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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적들⑥] 노동개혁 '실패史'…노조에 가로막힌 경쟁력 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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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은 우리나라의 해묵은 숙제다. 새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핵심 국정과제로 언급됐지만 대체로 실패했다. 노동계 눈치에 제대로 추진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추진하더라도 사회적 대화 실패로 상처만 남긴 채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그러는 사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들 만큼 심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비정규직 문제, 반복되는 파업, 기업경쟁력 하락 등으로 몸살을 앓는 '노동 후진국'으로 전락했다.<관련기사> '개혁의 적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동개혁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에서 힘을 잃고 있는 기업은 물론, 양극화로 고통받는 소외 노동자들도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노동개혁을 위한 환경은 녹록지 않다. 노동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민주노총은 노동개혁을 생존권과 결부시키며 총력투쟁을 예고하고 있고, 지난 5년간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데 일조한 거대 야당의 협조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개혁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기득권을 가진 기성 노동조합과의 싸움이다. 역대 정권에서 줄줄이 실패한 노동개혁 앞엔 노조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새정부에선 개혁의 정책적 타깃을 기성 거대 노조가 아닌 일반 근로자로 바꾸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노조가 아니라 국민적 지지를 확보해야 이전 정부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국가 경쟁력 회복을 위한 노동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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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 가로막는 노조

외환위기 직후 국제통화기금(IMF)식 개혁을 추진해야 했던 김대중 정부부터 전례없이 광범위한 제도 개편을 실시한 박근혜 정부까지 노동개혁은 대체로 ‘유연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산업구조의 변화, 기업의 경영 악화, 문제직원이나 저성과자 해고 필요 등에 따라 인력을 조정할 수 있어야 기업 경쟁력과 국가 경쟁력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매번 노조의 극심한 반대가 잇따랐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1998년 2월 민주노총까지 참여한 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켜 3주만에 90개 항목에 달하는 타협안이 나왔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절박함이 작용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못했던 정리해고와 파견제가 담겼고, 고용안정과 실업대책, 사회안전망 확충방안 등 노동시장에 대한 광범위한 첫 개혁작업이 이뤄졌다.


그러나 합의 직후 정리해고제 등을 두고 민주노총은 극심한 내부 갈등을 빚었으며, 결국 노사정위를 탈퇴하는 강수를 뒀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노총과 함께 개혁을 완료해야 했다. 민주노총은 이때의 경험으로 이후 사회적대화에 불참하게 되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노무현 대통령 때에도 비정규직 보호법(비정규직 2년 이상 채용할 경우 정규직 전환 의무화)이 쟁점화되자 양대노총이 각종 노동관련위원회에서 탈퇴했고, 민주노총은 총파업까지 발표하는 등 혼란이 일었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2006년 9월 전국공무원노동자결의대회에서 “노무현 정권과의 전면전”을 선언하기도 했다.


친기업 성향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펼친 이명박·박근혜정부 때는 노동계의 투쟁이 극한에 달했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노동시간·임금제도·산업재해 등 광범위한 노동개혁을 두고 1년여간 협의해 2015년 9월15일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지만 한국노총이 4개월 만에 합의를 파기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후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와 노동계가 주축이 된 촛불집회로 물러났다. 노동계 관계자는 “노조에는 강하게 투쟁하는 사람을 치켜세워주는 분위기가 있다”며 “정권을 막론하고 폭력성 짙은 투쟁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허무한 ‘친노동’...文정부의 실패

촛불집회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개혁보다는 노조 끌어안기에 치중했다. '노동존중 사회'를 핵심 국정기조로 내세우면서 박근혜 정부의 양대 지침을 폐지하고 최저임금 1만원, 노동시간 주 52시간으로 단축, 고용·산재보험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친노동 정책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노동자 삶의 질이 개선되는 등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저성장, 불평등, 저출산 등 우리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는 더욱 심해졌다. 특히 과도한 노조 보호는 경영계와 노동계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고, 소수의 노조원이 대다수 일반 근로자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불공정한 구조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정작 개혁다운 개혁은 추진되지 못했다. 반시장적 포퓰리즘 정책과 각종 규제로 인해 기업 경영환경이 크게 위축됐고 일률적인 주 52시간제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부작용이 잇따랐다. 노무현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원로 노동 전문가인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좌담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노동 존중’의 실체는 노동자가 아닌 노조 존중”이라며 “혼란과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친노동 정부를 표방했지만 사회적대화조차 순탄치 않았다. 사회적대화 협의체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민주노총 출신인 문성현 위원장을 임명해 민주노총을 포함한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했으나 민주노총이 투쟁 노선을 고수하며 공염불에 그쳤다. 특히 민주노총은 정권 출범 1년 만인 2018년 권리확대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감행해 그동안 노동계에 애정을 보여온 문재인 정부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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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보단 투쟁…민주노총 리스크

이처럼 투쟁방식을 유지해온 민주노총은 노동개혁을 가로막아온 대표적인 벽으로 언급된다. 양대노총 중에서도 한국노총은 대화와 협상을 중시하는 ‘온건파’로 분류되지만 민주노총은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도 총투쟁을 벌여올 정도로 기업과 정부에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했던 지난해 7월에도 민주노총은 방역지침을 무시하고 대규모 불법시위를 감행해 당시 양경수 위원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여기엔 역사적으로 ‘투쟁 DNA’를 가질 수밖에 없는 민주노총의 태생적 한계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1970~1980년대 어용 노조와 군사정권에 대항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이념으로 만들어진 조직인 만큼 전투적인 행동 방식을 보여왔고, 그것이 현재까지 조직을 유지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준용 국민노조 사무총장은 “민주노총의 주력은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등이고 건설, 콜센터, 청소·환경미화 등 노동자들은 용병처럼 싸우는 역할을 한다”며 “이념으로 뭉쳐져 있다”고 말했다.


◆개혁 시급한 尹...노조 떨쳐내야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이 같은 노조의 반대를 뛰어넘어야 한다. 민주노총은 화물노조를 시작으로 총파업을 시작했고, 다음달 전국노동자대회와 금속노조 총파업, 10월 민주노총 총파업 등 연말까지 대규모 장외투쟁을 예고했다. 앞선 화물연대 파업에서 궁지에 몰린 정부가 노조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강경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노총 역시 사회적대화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친기업적인 국정과제 안건 상당수에 대해 정부와 입장차이가 크다.


전문가들은 노조의 반대와 투쟁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노동개혁은 이제 더이상 노동계와 경영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 노동자의 문제"라며 "청년을 비롯해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사람 전체를 위한 노동개혁이라고 국민들을 설득한다면 충분히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기성 노동계의 과대 대표성 문제를 해소하고, 대다수 소외된 노동자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지낸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는 "민주노총은 타협보다는 투쟁노선을 보여왔기 때문에 대화 테이블이 열리더라도 쉽게 참여하진 않을 것"이라며 "테이블에 앉지는 않더라도 노동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화가 시작되면 그 흐름 속에는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빠졌다고 못할 건 없다"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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