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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형의 오독오독] 쩐널리즘이 먼저냐 低널리즘이 먼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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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타이비 作 헤이트 : 우리는 증오를 팝니다
CBS 사장의 발언 소개하며 美 언론들의 이중적인 행태 비판
"오늘날의 뉴스, 공익성 보다는 증오를 담아 분노 자극" 지적도
갑자기 논조가 180도 바뀐 사안 그 이면에는 상업적인 계산 있어

[이근형의 오독오독] 쩐널리즘이 먼저냐 低널리즘이 먼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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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재미없는 글을 쓰지만 이번에는 더더욱 대놓고 재미없는 글을 써보고자 한다. 우리의 직업 얘기다. 세상은 우리를 ‘기레기’라고 부른다. ‘기자+쓰레기’라는 뜻이다. 물론 직업마다 ‘멸칭’은 존재한다. 검찰이나 경찰에 비해 우리의 멸칭은 점잖은 축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도 황색언론이니 폐지니 바보상자니 비판은 많았지만 대중적으로 집중 비난의 대상이 된 건 아무래도 TV, 신문과 같은 제한된 공간을 떠나 인터넷으로 기사를 접하게 된 후가 아닐까 싶다. 기사와 제목이라는 건 원래부터 낚시의 성격이 있어왔지만 대(大)인터넷 시대를 맞아 심화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2013년엔 ‘충격 고로케’라는 사이트가 있었다. 헉, 이럴 수가, 충격 등 별것도 아닌 내용에 자극적인 제목을 달은 기사를 집계하는 사이트로 언론사별 순위가 나와 있었다. (그때의 온라인 강자가 지금도 그대로다.) 개발자는 ‘일간워스트’의 운영자였던 이준행씨로 그의 웃펐던 인터뷰가 기억난다. 본인은 순위로 지적하면 언론사들이 자중할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그 순위조차 언론사들의 경쟁 대상이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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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언론인인 맷 타이비가 쓴 ‘헤이트 : 우리는 증오를 팝니다’는 미국 ‘기레기’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어 여러모로 공감 간 책이다. 그는 "오늘날 뉴스라 불리는 것들은 공익성을 담고 있는 정보가 아니며 ‘당신만의 분노’를 효과적으로 일으키는 유해성 물질이고, 그것은 담배만큼이나 해롭다"고 주장한다. 언론 몰락의 시대에서 언론이 택한 생존 방법은 증오를 부추기는 것이며 이는 진보 보수 언론 둘 다 다르지 않다고 진단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지금의 언론은 증오를 상업화했기에 책임감도 일관된 논조도 없다. CBS 사장의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에는 나쁘지만 언론에는 좋다. 왜냐하면 돈이 되니까"라는 솔직 발언과 트럼프를 의미 없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 막상 대통령이 되니까 갑자기 표정을 바꿔 민주주의의 죽음을 부르짖었던 진보 언론들이 그 예다.


맞다. 언론은 증오를 부추긴다. 공포를 조장하기도 한다. 긍정적 감정이나 각종 미담보다, 증오와 공포는 더 빨리 퍼진다. 최근 손정민군 사망 사건이 대표적이다. 객관적 사실과 경찰의 수사와 상관없이 함께 있었던 친구를 범인으로 단정 짓는 듯한 보도가 이어졌다. 안타까운 점은 전혀 근거가 없는 유튜버들의 주장을 크로스체크도 하지 않고 단순 전달하는 보도가 제도권 언론에서도 쏟아졌다는 거다. 따옴표 좀 친다고 책임이 없어지지 않는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따옴표 저널리즘을 통해 스스로를 속인다.


백신 보도는 또 어땠나. 그나마 독감 예방 접종 관련 사망보도의 교훈으로 크로스체크 없이 일단 백신 맞고 사망했다는 식의 보도가 크게 줄기는 했다. 하지만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얀셴, 노바백스를 일렬로 늘어뜨려 놓고 "화이자, 모더나는 90% 예방률이니까 제일 좋고 아스트라제네카는 70%니까 성능이 떨어지는 백신이다"라는 식의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비교가 초기에는 대세였다. 표본과 기간이 다른 조사의 비교는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해낼 수 없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들은 각기 다른 회사의 시기가 다른 여론조사를 단순 비교해서 자극적인 결과를 만드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제는 같은 회사의 같은 패턴으로 조사한 것만 유효하다는 게 상식이 돼 누구도 그런 식의 보도는 하지 않는다. 초기 백신 보도는 무의미한 선거 여론조사 비교 기사의 재연이었다.

최근 흐름이 확 바뀐 백신 보도를 보고 의아해 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백신 부작용만 하루종일 강조하던 언론이 갑자기 ‘우리도 백신 맞읍시다’라며 태세전환을 했다. "우리는 그동안 과학적인 차원에서 언론이 해야 할 부작용 체크를 했을 뿐"이라는 변명과 함께 말이다. 논조로 보면 태세전환이지만 상업적 관점으로 보면 흐름이 바뀐 건 없다. 백신을 맞은 사람이 별로 없을 때는 부작용 강조가 공포를 전염시키는 데 더 용이했지만 백신 접종이 확산된 후에는 내 차례가 언제 올까 하는 감정을 건드리는 게 더 증오 확산에 용이하기 때문에 한 선택일 뿐이다.


요즘 언론은 너무 쉽게 증오를 판다. 클릭수 전쟁시대에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품이 많이 들어가는 기사보다 단순 보도가 더 많은 트래픽을 가져왔을 때 그 사실에 자기합리화도 된다. 하지만 밀키트의 발달이 그저 그런 식당들의 몰락을 가져왔듯 지금과 같이 레토르트 기사만 양산하다가는 인공지능(AI)이 우리의 몰락을 가져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아직은 네이버님께서 AI 기자를 개발하는 것보다 언론사와 제휴를 맺는 게 훨씬 싸서 그냥 있는 것 같지만.


이근형 기자 gh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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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 : 증오를 팝니다 / 맷 타이비 지음 / 서민아 옮김 / 필로소픽 / 1만9500원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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