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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 검색은 하지만 책은 읽지 않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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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 검색은 하지만 책은 읽지 않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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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글은 많이 읽지만, 책은 거의 읽지 않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독서율은 47.5%에 불과하다. 한 해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 어른이 절반이 넘는 셈이다.


‘글자로 알고 글을 읽을 수 있으나, 기꺼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을 ‘비독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업무상 꼭 필요할 때는 책을 찾아서 읽을 수 있으나, 평소에 자발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다. 모바일 시대의 결과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다양한 매체에서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에 사람들 대다수는 책을 예전만큼 가치롭게 생각지 않는다.

이제 솔직해질 때가 되었다.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얻으려 할 때, 교양이나 상식을 충전하려 할 때, 책보다 검색을 이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정보 습득이나 교환만 생각하면 이제 책은 약한 매체로 전락했다. 뉴스도, 논문도, 연구물도, 기록물도, 강연도 대부분 온라인 매체를 통해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된다. ‘왜 책을 읽지 않느냐?’ 하는 질문에 ‘책 이외의 매체/콘텐츠를 이용하느라’(26.2%)로 솔직히 답하는 비율이 최근 몇 해 동안 빠르게 증가했다.


매리언 울프 미국 터프츠대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호모사피엔스의 역사 전체를 하루 24시간에 비유하면, 문자는 8000년 전인 밤 11시 2분경에 출현했고, 책은 11시 24분에 발명됐으며, 책의 대중화는 1000년 전인 11시 53분경에 일어났다. 보통교육이 실시되고 문맹률이 떨어져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대는 대다수 지역에서 하루의 마지막 15초를 남겨놓고 발생했다.


책이 나타난 이후, 전 세계 어디에서든 한순간도 독서의 확산이 멈춘 적은 없다. 그러나 오늘날 기술의 발달에 따라 지식과 정보의 습득에 더 유리한 수단이 나타났는데, 굳이 책을 고집하는 것은 반시대적 행태일지도 모른다. 책은 어느 날 세상에 나타난 것처럼, 스스로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책 읽기와 글 읽기는 다르다. 책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글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완연히 다르다. 비독서는 우리 정신으로부터 많은 것을 소실시킨다.


화면 속에는 평생 읽어도 못 읽을 만큼 많은 정보가 이미 존재하고, 새로운 정보도 무한히 생성되어, 말 그대로, 우리 눈앞으로 쏟아진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사람들은 모든 걸 훑어 읽거나, 꼼꼼히 따져 읽지 않고 글을 ‘본다.’ 제목들만 읽고 결론으로 직행하는 ‘F자형 읽기’, 눈에 띄는 단어나 문장만 읽어나가는 ‘지그재그 읽기’가 화면 읽기의 특징이다.


매리언 울프는 이러한 읽기는 독서와 달리 우리 안에서 ‘상시적 주의 과잉 상태’를 낳는다고 말한다. ‘산만함’이다. 주의의 질이 떨어져 집중을 오랫동안 이어가지 못하는 현상이다. 사실, 우리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시로 휴대전화를 들락거리지 않는가.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정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것을 ‘관능적 읽기’라고 불렀다. “실제로는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지난 24시간 동안 우주에서 벌어진 모든 불운과 격변, 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투, 살인, 파업, 파산, 화재, 독살, 자살, 이혼 등을 아침 식사 거리로 소비하지 말라.” 그러고는 ‘관능적’ 앞에 ‘역겨운’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였다. 비본질적인 것에 신경 쓰느라 유한한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다.


세상엔 생각을 만드는 읽기가 있고, 생각을 빼앗는 읽기가 있다. 디지털에서 아무리 많은 글을 읽어도, 훑어보기를 통해서는 깊은 사고(deep thinking)가 생겨나지 않는다. 물론, 하나하나 정성껏 읽으면 디지털 읽기에서도 깊은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깊은 사고를 익히려면 아무 글이나 읽기보다 애초에 정련된 정보를 담은 책을 읽는 쪽이 더 낫다.


책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기계가 아닐 수 있다. 모바일 매체가 없을 때 책이 그 역할을 떠맡았을 뿐이다. 책은 ‘관조 미디어’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주제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책은 사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통찰하며,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는 느린 지혜를 다루고, 섬세한 감각을 주고받는 데 쓰인다. 한마디로, 책은 생각을 만드는 기계다. 독서 혁명은 사고 혁명이었고, 우리 안에서 책 읽기는 합리적?비판적 사유와 보편적?계몽적 사고와 개성적?독창적 감각을 고양한다. 관조는 인간 창조성의 핵심이다. 독서가 사라지면, 현재 우리가 아는 한, 다른 어떤 수단으로도 창조적 사고를 북돋지 못한다.


책은 일정한 길이가 있는 자기 완결적 텍스트이기에 독서는 오랜 시간의 몰입과 함께 독특한 읽기 양식을 요구한다. 단어를 음미하고 문장을 숙고하는 천천히 읽기(Slow Reading), 책을 앞뒤로 뒤적이고 다른 책과 비교하는 능동적 읽기(Active Reading), 책에 담긴 감각과 감정과 논리를 수용해 그 의미를 따지는 꼼꼼히 읽기(Close Reading), 두세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의미를 새롭게 음미하는 다시 읽기(Re-reading) 등을 충분히 훈련하고, 반복 학습하며, 다양한 상황에 꾸준히 적용하는 훈련 없이 우리는 책을 ‘읽을’ 수 없다.


독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무척 힘도 들기에, 일단 비독자로 변한 사람 중에서 스스로 독자가 된 사람은 드물다. 인간은 충분히 훈련되어 익숙해지기 전에는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없다. 독서와 비독서의 선택은 인간의 심리 성향보다 외부 독서 환경, 즉 독서 훈련을 돕는 사회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어릴 때 부모님이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 주었듯이, 누군가 도움을 줄 때만 인간은 책을 읽을 수 있다.


비독서 시대다. 독서가 만드는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관능적 읽기에 빠져 책을 읽지 않는 비독자를 도울 사회적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도서관 증설, 독서공동체 지원 등은 비독자를 독자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자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 대화의 활성화가 우리의 희망이다. 독서가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더욱더 사회적 관심을 쏟을 때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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