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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근로'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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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조례에서 '근로'가 사라진다. '노동'이란 단어가 새롭게 이 자리를 차지할 예정이다.


지난 22일 서울시 조례·규칙 심의회에선 이 같은 내용의 '서울특별시 조례 일괄정비를 위한 조례안'이 의결됐다. 심의회에선 조례 53개에 담긴 근로라는 단어를 노동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 조례안은 28일 서울시보를 통해 공포된다.

이런 결정은 이달 초 서울시 의회가 같은 내용의 조례안을 먼저 통과시키면서 예고됐다. 정의당 소속의 권수정 서울시 의원이 발의한 이 조례는 의도적으로 근로라는 표현을 배제했다.


예정대로 조례가 시행되면 '근로계약서'는 '노동계약서'로, '공공근로요원'은 '공공노동요원'으로 명칭이 바뀐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이후 공공기관 경영에 노동계 의견을 반영한다며 '노동이사제'도 운영 중이다.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근로와 노동이란 단어가 혼재돼 사용된다. 단적으로 이 조례의 상위법령은 여전히 '근로' '근로자'로 표기하고 있다. 상위 법령과 충돌하는 셈이다. 또 '고용노동부'와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등 제각각의 표현도 있다. 서울시 실무자들 중에선 이 같은 명칭 변경에 반대했던 사람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논란이 마냥 새롭기만 한 건 아니다. 지난해 3월 청와대가 제시한 대통령 발의 헌법개정안에선 근로라는 단어를 노동으로 수정한다는 내용이 담겼었다. 논의는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배경에는 근로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려있다. 일각에선 일제시대 근로정신대, 근로보국대 등을 예를 든다. 식민지배 논리를 위한 표현으로 '근로'가 빈번하게 쓰였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조례를 주도한 권 의원은 "(이번 명칭 변경이) 역사를 바로잡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반면 보수 진영은 지금도 '노동'에 여전히 불온한 덫을 씌우고 있다. 그래서 근로자의 날은 여지껏 노동절로 불리지 못한다.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1963년 정부는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이름을 바꿨다.


통상 노동은 행위의 주체인 노동자를 강조한 반면 근로는 사용자 측면에서 근면을 더 강조한다는 관념이 자리한다. 과거 보수 정권이 근로라는 용어를 더 선호했던 이유다.


현재 국회에선 근로라는 표현을 노동으로 바꾸는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런 논의가 어디까지 진전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굴곡진 현대사를 지닌 우리나라의 특성상 이를 둘러싼 찬반 의견은 언제나 화두(話頭)가 될 수밖에 없다. 경제적 관점으로 따진다면 두 단어는 대체재도 보완재도 될 수 없는 입장이다. 극단적 선택을 부추기는 사회 풍조와 닮았다.


돌이켜보면 '근로'라는 용어의 '노동' 교체가 소모적인지, 발전적인지도 아직 단정하기 힘들다. 판단은 오롯이 시민과 국민의 몫이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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