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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동덕여대와 한 편의 서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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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공학 전환 문제 놓고 극한 충돌
캠퍼스 곳곳 파괴 폭력시위 우려
경영난·젠더이슈 얽힌 고차방정식

[시사컬처]동덕여대와 한 편의 서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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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 학생 시위가 사회 이슈로 확대됐다. 시위 양상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숱한 보도를 통해 잘 알려졌다. 그러나 그 이유에 초점을 맞춘 보도는 훨씬 적었다.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기본적인 상황은 이러하다. 입학생이 줄어들고 그로 인한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학교 측에서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시작했고, 학생들은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양측의 주장이 꽤 엇갈린다. 학교 측은 남녀공학 전환 문제는 제대로 논의한 적도 없으며 아이디어를 모으는 단계에서 나온 하나의 의견이었을 뿐이라고 한다. 학생들은 이미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배제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의아해한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폭력적인 시위를 벌인다고?

외부인과 재학생들이 느낀 위기감이 다를 수 있다. 학생들은 이번 이슈가 생기기 전에도 학과 통폐합과 교수 충원 등 학사 행정 과정에서 학생들 의견이 무시당한 전례가 여럿 있었다고 주장한다. 즉, 그동안 쌓여온 분노와 위기감이 터진 결과라는 것. 학생들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해도, 이러한 시위 방식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대상과 사안에 따라 투쟁의 방식은 달라야 하고 폭력은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군부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투쟁의 방식도 극단적이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군화를 신고 곤봉을 든 상대 앞에서 연좌시위를 할 순 없으니까. 이번에는 어떤가? 수십억 원의 복구 비용이 들 정도로 캠퍼스 곳곳이 파괴됐다는데, 폭력으로 맞설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학교 측이 위협적이었나? 투쟁의 사안이 그만큼 긴박했나? 너무 일찍 너무 쉽게 최후의 수단을 써버렸다.


너무 심각한 예를 들었나? 그럼 이 사태를 밥상 엎기에 비유해 보자. 가족이 모여 밥을 먹고 있는데 아빠가 밥상을 엎어버리는 장면 말이다. 요즘도 이런 집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가부장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절엔 드라마 단골 소재로 쓰일 만큼 흔했다. 이제는 우리 모두 동의한다. 아무리 화나고 답답하더라도 그런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같은 장면에서 밥상을 엎고 살림을 때려 부순 사람을 자식으로 바꿔보자. 이 가족은 어떻게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할까? 누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서부극 영화 '그 땅에는 신이 없다'

서부극 영화 '그 땅에는 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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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양상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번 동덕여대 사태에서 유명해진 구호가 함축하고 있다.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그것이 전체 학생들의 의견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진심으로 동덕여대가 소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단 선택지가 개방이냐 소멸이냐 둘밖에 없는지, 이제부터라도 학교와 학생들이 문제를 풀어봐야겠다. 경영난과 젠더 이슈 페미니즘이 결합한 고차방정식이 될 것이다.


'그 땅에는 신이 없다'라는 제목의 서부극 한 편을 소개한다. 하필 여성 인권 수준이 최악이었던 시대와 장소를 여성주의 영화의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무법자들 천지였던 19세기 서부에서 여성 연대가 이루어진다니! 아름다운 풍광과 숨 막히는 스릴은 덤. 나의 한 줄 평은 '아마조네스와 페미니즘 그리고 서부극의 결합'. 이 정도면 강력 추천이다. 가장 좋았던 점은 남성을 여성연대의 배척 대상이 아니라 연합의 대상으로 포용한다는 것이다. 아 그렇다고 이 작품에 동덕여대 사태와 관련한 해결책이 들어있는 건 아니다. 나는 못 찾아냈지만 혹여 숨어있다면, 더욱 좋겠다.

이재익 SBS라디오 PD·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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