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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싱턴'은 어떻게 케첩의 대명사 '하인즈'를 꺾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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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業스토리]2010년 브라운大 재학생 2명이 창업
'자린고비' 하인즈에 고급·스토리텔링으로 승부
창업 7년 만에 유닐레버에 1.4억달러에 피인수

[출처=서 켄싱턴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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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케첩 하면 하인즈, 하인즈하면 케첩인 시절이 있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크래프트 하인즈(Kraft Heinz, 이하 하인즈)의 케첩은 전 세계에서 매년 6억5000만개 이상이 팔리며 2016년까지 10년 동안 글로벌 소매점 기준 매출액 1위를 기록했었다. 한때는 미국 내 시장점유율 82%, 영국에서는 60%의 시장점유율을 보였다. 식품업계에서 하인즈는 넘지 못하는 벽이었다.


하지만 최근 하인즈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비용절감, 마진확대 등의 '자린고비 경영'이 독이 돼 돌아왔다. 소비자들을 위한 신제품 개발이나 새로운 전략조차 없었고, 오로지 '효율성'만을 강조했다. 결국 소비자들은 하인즈에 돌아섰고, 하인즈는 지난해 18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에만 126억달러(약 15조원)가 넘는 손실을 기록, 하인즈의 최대주주인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끄는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조차 하인즈에 대해 "브랜드 가치를 지나치게 낙관했다. 과한 투자였다"며 후회했다.

하인즈가 몰락의 길을 걷는 동안 한 스타트업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하인즈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다. 대학을 막 졸업한 학생 둘이 2010년 창립한 '서 켄싱턴(Sir Kensington’s, 이하 켄싱턴)'이 그 주인공이다. 창립한 해에만 유기농 마켓 딘앤델루카, 윌리엄스 소노마 등에서 1만 병 이상의 케첩을 판매했다. 최근에는 미국 홀푸드마켓에서 하인즈를 꺾고 케첩 판매 1위를 차지했다.


2017년에는 바세린, 립톤 등으로 유명한 다국적기업 유닐레버(Unilever)가 켄싱턴을 1억4000만 달러(약 1660억원)에 인수하면서 막강한 자본력까지 갖추게 됐다. 고작 9년 된 켄싱턴이 어떻게 140년 전통의 하인즈를 꺾을 수 있었던 걸까.

"왜 케첩은 죄다 하인즈야?"
스콧 노튼과 마크 라마단 [출처=서 켄싱턴 공식 인스타그램]

스콧 노튼과 마크 라마단 [출처=서 켄싱턴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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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브라운대학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스콧 노튼과 마크 라마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케첩은 죄다 하인즈인 걸까". 다른 식품군은 브랜드가 다양했지만 케첩은 하인즈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둘은 기숙사에서 자신들만의 케첩을 개발했고, 졸업 이후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도 케첩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이 집중한 건 '하인즈와 다른' 케첩을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상당수 케첩 브랜드들은 패키징부터 질감과 맛까지 업계 1위 하인즈 케첩을 복사하려 했다. 하지만 두 창업자는 하인즈와 다른 제품을 만들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케첩의 콘셉트는 '메인 메뉴의 보조가 아닌,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케첩'이었다.

2년의 개발 끝에 지금의 켄싱턴 케첩이 완성됐다. 일반적으로 케첩에 들어가는 가공식품첨가물과 GMO(유전자조작농산물)를 제거했고, 음식과의 조화보다 케첩 자체의 맛에 집중해 하인즈 케첩보다 설탕은 50%, 나트륨은 33% 줄여 '건강한 케첩'을 만들어냈다. 짜서 쓰는 플라스틱 용기 대신 유리병에 케첩을 담았다. 하인즈가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하인즈 케첩 이미지와 반대되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호텔, 고급 레스토랑에 판매하면서 고급화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케첩 왕 '켄싱턴 경'
[출처= 서 켄싱턴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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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싱턴 케첩의 고급화 전략에 정점을 찍은 건 스토리텔링이다. 켄싱턴은 케첩에 새긴 캐릭터를 '켄싱턴 경(Sir Kensington)'이라고 이름을 짓고 영국 무역상 집안에서 태어난 옥스퍼드 출신 재원이라고 소개했다. 켄싱턴 경은 평소 향신료에 관심이 많았는데 영국 여왕의 명에 따라 동인도회사에서 향료 관렴 일을 하면서 미식가들과 교류하게 되는 이야기다.


어느 날 러시아 캐서린 대제가 케첩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켄싱턴이 성공적으로 맛있는 케첩을 만들어내면서 '케첩의 왕'으로 불린다는 내용이다. 실제 켄싱턴의 설립 배경일 것만 같은 이 내용은 사실 가상의 스토리다. 소비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브랜드에 역사적인 가치를 더한 전략적인 스토리텔링인 것.


창업자이자 현재 최고경영자(CEO)인 스콧 노튼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브랜드 정체성이 담긴 '기발한 상상'을 통해 소비자들이 경험 그 이상을 느낄 수 있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하인즈가 프리미엄 라인의 케첩을 내놓아도 켄싱턴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견한다. 하인즈가 전통의 강자로서 대중적인 케첩 시장을 점령한 것은 맞지만,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켄싱턴을 따라한 후발주자에 불과하다는 판단에서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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