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력 검사 결과 노인성 난청 앓아
"택시서 투신, 전혀 예견 못 했을 것"
택시 기사·SUV 운전자 모두 무죄
택시가 목적지와 다른 방향으로 향하자 납치로 오해한 승객이 뛰어내려 숨진 이른바 '포항 택시 투신 사건' 운전자의 무죄가 확정됐다.
18일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택시 기사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지난달 23일 확정했다고 밝혔다. A씨는 20대 대학생 B씨를 업무상 과실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교통사고처리법상 치사)로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A씨는 2022년 3월4일 오후 8시45분께 경북 포항시 포항역에서 대학생 B씨를 손님으로 태웠다. 블랙박스 확인 결과 B씨는 택시 문을 닫으며 "○○대로 가 달라"고 목적지를 말했으나, A씨는 이를 잘못 듣고 "한동대 맞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B씨는 "맞다"고 답했다. 이내 B씨는 택시가 목적지와 다른 방향으로 달리자 A씨에게 "이쪽 길이 맞냐"고 물었다. 하지만 A씨는 청력이 좋지 않아 이를 듣지 못했다.
B씨는 남자친구에게 "택시가 이상한 곳으로 간다" "엄청나게 빨리 달린다" "내가 말 걸었는데 무시한다" 등의 메시지를 전송했다. 이후 "아저씨, 저 내려주시면 안 되냐"고 말했으나 A씨는 대답이 없었다. B씨는 자신이 납치를 당하는 것이라 생각해 택시 문을 열었고, 당황한 B씨가 "왜 이러느냐"며 속도를 줄이자 차에서 뛰어내렸다. 이내 B씨는 뒤따르던 SUV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청력 검사 결과 A씨는 노인성 난청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A씨가 깜빡이를 켜지 않은 채 실선 구간에서 차선을 변경하는 등 난폭 운전을 한 점, B씨의 상태를 살피지 않은 점, 청력이 좋지 않은데도 관리를 소홀히 한 점 등을 토대로 B씨 사망에 대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해 기소했다. SUV 운전자 역시 전방 주시와 안전거리 유지에 소홀했다고 보고 A씨와 함께 재판에 넘겼다.
A씨는 앞선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A씨가 포항역에서부터 피해자의 목적지를 한동대로 인식했다"며 "A씨의 입장에서는 B씨가 겁을 먹고 자동차전용도로를 80㎞/h 이상의 속도로 주행하는 택시에서 뛰어내릴 것을 전혀 예견할 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SUV 운전자에 대해서도 "조기에 피해자를 발견해 사고를 회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무죄 판결했다.
검찰은 "운전자들이 적절한 주의 의무를 다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며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 역시 1심과 동일했다. 2심 법원은 "A씨가 청력 저하에도 불구하고 보청기를 착용하거나 치료를 받지 않아 결과적으로 B씨의 불안감을 가중한 점 등은 인정된다"면서도 "운전자들이 B씨가 택시 문을 열고 뛰어내릴 것을 예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원심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기각했고, 이로써 두 운전자의 무죄가 확정됐다.
정예원 인턴기자 ywj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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