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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 그 안의 삶①]"흉기 휘두르고 쓰레기산 만들어도…" 그 사람은 다시 내 옆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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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 30년…사회취약계층 복지 사각지대서 고립생활
주민들, 기물파손·난동 등에 일상이 '불안'…떠날 수도 없어
정부 공공임대주택 양적 공급 넘어 '그 안의 삶' 고민할 때

[임대주택, 그 안의 삶①]"흉기 휘두르고 쓰레기산 만들어도…" 그 사람은 다시 내 옆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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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 최동현 기자] # "너무, 무서워요. 동네가." 서울 강서구의 한 임대주택단지에선 올해만 두 번의 '칼부림'이 났다. 한 사건은 환청에 시달리던 입주민 A씨가 옆집 초인종을 눌러 문을 여는 옆집 주민을 향해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다. 같은 단지 주민은 당시 사건에 대해 "피해 가구엔 세 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아들이 집에 있어 큰 사고를 막았다"고 했다. 또 한 건은 아들인 B씨가 어머니를 흉기로 상해한 사건이다. B씨의 어머니가 화장실로 몸을 숨겨 경찰에 신고하면서 더 큰 비극을 피했다. 당시 B씨는 어머니가 사람이 아니라 '위협적인 동물'로 보이는 환시 증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 주민은 "최근 정신 장애인의 입주가 늘었으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요즘엔 누가 이사 오면 가서 조심스럽게 물어요. '혼자 오셨냐'고…. 가족이 없거나 가족으로부터 외면 당했거나, 다양한 이유를 안고 이곳으로 온 1인가구, 그 중에서도 정신 질환이 있는 가구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서죠. 도움이 가장 필요한 이들인데 제대로 관리는 되지 않고 있으니 그 피해는 이웃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어요. 현재로썬 이웃이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요."


# 서울 노원구 한 임대주택에선 최근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는 입주민을 끈질기게 설득해 해당 가구를 청소했다. 가구 내 천장에 닿을 만큼 폐지와 빈 페트병, 음식물 등 쓰레기가 쌓여 있어 악취뿐 아니라 바퀴벌레가 발생, 벽을 타고 넘어오는 등의 문제로 주민 민원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청소에 나섰던 이 단지 관리소장은 "그 집 가서 직접 설득하고 쓰레기를 치웠는데, 6개월만 지나도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일시적인 청소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 거주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거주자의 정신 건강 관리가 필요하단 얘기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임대주택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한 동에 2~3가구는 저장강박증으로 인해 '쓰레기를 쌓아두고 산다'는 게 이웃들의 설명이다. 이 단지에선 지난 7월과 9월 '저장강박가구'에 대한 청소가 진행됐는데, 쓰레기 더미 속에서 쥐가 여러 마리 나오는 바람에 청소에 나섰던 관리소 직원과 주민들은 경악했다. 당시 청소를 했던 주민은 "한동안 토하고 링거 맞고 밥도 며칠을 못 먹는 등 너무 고생했다. 손을 쓸 수가 없는 지경이어서 쓰레기를 장판째 들어냈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이곳엔 이 같은 저장강박가구가 여럿 되는데 이렇게 치워줄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민원이 빗발쳐도 해당 가구가 "내가 치우겠다"며 청소 제안을 거절하면 손을 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저장강박증이 있는 주민은 대부분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고립돼 생활해요. 추운 겨울에 맨발로 다니거나 주민들이 오가는 비상 계단에서 몇 시간씩 기도를 하는 등 정신적으로 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러나 현실은 이들에 대한 근본적 치료 등이 이뤄지기는 커녕 '겨우 겨우 설득해 청소라도 하면 다행'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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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한 임대주택 내 저장강박가구 모습. 이웃 주민들은 이같은 저장강박가구에서 발생하는 악취와 벌레 문제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민원이 다수 발생해도 해당 가구가 허락해야 청소를 할 수 있어 단지 관리소 등에서도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안인득 사건'이 발생한 후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 주민들의 불안과 불편은 현재도 이처럼 여전했다. 이들의 불안감은 이 곳에 살고 있는 사회 취약 계층, 그 중에서도 정신 장애인에 대한 파악과 분석, 관리가 꼼꼼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 올들어 국토교통부가 임대주택 입주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와 심층상담을 진행하기 위해 '찾아가는 마이홈센터' 시범사업 등을 시작했으나 아직 단지 당 주거복지사가 1명씩 밖에 배치되지 않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3년간 공공임대주택에서 발생한 사건ㆍ사고는 650여건에 이른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지난 6월까지 공공임대주택에서 사망ㆍ상해사고를 비롯한 안전사고 등 각종 사건ㆍ사고가 644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이 170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고독사 154건, 직원폭행 97건, 방화 38건이 일어났다. 살인도 8건이 발생했다. 기물파손과 난동에 의한 업무방해, 흉기협박 등도 177건이나 된다.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피해를 본 입주민을 다른 단지, 다른 지역 임대아파트로 옮기는 조치 뿐이다. 현행 공공주택특별법에는 반복적ㆍ상습적으로 입주민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폭행ㆍ재물손괴 등 행위를 하는 임차인에 대해 강제 퇴거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가 '울며 겨자먹기'로 이주를 하거나, 이마저 쉽지 않아 형을 살고 '되돌아온 가해자'와 여전히 이웃이 돼 사는 불합리가 발생한다. 지난해 부천의 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D씨는 이웃과 폭행 시비로 보복 범죄 등의 피해가 우려돼 경찰서에 신변을 요청했으며 D씨는 타단지로 이주 조치됐다. 올 4월 경남 창원의 한 임대아파트에선 주거침입과 절도, 공갈 등 범죄가 발생해 피해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범죄 피해자의 경우 '타단지 우선입주 제도'를 통해 이주가 가능한 구조지만 상당수 이조차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기초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사에 따른 부대 비용 등이 우려돼서다. 피해자가 '내 돈을 들여 내 기반을 버리고'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서울 강서구 임대주택에서 A씨에게 피해를 받은 가구는 이 같은 이유로 이사를 가지 못했다.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공공임대주택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은 3만6460건에 달했다. 2014년 6267건에서 2018년 8836건으로 5년 새 40%가 늘었다. '안인득 사건'을 계기로 공공주택특별법에 계약해지 관련 근거를 신설하는 내용 등을 담은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으나 아직 계류 중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임대주택의 지속적인 공급과 더불어 질적인 개선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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