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탁류청론] 태아도 국가가 보호해야할 국민이다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여기에는 연령ㆍ성별ㆍ사회적 지위 등의 구분이 없다. 국가는 국민 각자가 잉태되는 첫 순간부터 그 생명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갖는다.


필자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낙태죄 폐지' 논란을 여성의 도덕성 문제로 보는 데 반대한다. 여기서 문제는 낙태의 기로에 선 여성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아동복지법은 보호자가 아동을 가정에서 그의 성장 시기에 맞추어 건강하고 안전하게 양육해야 하며, 아동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런 법 규정은 부모나 보호자의 도덕성을 문제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동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무를 명시한 것이다. 낙태에 관한 형법 조항도 그러하다. 태아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는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책무 안에 있다.

태아가 인생의 첫 시기에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태아 시기에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출생도 그 이후의 삶도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낙태에 관한 형법의 조항은, 국가가 태아 시기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 형법 조항을 폐지한다는 것은 모든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무를 일부분 포기한다는 뜻이 된다. 가장 높은 수준의 보호와 양육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오히려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 측면에서는 어떠한가. 낙태가 여성의 몸과 마음에 대단히 해로우며,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성은 낙태를 겪지 않아야 하며 국가와 사회는 여성을 낙태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임신한 모든 여성은 보호와 지지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한 정책과 문화가 마련돼야 한다. 잉태된 태아가 보호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임신한 여성이 낙태하지 않고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들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므로 이 논란은 태아와 여성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살리고 다른 쪽을 버리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임신한 여성과 잉태된 태아가 모두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국가는 커다란 책임을 갖고 있다.

여기서 특별히 주목할 것은 임신ㆍ출산에 대한 '남성의 책임'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아기 아버지의 책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문화와 제도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 '부성 책임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보여준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책임은 여성과 남성 공동책임에 속한다. 따라서 남성이 임신한 여성과 태아를 보호하고 지지해야 할 책임을 갖는 건 분명하다. 태아를 보호하는 문화와 제도는 임신한 여성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문화ㆍ제도와 함께, 아기 아버지의 책임을 문화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이 사안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임신과 출산, 삶과 죽음은 결코 개인의 일에 불과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공동체의 일이며 우리 사회의 일이다. 그렇다면 임신과 출산에 관한 우리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 그런데 만일 출산과 낙태를 여성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켜 버린다면 그래서 이에 대한 사회적 접근을 배제해 버린다면, 그것은 임신ㆍ출산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부정하는 일이 아닌가. 그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공동선에 어긋난다. 잉태된 아기를 보호하고 임신한 여성을 지지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함께 책임을 분담해야 할 일이다. 우리 사회는 태아와 여성을 모두 보호하는 곳이 돼야 한다.


정재우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장










.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내이슈

  •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해외이슈

  •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PICK

  •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 용어]韓 출산율 쇼크 부른 ‘차일드 페널티’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