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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나는 역사]감자탕, 정말 '감자뼈'를 고아 만든 음식?

최종수정 2019.04.07 08:00 기사입력 2019.04.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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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에 '감자뼈'에 대한 기록 전무...감자뼈 유래설 근거희박
일제강점기 민간에 보급된 감자...뼈해장국과 결합, 탄생으로 추정


(사진=아시아경제DB)

(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소주와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유명한 '감자탕'. 돼지 등뼈를 넣은 뼈해장국에 우거지와 감자를 넣고 끓인 얼큰한 이 음식은 어원 때문에 시비가 붙기도 하는 음식이다. 이름이 감자탕이니 감자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손님들과 여기서 감자는 포테이토가 아니라 돼지등뼈의 일부인 '감자뼈'를 뜻한다는 음식점들 간의 이견이 잦기 때문이다.


실제 감자탕의 어원을 두고도 여러 설이 갈려있다. 일단 돼지 등뼈의 일부를 감자뼈라고 하며, 이 뼈를 고은 음식이므로 감자탕이라 한다는 설은 근거가 전혀 없다. 조선시대는 물론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이후에도 돼지에 '감자뼈'라 불리는 뼈가 있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역으로 감자탕에 넣었기 때문에 돼지등뼈를 감자뼈라 부르게 됐다는 설은 있다. 감자탕의 어원에서 감자가 먼저인지 감자뼈가 먼저인지 명확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감자탕이란 음식 자체가 언제부터 먹었는지도 사실 불분명하다. 구한말인 1882년, 임오군란을 제압하기 위해 들어온 청나라 병사들 중 일부가 양 등뼈를 고아먹는 '갈자탕'이란 음식을 해먹었는데, 이것이 발음이 와전되고 재료가 돼지 등뼈로 바뀌었다는 설부터 1899년 경인선 부설 당시 노동자들이 먹었던 음식이라는 설, 아예 해방 이후부터 먹었다는 설까지 다양하다.


구한말 이전으로 시대를 끌어올릴 수 없는 이유는 조선에 감자가 처음 유입된 것이 1824년, 순조 연간으로 알려져있고, 민간에 퍼져 먹기 시작한 것도 1930년대 이후이기 때문이다. 18세기 유입된 고구마와 달리 감자는 1824~1825년께 산삼을 캐내기 위해 압록강, 두만강 일대 숨어들어 살던 청나라 사람들에 의해 서서히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화전민이 많던 강원도를 중심으로 감자가 주식으로 재배되면서 민간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감자라는 말 자체도 원래는 고구마를 가리키던 '감저(甘藷)'가 변형된 것으로 처음에는 북쪽에서 온 감자라고 하여 '북감저'라 불렸다.


이상의 결과에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감자탕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음식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감자가 널리 보급되면서부터 시작됐으며, 돼지등뼈를 고아 먹던 뼈해장국과 결합해 만들어진 음식이란 점이다. 감자가 빠지면 '감자탕'이 아니라 '뼈해장국'인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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