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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 세금 분야의 극일(克日)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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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조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단을 찾고 있다. 나라가 뒤숭숭하지만, 세금 분야는 일찍이 일본을 극복(克日)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국 과세관청은 1954년 일본 기업이 한국 조달청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얻은 소득에 대해 당시 세법 규정을 적용하여 추계과세(인정과세) 방법으로 거액의 세금을 부과했었다. 이후 한일 국교 정상화와 함께 일본 기업의 한국 진출이 늘어났는데, 이들에 대한 엄정한 세무관리를 견디다 못한 일본이 세금부담 완화를 위해 우리나라에 조세조약 체결을 요청했다.

협상 과정에서 쟁점은 사업소득 과세모델을 유엔(UN)의 '총괄 주의 방식(일본 기업의 한국 수출액 모두에 과세하되 원가를 약간 인정하는 방법)'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귀속주의 방식(일본 기업의 한국 지점이 판매한 금액만 과세하는 방법)'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대안별로 과세소득을 계산해보면 '추계과세:총괄주의:귀속주의=130:100:78' 정도다(오병주ㆍ외국 법인 과세소득 범위에 관한 연구). 한국은 총괄주의를, 일본은 귀속주의를 주장했는데, 추계과세가 계속되자 다급한 일본이 한국의 주장을 수용했다.

당시는 전자계산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실무자들이 수판을 들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밤새 계산하고 협상 대안을 마련했던 연필로 쓰인 문서를 보노라면 당시 고생했던 공무원들의 노고가 전해져온다.


일본의 조급함과 절실함을 파악한 뒤 유연하게 협상에 임하니 우리에게 유리한 방법을 일본이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면서 1999년 귀속주의 방식으로 개정하였다. 이른바 선진국들이 다 그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이유로.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에 진출한 내로라하는 일본 기업들에 대한 세금관리도 엄격했다. 필자도 참여한 여러 번의 세무조사에서 그들이 건네준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고 원칙대로 임한 결과 당시로선 거액인 수백억 원을 여러 차례 과세한 적이 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원칙을 지켰다. 이에 탄복한 일본 기업의 책임자가 당시 조사팀장이었던 고(故) 이병연 서기관에 대해 자국 신문에다가 '한국에도 이렇게 올곧은 공무원이 있다'라고 하면서 '독일 병정'이라고 소개한 일화도 있다.

필자가 연구하는 세법과 세제는 이미 일본의 수준을 넘었다. 전산화와 국제화를 일본보다 훨씬 이전에 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 나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도 했다. 그 결과, 이젠 일본에서 배울 게 많지 않다. 우리나라가 1977년도에 도입하여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세금계산서 제도를 일본은 2023년도에서나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식민지배 시절을 겪지 않은 현재 대부분의 한국 사람에게 일본은 그저 하나의 국가일 따름이다. 무조건적 '일본 포비아(일본의 금수 조치나 자금 회수로 한국이 어려움에 부닥칠 것 같다는 걱정)'는 금물이다. 세무 분야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이미 일본을 뛰어넘은 경험이 있다. 낮술을 먹고 '사케' 논쟁이나 벌이는 문제의 그 분야는 빼놓고.


극일은 구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실력을 키워야 한다. 국제규범을 일탈한 일본의 정책은 비판하고 필요하다면 강하게 응징하자. 그렇다고 일본 국민까지 미워할 일은 아니다. 그들도 비상식적인 극소수 일본 정치인과 집단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도산 안창호의 말이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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