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일본의 주 4일 근무제 실험이 올해 파나소닉과 히타치제작소 등 제조 대기업을 중심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시작된 유연근무 수요 확대와 성과 중심의 기업 문화 전환에 저출산·고령화라는 장기 과제를 맞닥뜨린 일본이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한 방편으로 주 4일제를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12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히타치는 본사 직원 1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월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제도를 2022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중 도입한다. 하루 3시간45분으로 정해져 있는 최소 근로시간 제한을 없애고 근무일도 직원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체 근로시간은 현 수준을 유지해 급여는 변동이 없도록 하되 직원이 근로시간을 조정해 주 4일 근무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월~목요일 근로시간을 현 수준인 7시간45분에서 9~10시간으로 늘리면서 금요일은 휴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체적으로 주 4일제를 할 수 있다. 근로시간을 월별로 산정하는 만큼 월초에 근로시간을 앞당겨 사용하고 월말에 장기간 휴식을 취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
일본의 주 4일제 실험은 코로나19 이후 본격화했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2020년 재택근무, 교대 출근, 주 4일제 등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고 지난해 4월에는 일본 집권 자민당이 주 4일제 추진을 공식화한 뒤 같은 해 7월 확정한 경제재정운영 기본방침에 주 4일제 도입을 장려한다고 명시했다.
주 4일제는 주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도입했으나 지난 1월 일본 제조 대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파나소닉이 4월 지주회사체제 전환 뒤 각 계열사, 노조와 협의해 주 4일제 도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통신장비 업체인 NEC도 올해 중 본사 직원 2만명을 대상으로 주 4일제를 도입, 그룹사로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NEC의 경우 근로시간이 줄면 급여는 줄이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시오노기제약과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은 희망자를 대상으로 주 4일제를 도입하며, 패션브랜드 유니클로 사업을 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은 근무지역이 한정된 정사원에 대해 급여 수준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주4일 근무를 도입할 예정이다.
일본이 이처럼 주 4일제 실험에 적극적인 이유는 삶의 질을 개선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IT의 발전 등으로 산업의 서비스화와 지식 집약화가 진행되면서 근로시간과 성과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여기에 유연 근무를 원하는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직원들의 근로 의욕을 끌어올려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더해졌다. 니혼게이자이는 "직원들에게 시간의 유연성을 주고 성과로 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기업에 요구되고 있다"며 "주 4일제도 성과를 중시하는 근무 형태 중 하나"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또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에도 주 4일제가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연한 근무로 휴일이 늘면 육아나 치료 등을 하기가 유리해지면서 사회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 본 것이다.
일본의 주 4일제 실험이 자리를 잡게 된다면 1987년 노동기준법 개정으로 주 5일제가 도입된 이후 30여년 만에 근로 환경의 변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당시 장시간 근무라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법정 근로시간을 주 48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단축하면서 주 5일제를 받아들였다.
다만 주 4일제 도입의 성패를 가를 요소는 바로 임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 4일제를 실시하는 조건으로 급여 감소가 있으면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한 여론조사 결과 근로일수 감소로 수입이 줄어들면 주 4일제를 원치 않는다는 응답이 78%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근로시간과 수입의 변화 없이 주 4일제를 실시할 경우 이를 도입할 것이라는 응답은 77%였다.
주 4일제 실험은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수년째 진행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2015~2021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주 4일제를 도입, 생산성 향상과 서비스 질 유지가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으며 벨기에에서도 주 4일제 제도화를 검토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를 휴일로 하는 주 4.5일제를 국가 차원에서 올해 1월부터 도입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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