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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조커는 우릴 보고 웃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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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필립스 감독·호아킨 피닉스 주연 '조커'

[이종길의 영화읽기]조커는 우릴 보고 웃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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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흥행에 이용당하는 병약한 플렉, 담대하게 살인 고백하는 조커로 변신

비극의 인생도 희극처럼 견딜 수 있는...인간답게 살고 싶은 의지 표현


영화 ‘조커’는 라디오 뉴스로 출발한다. 미화원들의 파업으로 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분노를 달랠 계획이 없다. 오히려 시민의 불편 해소를 운운하며 방위군 투입을 고려한다. 언론도 청소가 중단된 이유 등은 전하지 않는다. 하루빨리 파업이 끝나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뉴스에 관심이 없다. 거울을 보며 광대로 분장한다. ‘머레이 쇼’의 사회자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처럼 유명한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한다. 머레이 쇼는 ‘투나잇 쇼’, ‘제리 스프링어 쇼’ 같은 미국 TV의 전형적인 토크쇼. 흥미로운 손님을 섭외하고 작위적으로 연출해 시청률을 확보한다. 그러다 보니 반사회적이고 비정상적인 이야기를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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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코미디의 왕(1983년)’에서 미국식 쇼 비즈니스를 비판한 바 있다. 코미디언을 꿈꾸는 루퍼트 펍킨(로버트 드니로)이 유명 토크쇼 진행자 제리 랭포드(제리 루이스)를 납치하고 자기가 대신 무대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펍킨은 스탠드업 코미디로 토크쇼의 문을 연다. 대역 없이 혼자서 말로 웃기는 방식은 방청객과 시청자에게 친근감을 전하는 일종의 속임수다. 쇼 비즈니스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펍킨은 충분한 가능성을 증명한다.

“여러분은 랭포드가 왜 안 나왔는지 궁금할 거예요. 말해드리죠. 사실 랭포드는 지금 꽁꽁 묶여 있어요. 내가 묶었죠. 농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랭포드를 납치하지 않고서는 쇼에 출연할 수 없었어요. 랭포드는 지금쯤 의자에 묶인 채 시내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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펍킨이 털어놓는 진실에 청중은 박장대소한다. 납치가 사실로 알려진 뒤에도 성원을 보낸다. 조커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상류층 인사들이 대형 극장에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1936년)’를 관람하는 신이다. 모던 타임즈는 급속한 산업화로 대두된 빈곤과 소득 불균형을 코미디로 엮어 집약한 작품이다.


관객들은 하나같이 폭소를 터뜨린다. 우스꽝스러운 행위 이면의 괴로운 삶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거부하면서도 그랬을 것이다. 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나도 아랑곳하지 않으므로. 고위직 관리들 또한 정신질환 환자들이 받아야 할 상담이나 치료 등 복지정책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파업을 진압하고 복지예산을 삭감하는 데만 열을 올린다.


조커는 중산층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토크쇼 청중으로 보여준다. 머레이 쇼에서 플렉이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밝히자 캴캴대고 웃으며 조롱한다. 하지만 프랭클린이 고백하는 비슷한 과거에 대해서는 동정의 눈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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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은 플렉의 코미디 재능을 눈여겨본 적이 없다. 쇼의 흥행 차원에서 병약한 인상과 이상 행위를 이용할 뿐이었다. 정실질환 전문가를 초대해 진단하고 윤리적 가치를 공유할 심산이었다. 이 과정에서 플렉의 피폐한 삶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평소 “내 죽음이 내 삶보다 더 가치가 있기를”이라고 중얼거리던 플렉은 부조리를 느끼고 마음을 바꾼다. 담대하게 살인을 고백하고 조커가 된다.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한 ‘배트맨(1989년)’의 주인공 브루스 웨인(마이클 키튼)은 프랭클린의 기저를 이루는 상업주의와 보수주의를 상징하는 배역이다. 부와 법 질서를 중시하는 미국적 부르주아와 힘에 의한 지배를 추구하는 영국적 귀족의 결합체다. 그는 한밤중에 배트맨 가면을 쓰고 지배계급의 폭력 욕구를 초법적으로 충족한다.


이 과정에서 한낱 범죄자에 불과했던 잭 네이피어(잭 니콜슨)는 반사회적 악의 영웅으로 거듭난다. 배트맨이 추락할 위기에 빠진 그의 손을 잡아 올려주는 척하다가 폐수 속으로 빠뜨려버린다. 배트맨이 지하세계에 있던 조커를 끌어올려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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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배트맨은 미국 보수주의에 대한 비판적 텍스트였다. 주요 배경인 고담시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딴 이름. 영국에 있었다는 바보들의 마을에서 유래했다. 어근은 로마 제국을 유린한 야만인 고트족이다. 조커는 여기에 저항하는 무정부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사리사욕이나 복수보다 사회 혼란, 질서 파괴, 가치관 유린 등을 목표로 삼는다.


조커를 연출한 토드 필립스 감독은 저항의 대상을 보다 명확히 드러낸다.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브래트 컬렌)이다. 그는 막대한 부를 앞세워 시장 선거에 출마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파업을 외면하고 플렉을 하찮게 여긴다. 친아버지가 아니냐는 물음에 주먹으로 답할 만큼 폭력적이기도 하다. 물론 카메라 앞에서는 예의 바른 신사로 돌변한다. 그래서 저소득 빈곤층은 고통과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그 원인을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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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은 정치에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괄시와 고통이 심해지면서 누구보다 위험하고 정치적인 인물로 변한다. 모던 타임즈에서 노동자가 시위대의 지지를 받는 과정과 흡사하다. 노동자는 정신병원에서 신경쇠약을 치료받고 퇴원한다. 지나가던 트럭에서 깃발이 떨어지자 냉큼 주워 차를 쫓는데, 마침 노동자 시위대의 행렬이 그 뒤를 따른다. 경찰은 그를 주동자로 오인하고 체포한다. 그 뒤에도 투쟁은 멈출 줄을 모른다.


채플린은 인생을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말했다. 조커는 그 대척점에 있다. 플렉은 코미디언이 되려고 노력했으나 미치광이가 돼버렸다. 이때 그의 반사회적이고 비정상적인 이야기에 웃고 떠들던 청중은 공범이 된다.


그들 앞에서 버튼이 그린 배트맨은 마스크를 벗어야 제 얼굴을 찾았다. 반대로 조커는 분을 칠해야 얼굴이 살색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이 또한 인간답게 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아닐까. 아무리 인생이 비극이라도 희극처럼 살아야 견딜 수 있을 테니.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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