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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흥행동력은 한국인 피 달구는 '일제 쇠말뚝 단맥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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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는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일제 단맥설을 표면화한다. 악명 높은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통치하에 있던 조선 민중의 반항을 우려해 지도자 격 인재가 태어날 만한 명당 기맥을 끊으려 했다는 이야기다. 커다란 쇠말뚝을 땅속 깊이 박거나 일부러 철도, 도로 등을 건설해 풍수적으로 반전시켰다고 주장한다.


파묘 흥행동력은 한국인 피 달구는 '일제 쇠말뚝 단맥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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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는 오니(일본 요괴)를 빼닮은 정령을 내세운다. 애초 다이토구에 안장됐으나 일제강점기에 파헤쳐져 강원도 고성으로 온다. 척추에 칼이 꽂힌 채로 관에 봉인돼 쇠말뚝이 된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는다'라는 대사처럼 한반도 혈맥을 짓누른다.

파격적 설정은 폭발적 흥행을 견인한 핵심 동력이다. 과거 일제 단맥설에 국민적 관심이 쏠린 과정과 흡사하다. 근거는 약하지만 민족감정이 끓어오른다. 과거 김영삼 정권은 이를 정책적으로 건드려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상해임시정부 요인의 유골을 조국으로 옮겨오고, 조선총독부 철거를 지시하는 등 내셔널리즘에 호소했다. '파묘'는 비슷한 색깔의 허구적 상상력에 오컬트(신비적·초자연적 현상)를 입혔다. 민족주의를 고양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있을 법한 이야기


밑바탕에는 있을 법한 이야기가 있다. 풍수는 우리 전통 관습 가운데 하나다. 땅 또는 공간 구조에 관한 사고방식에서 신앙 성격까지 보인다. 풍수사들은 일제강점기에 전면적으로 부정되고 모욕당했다고 입을 모은다. 풍수를 학문 반열에 올렸다고 평가받는 고(故)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저서 '풍수 잡설'에 "일제의 풍수 침략 사례가 조그만 지면으로는 도저히 다룰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다양하다"고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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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정상 병사봉의 이름을 그들 연호의 하나인 대정봉으로 바꿔치기하는 수법에서부터 아래로는 지방 토호인 양반 가문의 선산 지맥을 끊는 일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못 할 짓이 없었다. 철도나 도로를 내면서도 고의로 그 지방 주민들이 성스러운 지기유행처(地氣流行處)로 믿고 있던 명산, 선산, 주산, 진산, 영산의 목과 손발을 자르고 몸을 짓누르는 식으로 설계를 시공하는가 하면 (중략) 훼손은 서울의 터뿐만이 아니라 우리 국토 전반을 욕보이는 상징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단맥설의 시발점이 일제시대가 아니다. 원형은 조선 사대부 이중환(1690~1765)이 쓴 '택리지'에서 발견된다. 이상적인 주거지를 구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경상도 선산 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전해 오는 말에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일선에 있다' 한다. 까닭에 예부터 문학 하는 선비가 많았다. 임진년 명나라 군사가 이곳을 지나갈 때 명나라 술사가 외국에 인재가 많은 것을 싫어해 군사를 시켜 고을 뒤 산맥을 끊고 숯불을 피워서 뜸질하게 하였다. 또 큰 쇠못을 박아서 땅의 정기를 눌렀는데, 그 후로는 인재가 나지 않는다."


▲일제 단맥설 부상


전통적 지리 사상은 일제강점기에 미신으로 여겨졌다. 해방 뒤에도 미국식 사고 등에 밀려 기를 펴지 못했다. 다시 주목받은 건 일제 단맥설이 제기되면서부터다. 증거물이 발견됐다는 보도로 민족적 감정이 들끓었다. 1985년 3월 오르내림 산악회가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서 길이 45㎝, 직경 2㎝의 쇠말뚝 스물두 개를 발견하고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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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량을 위한 삼각점 표시다, 단순한 방위 표시에 지나지 않는다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모든 쇠말뚝이 불규칙하게 박혀 있던 현상에 관한 설명으로는 무엇도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쇠말뚝을 박는 일본인들을 목격했다는 여든 살 노파와 1943년 개성 송악에서 쇠말뚝 작업에 참여했다는 전직 경찰이 증인으로 나타나면서 무게 추는 일제 단맥설로 기울어버렸다.


사실 가장 문제시된 흔적은 따로 있다. 바로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일제는 애초 남산에 있던 한국 통감부를 그대로 사용했으나 직원 수가 1만5113명으로 불어나자 새로운 청사 건립을 본격화했다. 왕이 신하의 알현과 하례를 받던 근정전 앞을 가로막는 형태로 건물을 세웠다. 천하에 으뜸가는 명당자리로 인정받던 서울, 그것도 중심에 해당하는 공간을 침범한 것이다. 부지가 경복궁으로 확정된 건 1912년이라고 한다. 데라우치 마사다케 총독을 위시한 상부에서 경복궁 해체를 주도했다.


태조 이성계에 의해 창건된 경복궁은 임진왜란(1592~1598) 때도 많은 건물이 전소하는 등 고통받았다. 오랫동안 방치되다 대원군이 국위 함양을 위해 중건해 1867년 거의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당시 공사는 막대한 비용과 인력 투입으로 사회 불안을 조장했다. 무모한 공사를 풍자한 노래 '경복궁 타령'이 나올 정도였다.


막심한 비용을 들여 복원한 경복궁은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일본인 손에 의해 해체되는 비운을 맞았다. 풍수사 대다수는 그렇게 들어선 총독부 건물 자체가 조선의 기맥을 억누르기 위한 행위였다고 규정한다. 또 다른 예로는 경북 경주시 양동리에 개통될 뻔한 동해 남부선(경주-포항)을 자주 언급한다. 마을 주민들이 재앙이 닥칠 수 있다며 개설을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철도가 양동리 주산에 해당하는 설창산과 안산인 성주산 사이를 가로지름으로써 본래 '물(勿)'자 형태를 '혈(血)'자로 바꾼다는 이유였다. 인근 마을도 서원이 자리 잡은 산을 관통할 수 없다며 투쟁에 합류해 코스 변경을 이뤄냈다.


▲빈약한 근거


동해 남부선을 단맥을 시도한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 애초 그런 목적으로 철도를 계획했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일제는 주민들의 요구대로 추가 비용을 감수하며 코스를 변경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제 단맥설의 근거는 대부분 정황상 추론에 불과하다. 범죄라고 규정할 만한 물증이나 구체적 근거가 없다. 당시 일제가 단맥을 계획적으로 실행할 만큼 지식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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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 이몽일 씨는 저서 '한국 풍수 사상사 연구'에 "일본이 이 땅을 점령했을 때 그들은 한국인 가운데 역리학에 밝은 열세 명을 선정, 이른바 13인 위원회라는 것을 조직해 이 땅의 명당, 즉 장군이 나올 땅이라든가 뛰어난 인물이 태어날 만한 장소를 물색해 그 맥을 끊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노자키 미츠히코 오사카시립대학 교수는 저서 '한국의 풍수사들'에서 다음과 같이 허점을 지적했다.


"이몽일 씨 집에 하룻밤 묵으면서 이것저것 의견을 나눌 수가 있었다. 13인 위원회는 한국 내에 유포돼있는 관혼상제 실용서를 근거로 한 주장이었다. 나중에 복사본을 받아보았지만 적이 실망스러웠다. 총독부 관계자나 당시 한국인에 의해 쓰인 것이라면 모르지만, 유래도 알 수 없는 관혼상제 실용서(가례서식백과)에 쓰인 내용을 잘 음미해 보지도 않고 박사 논문에 사용해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는 것은 연구자로서 자세에 대한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일이다."


백운대 정상에서 발견된 쇠말뚝도 근거가 빈약하기는 매한가지다. 서울시 역사편찬 위원장을 지낸 손정목 도시행정 연구가는 노자키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쇠말뚝이 단맥을 위한 것이라는 설에 대해 회의적이야. 총독부가 전국에 걸쳐서 대규모 단맥 행위를 계획했다면, 명목은 접어 두더라도 반드시 예산을 세운 뒤에 계획적으로 실행했을 텐데, 내가 알고 있는 한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 아마도 그 쇠말뚝은 토지 조사 사업(일제강점기 초기 행해진 토지 소유권 등의 확정 조사 사업) 때 측량을 위한 것이든가 그 전에 지도 작성을 위해 이용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풍수에 관해서는 황당무계한 해석이 많아. 특히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많지. 그렇지만 민족적 주장의 표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존중하고 있고, 거기에다가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전혀 없지."


▲1%의 가능성


'파묘'에서는 장의사 고영근(유해진)과 풍수사 김상덕(최민식)이 일제 단맥설을 두고 논쟁한다. “(쇠말뚝은) 토지측량용이라고 했잖아. 99%가 가짜잖아.” “그럼 1%는?” 장재현 감독은 "쇠말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사실인지 아닌지도 몰라 그런 대사를 넣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 실제 쇠말뚝을 안 넣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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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일제 단맥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백운대에서 쇠말뚝을 뽑은 오르내림 산악회조차 백운산장 주인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조사를 구체화했다. "할머니가 열여섯 살에 수원에서 시집왔을 때 시아버지가 일본인과 함께 쇠말뚝을 박는 것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증언에 힘입어 그해 겨울부터 이듬해 봄에 걸쳐 서너 번 산을 오르내리면서 쇠말뚝을 뽑았더니 매스컴을 타 화제가 됐지요. 그 뒤 전국 조사를 시작했는데 확증이라 할 만한 것을 얻지는 못했습니다(구윤서 회장)."


구전이라서 진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꾸로 어떤 소문이 나돌아 그것을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여기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단맥은 이미 '택리지'나 '동국여지승람' 같은 고문헌에 설화 형태로 실려 있었다. 어쩌면 일제 단맥설은 그것의 시대적 변형에 불과할 수 있다.


물론 일제는 총독부 건립 등에서 지배자로서 힘을 민중에게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획적 단맥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노자키 교수는 "원래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타 버린 이래 250년이나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며 "그동안 경복궁이라는 명당을 잃어버린 조선의 기맥이 방치된 채 흘러 내려가 버렸을 텐데도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풍수를 좋아하던 대원군이 추진한 경복궁 재건이 근대 왕도 풍수설의 부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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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파묘'도 구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결과물일 수 있다. 추정되는 자료는 1971년 성문각에서 발간한 '등산 하이킹 시리즈' 북한산 편이다. 식산은행 은행장이던 와다 이치로와 한일은행 은행장이던 한상룡이 1927년 중국 인부를 써서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융화 정책에 동조해 재계로부터 1900원을 모아 공사를 진행했다고 전한다.


후자는 매국노의 대표로 일컬어지는 이완용의 조카뻘 되는 사람이다. 이완용에 대한 민족적 증오는 지금도 상당하다. 그의 자손들이 사람들 앞에서 이름을 밝힐 수 없을 정도다. 그중 한 명은 유산 청구 소송을 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장 감독은 당시 일었던 국민 정서를 일제 단맥설로 촉발해 유례없는 흥행을 일궈냈다. 그 매개체인 풍수는 여전히 한국인의 피를 달구고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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