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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나는 역사]연포탕엔 원래 낙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최종수정 2019.02.17 08:00 기사입력 2019.02.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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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를 뜻하던 연포, 낙지와 아무상관 없어
선비들은 연포탕 먹는 모임 만들어... 파벌의 회합장으로 변질
1754년 영조 때 금지해야한다고 조정에서 의논하기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오늘날 연포탕은 낙지와 각종 해물, 채소 등을 넣고 끓인 맑은 탕으로 겨울철 인기음식 중에 하나다. 그나마 낙지를 앞에 붙여 낙지연포탕이라 지칭하기도 하지만, 대개 연포탕이라 하면 낙지탕을 이르는 말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연포탕이란 음식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낙지와는 아무 상관없었던 음식임을 알게 된다. 연포는 한자로 '軟泡'라 쓰며, 그 뜻은 부드러운 두부라는 것으로 한마디로 순두부를 뜻한다. 18세기 중엽 조선후기 실학자 서명응이 지은 농업 및 생활기술서인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에 의하면, 연포탕이란 연한 두부를 얇게 썰어 꼬챙이에 꿰어서 지져낸 뒤, 여기에 닭국물을 넣고 끓인 음식이라 소개돼있다.

이 연포탕은 선비들이 몹시 좋아하는 음식이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16세기 말부터 유행한 연포탕은 주로 선비들이 산세가 좋은 유람지의 사찰 등을 방문해 먹는 음식으로, 연포탕을 먹는 모임인 '연포회(軟泡會)'까지 만들어 즐겼다고 한다. 연포회는 담백한 연포탕을 즐기며 학문과 시를 논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18세기 중엽까지 연포회는 크게 성행했고, 젊은 관료들과 선비들의 경우에는 일종의 워크샵처럼 퍼져나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훗날 폐단이 생겼다. 한국국학진흥원의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에 의하면, 17세기 후반부터 연포회는 사적 결사모임으로 변질되고, 각 파벌들의 회담장처럼 바뀌기 시작했다. 또한 사찰에 들어가 쇠고기와 닭고기를 넣은 연포탕을 내오라고 승려들을 겁박하는 등 전국 사찰들의 피해가 잇따르기도 했다. 이에 1754년 영조가 신하들과 연포회 문제를 거론하며 폐단을 없애야한다는 지시까지 내려왔다는 기록까지 남았다.


이러던 연포탕은 구한말까지도 선비들의 식도락으로 남아있었지만, 점차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소고기나 닭고기 대신 낙지 등의 해산물을 넣은 연포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오늘날에는 원래 주인공이던 두부가 빠지고 낙지가 연포탕의 주요 재료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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