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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텀하우스 좌담] 공익법인 규제는 족쇄...감독·지원으로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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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법인 기부 면세한도 지나치게 엄격
재원확보 통한 사회적 기여에 걸림돌로 작용

사회가 성숙할수록 공익법인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 정부나 기업이 미처 해소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비영리 공익법인들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적지 않아서다. 많은 선진국은 공익법인이 자선, 장학 등의 영역을 넘어 과학기술, 환경 등의 분야에서 국가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풀고 있다.

아시아경제는 지난 14일 공익법인의 제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아보기 위한 ‘채텀하우스 좌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송경용 사단법인 나눔과 미래 대표 ,유욱 재단법인 동천 이사장, 박훈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김필수 아시아경제 경제금융 매니징 에디터.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아시아경제는 지난 14일 공익법인의 제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아보기 위한 ‘채텀하우스 좌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송경용 사단법인 나눔과 미래 대표 ,유욱 재단법인 동천 이사장, 박훈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김필수 아시아경제 경제금융 매니징 에디터.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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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나라 공익법인들은 활발한 비영리 활동을 통한 사회 기여에 큰 걸림돌을 갖고 있다. 가뜩이나 기부 문화가 활발하지 않은 환경에서 공익법인에 대한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가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증여 면세 한도는 여타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해 매우 제한적이다. 공익법인으로 흘러가는 기업의 자금을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지 않기 위한 ‘꼼수’로 인식해왔기 때문이다.


아시아경제는 최근 공익법인 제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아보기 위해 ‘채텀하우스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는 송경용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 유욱 재단법인 동천 이사장, 박훈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이들은 공익법인의 면세 한도를 지나치게 좁게 규정하고 있는 현행제도의 완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면서, 활발한 기부를 끌어내려면 공익법인에 대한 시각이 ‘규제’에서 ‘지원’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좌담회는 실명은 공개하지만 발언자는 익명 처리하는 채텀하우스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회 = 김필수 아시아경제 경제금융 매니징 에디터

지난 14일 박훈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가 경제금융 채텀하우스에 참여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지난 14일 박훈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가 경제금융 채텀하우스에 참여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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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속증여세법상 공익법인에 대한 면세 한도가 너무 엄격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나.


A : 동의한다. 과도한 규제로 본다. 이미 우리나라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상출집단) 소속 공익법인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 과거 공익재단이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의 편법 승계 수단으로 악용됐던 사례들이 있었지만 이젠 여러 입법을 통해 (이러한 우려를) 많이 보완했다. 이제 우리 사회도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사회처럼 공익법인의 역할을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재단을 통한 민간기업들의 사회적 기여를 가로막는 규제를 바로잡아, 건강하고 활기찬 기부 문화를 조성했으면 한다.


B : 현재 상·증세법이 규정하고 있는 주식 출연 면세 한도 5%·10%·20% 3단계 룰도 원점 재검토할 때가 됐다. 높은 규제 강도는 앞서 재벌 기업들이 문화재단을 총수의 사익과 조세 회피 수단으로 쓰는 문제가 발생한 데 따라 주식 출연 한도가 점차 엄격해진 결과물이다. 중간의 어떤 계기로 규제가 완화됐다가 다시 강화되기를 반복하다 보니 온갖 단발성 규제가 겹겹이 쌓인 상태다. 과거와 지금은 환경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원점에서 다시 살펴봐야 한다.

C :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려면 사회공헌 활동을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강한 규제는 이러한 문화 확산에 걸림돌이 된다. 몇 년 전에는 자기 주식 200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대기업 회장을 만났는데 지금의 규제와 법 때문에 번번이 좌절됐다고 하더라. 이젠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이 성장한 만큼, 기업들의 편법 승계나 조세 회피를 용납하지 않는다. 몇몇 악용 사례를 확대 해석해 기업들이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통로까지 막아선 안 된다. 현행 상·증세법 개선이 필요하다.

지난 14일 아시아경제 경제금융 채텀하우스에 유욱 재단법인 동천 이사장이 참여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지난 14일 아시아경제 경제금융 채텀하우스에 유욱 재단법인 동천 이사장이 참여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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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 분 다 현행 상·증세법이 과도하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시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 현행 세법 시스템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B : 현행 상·증세법에는 '과세가액 불산입'이라는 별도의 트랙이 있다. 공익법인이 이른바 ‘좋은 일’에 쓰겠다고 출연받은 재산에 대해선 상속세와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도록 별도의 트랙을 만들어 둔 것이다. 상속과 증여를 통해 기부가 이뤄지는 경우에 세금을 매기지 않도록 한 것이다.


다만 주식의 특수성을 고려해 제한적 혜택을 부여했는데 이것이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복잡하게 작동한다. 의결권이 있는 주식은 한 회사를 지배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기업 규모, 의결권 행사 여부 등에 따라 5%·10%·20%라는 면세 한도를 부여했다.


구체적으로, 출연받은 주식 또는 지분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총액 10조원 이상)과 특수관계에 있는 공익법인은 5%, 일반 내국법인의 경우 10%를 초과하면 자동으로 과세 대상이 되도록 한다.


(*현행 상·증세법상 공익법인 출연주식에 대한 세금 면제 한도를 넓히려면 출연자나 특수관계인 등이 이사 수의 5분의 1을 초과하지 않고 운용소득의 80% 이상을 공익목적에 사용하는 등 기본 요건을 지키고, 정관에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등 복잡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


이렇게 룰이 엄격하니 수원 교차로 같은 사례가 발생한다.(*수원 교차로 창업주 고 황필상 박사는 전 재산에 가까운 180억원 상당의 회사 주식과 현금 등 210억원을 아주대와 공동 설립한 구원장학재단에 기부했다. 국세청은 2008년 이 재단에 증여세와 가산세 등 140억여원을 부과했다. 결국 대법원에서 취소 판결을 받았지만, 소송 7년여 동안 가산세, 자택 압류 등을 겪었다.)

송경용 사단법인 나눔과 미래 대표가 지난 14일 열린 아시아경제 경제금융 채텀하우스에 참여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송경용 사단법인 나눔과 미래 대표가 지난 14일 열린 아시아경제 경제금융 채텀하우스에 참여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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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말씀해주신 듯이 현행 상증세는 기업이 공익재단 설립을 통해 편법으로 상속·증여세를 회피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가 가장 크다. 규제의 목적 자체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선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5%라는 면세 한도가 과도하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사후 유족들이 상속세로 13조원을 냈다. 반면 미국의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자녀들에게 상속하지 않고 재산의 대부분을 재단에 귀속시킨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 빌 게이츠도 게이츠&멀린다 재단을 통해 1년에 5조원을 기부한다. 우리나라도 주식이라는 사회적 성과를 공익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C : 현재 상·증세법이 가진 부작용을 이렇게 비유해보고 싶다. 입시 측면에서 미국은 한국과 대조적이다. 대학 입학은 쉽지만 졸업이 어렵다. 입구를 폭넓게 열어두고 그 안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역량에 따라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까다로운 졸업 요건을 설정해둔 것이다. 우리나라 공익법인도 이처럼 돈이 들어올 수 있는 입구는 열어 놓고 그 돈이 선한 용도로 잘 쓰이고 있는지 감시하는 데 충실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나라는 (공익법인에) 재원이 확보될 수 있는 입구 자체를 좁혀 놨다. 주식은 사회가 함께 쌓아 올린 부다. 이 부를 어떻게 선한 곳에 활용할지 고민하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B : 우리나라는 (공익법인을 통한) 기부를 부자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50%의 세금을 절감하는 절세 통로로만 보는 시각이 강하다. 그러나 요즘 트렌드는 좀 달라지고 있다. 신흥 부자들이 사회적 기여에 관심을 갖고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대신 주식을 조 단위로 사회에 기부하려는 움직임들이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현행 규제는 지나친 감이 있다. 시대적 흐름이 바뀌면서 순수한 기부의 수요가 늘고 있다고 본다.


Q. 세분 모두 현행 국내 상·증세법 규제가 문제가 있다고 동의를 하셨다. 그러면 해외는 어떤가.


B : 미국은 기본적으로 기부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기부에 대해 규제보단 지원이 우선한다. 미국도 (세 혜택을 주는) 20%라는 주식 출연 한도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처음부터 과도하게 막아놓는 방식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는 좀 특이하다. 일본은 관치주의, 전체주의적 사고가 만연했으나, ‘고베 대지진’ 이후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공익법인 제도가 많이 바뀌었다. '관에서 민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비영리단체(NPO) 관련 법이 확대되면서 정부가 못한 일을 민간 부문이 하겠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C : 그렇다. 고베 대지진 때 국가보다 훨씬 빨리 대응했던 것도 민간단체들이었고, 현장에 끝까지 남아있던 것도 민간단체들이었다. 이를 목도한 일본 사회가 받은 충격은 단순히 지진으로 인한 물리적 충격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은 출연 대상 법인의 주식 50%까지 비과세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공익법인 운영 제도는 본받을 게 많다. 우리나라는 공익법인이나 재단을 운영하려면 세부 항목까지 사업 계획을 다 내서 일일이 주무 부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사업 계획이 변경되면 이 과정을 다시 밟는다. 우리나라의 공익재단 운영진들이 늘 헌법 소원을 제기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반면 미국은 큰 틀의 공익 예산이 정해지면 그 안에서의 운용과 조정은 일일이 걸고넘어지지 않는다. 다만 부정행위를 하거나 편법이 발각돼 신뢰가 상실되면 승인을 과감하게 취소한다.


A : 우리나라 민법은 1958년 공포돼 1960년 시행됐는데 비영리법인 관련 조항은 제정 이후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그때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현재 한국 사회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관료 중심 문화도 문제다. 기업의 탈세, 편법 승계 등 일부 부작용이 터질 때마다 세법으로 때려잡는 땜빵식 규제로 움직여왔다. 여기서 벗어나, 공익법인을 통해 우리 사회에 어떤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인지와 같은 전체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C : 민간 영역에서 사회적 기여가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제도적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예컨대 수재민 성금 창구를 공익재단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로 이관한 이후 성금 규모가 수십 배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선순환 펀드를 통해 유통된 돈이 어떤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더 많이) 경험할 때가 됐다.


Q. 상·증세법상 공익법인의 주식 면세 한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정해야 하나.


A : 공정거래법이 15%까지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고 있는데 상·증세법만 5%로 제한하는 것은 법적 정합성에 어긋난다. 상·증세법에 따른 공익법인 면세 한도도 15%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의결권 미행사의 경우 현행 20%에서 30%, 장기적으론 50%까지 끌어올리는 게 좋은 방안으로 보인다.


C : 마음 같아선 5%에서 20%로 완화하고 싶지만, 한 번에 확 풀면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각 단서 조항을 디테일하게 가다듬고 단계적으로 상향해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B : 세제는 단순해야 하고 국제경쟁력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5%·10%·20% 3단계 룰은 복잡하다. 미국이 정한 20% 한도도 고민 끝에 나온 답이다. 20%로 단일화해서 단순화해야 세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원래는 한도가 없었다가 1960년대에 20% 규제가 생겼었다. 세제는 단순하게 가야 한다고 본다.


경제금융 채텀하우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경제금융 채텀하우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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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30년 된 낡은 규제 왜 아직도 못 바꿨나. 정부 실패는 차치하고 기업의 편법이 아직도 만연한가.


A : 공익법인을 편법 수단으로 쓰는 기업이 이제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러한 기업들의 전례가 있기 때문에 규제가 유지되어 왔다. 그래서 순수한 기부 의사를 지닌 기업들도 정부에 제도 개정을 선뜻 요구하기 난처한 입장이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15%룰 위반시 형사 처벌되기 때문에 제재 조항은 잘 갖춰져 있는 상태다. 과거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세법과 민법 개정이 모두 필요하다.


B : 기업이 어느 정도 자초한 부분이 있다. 재벌 총수들이 형사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기부를 통해 이미지 쇄신을 시도하면서 기부라는 행위를 마치 면죄부처럼 악용한 측면이 있다. 반면 미국에서 한 식당이 사회에 공헌한 기부자들을 위해 매장 내 자리 하나를 비워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따라 한다면 부자들의 특권의식이 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부는 순수해야 한다'는 환상이 좀 있다. 여기서도 벗어날 필요는 있다. 기부에는 순수한 의도뿐만 아니라 자기만족도 있고 절세 효과 목적도 있다. 절세 목적으로 기부를 한다고 해서 기부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보진 않는다. 그 의도가 뭐가 됐든 재벌이 쥐고 있던 돈을 기부하겠다며 손에서 놓으면 일단 박수를 보내주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좋겠다.





세종=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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