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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규제현장⑤]안전 내세운 불합리한 '인증제도'…승강기산업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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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기안전공단 검사·인증 독점…인증비용 증가 등 中企 고통
"첨단기술 개발해도 상용화 못하는 제도적 허점 개선해 달라"
인증제도개편 TF 구성, "제로베이스서 재검토, 개편 추진 중"

승강기 업체 직원이 고층건물의 승강로에서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S리프트].

승강기 업체 직원이 고층건물의 승강로에서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S리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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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수십억이 걸린 공사다. 어떻게든 기한 내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잔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단에 불만이 있더라도 말할 수 없다. 설치검사에서 불합격을 받으면 납기를 지킬 수 없고,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경기도에서 승강기 부품제조 업체인 S리프트를 운영하는 김형욱(가명·62) 대표는 "국내 승강기 중소기업은 고사 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중소 승강기 업체들은 '안전'을 전면에 내세운 불합리한 '인증제도'를 사태의 원흉으로 지적한다.

국내 승강기 시장은 연간 신규 설치 대수를 기준으로 세계 3위, 보유·가동 대수로는 세계 7위 규모다. 연평균 2만대가량의 리모델링을 포함해 매년 4만대 이상 설치되고, 지난 6월말 기준 80만대의 승강기가 가동 중인 4조원 규모의 시장이다. 국가승강기정보센터에 따르면 279개 제조업체와 605개 설치업체, 1004개 유지보수업체 등 1888개 중소기업과 현대엘리베이터·티케이엘리베이터·오티스·한국미쓰미시·쉰들러 등 5개 대기업에서 3만5000여명이 종사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승강기안전공단(공단)이 승강기 검사(시험)와 인증을 독점하면서 시작됐다. 행정안전부는 2019년 3월부터 승강기시설안전관리법을 개정·시행하면서 승강기 검사(시험)과 인증을 공단으로 일원화했다. 또 시험·인증 대상 승강기 부품도 기존 6개에서 20개로 늘리고, 완제품에 대한 안전인증(모델인증)도 의무화했다.


그러나 공단은 1893개 업체 시험·인증 독점에 따른 인력 부족 등의 다양한 문제점을 노출했다. 인증처리 기간이 법정처리기간의 2배 가까이 걸리면서 납품 기일을 지키지 못해 지체보상금을 내는 업체들이 늘어났다. 또 이용자의 안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구동기·비상통화장치·이동케이블 등의 부품에 대한 시험·인증으로 업체가 부담하는 인증 관련 비용도 증가했다.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생산해 모델인증을 주로 받는 대기업은 인증 비용이 전체 매출의 0.5% 미만이지만, 다품종을 소량생산해 개별인증을 주로 받는 중소기업은 인증 비용 부담이 전체 매출의 5%까지 커진다. S리프트의 경우 2018년 이전 연평균 인증 비용으로 5000만원을 지출했으나, 2020년에는 3억5000만원을 지출해 비용이 7배가량 늘어났다.

엘리베이터 완충기를 시험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

엘리베이터 완충기를 시험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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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인증에 대한 신뢰 부족이다. 시험·인증기관인 공단에 구체적인 심사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비슷한 모델의 경우에도 심사담당자가 누구냐에 따라 판정 결과가 달라진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업체가 심사 결과 공개를 요청해도 공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당 업체는 결과에 수긍하지 않지만 독점적 지위를 가진 공단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굴복하는 것이다. '설치인증' 등 남은 절차가 많고, 다음 부품이나 제품에 대해 공단에서 불이익을 줄 경우 사업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적·시설적 한계로 인해 시험·인증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는 분통이 터진다. 초대형 화물 승강기나 최첨단 센서를 장착한 제품의 경우 시험할 수 있는 시설이나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공단에서 외면한다.


이렇다 보니 공단에서 인증받은 제품은 해외에서 '공인인증'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안전 강화를 위해 유럽표준(EN)을 벤치마킹, EN보다 6개나 더 많은 부품을 강제인증 받도록 하면서도 대외적으로 공신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승강기 업계는 북미지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EN과 부합하는 승강기 인증제도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강진 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승강기조합) 이사장은 "인증 품목이나 인증기법, 인증모델 분류체계 등 여러 가지를 유럽표준(EN) 코드에 부합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면서 "우리 인증은 EN 코드에 맞지 않는다. 국가 공인기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체제를 갖춰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이사장은 그러면서 "국내 단 한 곳뿐인 검사·인증기관에서 인증받지 못하면 어렵게 개발한 기술과 제품은 포기하라는 것"이라면서 "첨단기술을 개발해도 상용화를 못 하는 이런 제도적 허점을 개선해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난 7월 승강기조합과 대한승강기협회, 행정안전부와 공단 등 승강기 관련 주요 협단체와 정부 기관이 추천한 20여명의 위원으로 '인증제도 개편 실무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고, 인증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귀만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인증총괄실장은 "8월 들어 두 차례 회의를 열고, 정기심사 절차 간소화 등 개선방안을 만들고 있다. 안전 확보에 지장이 없는 수준에서 승강기 인증제도 전반에 대해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개선방안이 마련되면 법령의 개정 작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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