다. 금융 수익도 제조업의 고도화, 인프라 확충, 응용 기술 지원이라는 틀 안에 있다. AI는 디지털 플랫폼뿐 아니라 공장, 물류, 로봇 공학에 배치된다.
이런 접근 방식에도 리스크는 존재한다.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빚내서 억지로 버티는 것은 금융 거품만큼 위험하다. 아무리 제조 시설을 많이 갖춰도 시장의 수요가 없거나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저 돈 낭비일 뿐이다. 중요한 건 '무엇을 짓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는지다.
금융은 성장의 속도를 높여주지만, 생산은 성장의 뿌리를 내리게 한다. 금융 중심의 시스템은 팽창 속도가 빠르나 변동성에 취약하다. 최근 금과 같은 방어 자산으로 자금이 쏠리는 것은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한다. 생산을 통한 수익 창출이 불투명해지면 자본은 성장을 포기하고 생존을 위해 퇴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생산 주도형 경제는 성장은 더딜지라도 외부 충격에는 훨씬 견고하게 버틴다.
신흥 경제국에도 같은 공식을 적용할 수 있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이 반복해서 경제 위기를 겪는 건 생산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변동성이 큰 자본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에게 제조업을 키우고 기술 숙련도를 높이는 것은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다. 국가가 흔들리지 않게 지키는 일종의 경제 안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시장이나 금융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금융과 생산이 일치될 때 경제적 성과가 극대화한다. 미국도 한때 산업 인프라와 연구 역량을 구축하면서 패권을 확립했다. 그러나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오늘날 보조금을 앞세운 리쇼어링(국내 복귀) 물결의 향방은 알기 어렵다. 실질적인 생산 역량의 재건으로 이어질지, 산업정책의 탈을 쓴 또 다른 금융화에 치중할지 아직은 미지수다.
보호무역과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는 시대에 금융과 생산의 조화는 더 중요해지고 있다. 금융 자산에만 의존하는 국가는 정세가 바뀔 때 회복력을 잃을 위험이 크다. 물리적·디지털적 생산 능력에 계속 투자하는 국가만이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규칙을 제정하는 주도권을 잡을 것이다.
역사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지는 않지만 분명한 가르침을 준다. 물건을 만들지 않는 경제는 결국 영향력을 잃는다. 부가 어떻게 창출되는지 기억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제프리 우 마인드웍스 캐피털 디렉터
이 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 US-China rivalry: great powers that don't make things won't be great for long을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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