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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엔데믹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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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엔데믹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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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요즘 미국 뉴욕 맨해튼은 활기가 넘친다. 기업들은 재택 근무를 풀었고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갔다. 주요 관광지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텅 비었던 레스토랑과 바에도 사람이 가득하다. 마스크를 벗은 한국의 최근 풍경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치 오랜 억눌림 끝에 파티가 시작된 것만 같다.


하지만 엔데믹(endemic·감염병 주기적 유행)으로 한발 내딛는 현 시점에서 우리의 파티는 다른 방식이 돼야 한다. 최근 뉴욕에서 한발 늦게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개인적 경험에 비춰 단순히 재유행 가능성만을 경고하는 것이 아니다. 2년 이상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겪고 있는 세계 각국에서는 태풍이 지나간 후 길거리처럼, 이미 크고 작은 상처들이 확인된다.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찰스 블로는 이를 ‘팬데믹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라고 정의했다. 바이러스가 사라진 이후에도 깊이 남을 트라우마를 결코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해선 안된다는 경고를 담은 표현이다. 이제는 확진을 억제하는 ‘방역’에 그치지 않고, 코로나19가 남긴 상처들까지 함께 직시하고 살피기 시작해야 할 때가 됐다.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는 최근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는 울산광역시의 인구에 육박하는 규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가족들 저녁 식사자리에 100만개의 빈 의자가 생겼다"며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상실"이라고 밝혔다. 한국 역시 큰 상실을 겪고 있다. 누적 사망자 2만3744명, 치명률 0.13%(16일 기준)라는 통계 아래에는 사랑하는 부모·자녀·친구를 떠나보낸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가려져 있다.


팬데믹 혼란 속에 많은 이들은 제대로 된 애도조차 하지 못했다. 사회적으로는 애도 대신, 감염자에 대한 비난과 분노가 그 자리를 채웠다. 장기화한 거리두기로 소중한 일상도 사라졌다. 곳곳에서 불평등·차별·혐오 등 갈등이 커졌고, 취약 계층을 떠받쳐온 고리가 끊어지며 ‘이상 징후’들도 확인된다.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 내에서 증오범죄·총기사고 등이 급증한 이유도 팬데믹에서 찾고 있다. 우리가 그냥 이대로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안되는 명백한 이유다.


한때 미국 코로나19 사태의 진원지로 꼽혔던 뉴욕에서는 이러한 상처들을 마주하기 위한 작은 움직임들이 시작됐다. 뉴욕 브루클린박물관 4층에는 모래로 그린 초상화들이 매주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을 직접 애도할 수 있도록 한 프로젝트 작품(모래 시계의 균열)이다. 더 시티는 뉴요커들을 위한 추모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코로나19로 사망한 뉴요커 4만여명 중 2600여명의 모습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재확산 우려가 잇따르는 와중에서도 기념관·기념일 등 여러 형태로 코로나19 메모리얼에 대한 찬반 논의가 오간다. 뉴욕타임스(NYT)는 앞서 ‘뉴욕에 코로나 메모리얼이 필요한 이유’라는 사설을 통해 "애도를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은 모든 커뮤니티가 재건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엔데믹 전환에 한발 더 가까워진 한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있다. 어떠한 형태든 메모리얼이 팬데믹 PTSD를 바로 해결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남겨진 상처들을 살피고 직면하는 계기를 만들 순 있다. 사망자 100만명을 넘어선 날 미국 내 모든 연방건물에 조기를 게양하도록 지시한 바이든 대통령의 말처럼, ‘치유하려면 기억해야 한다’. 이 과정 없이는 결코 회복할 수도, 변화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이 종식된 이후에는 늦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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