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이라던 세종대왕조차 실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종이 즉위 후 26년간 뚝심으로 밀어붙였던 화폐 도입 정책은 대표적인 실패로 기록돼있다. 세종대왕은 당시 유교사회에서 이상향으로 여기던 당(唐)나라 때의 정책은 모두 모방하려 했고, 당나라 이후 중국에 정책됐던 화폐 역시 유교 이상국가인 조선에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뚝심의 정치인인 세종의 열정은 그칠 줄 몰랐다. 그는 저화로 막대한 인플레이션이 발생, 정책이 실패하자 저화를 4년만에 폐지하고 구리로 만든 주화를 다시 유통해 화폐정책을 이어갔다. 기존 화폐인 저화를 주화로 갑자기 바꾸면서 경제적 대혼란이 따랐지만, 아랑곳 않고 세금을 모두 주화로 낼 것을 강제했다. 주화로 세금을 마련치 못한 백성들은 사형에 처하기도 했지만, 시장에서 좀체 통용되지 않는 주화도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세종 28년 다시 저화를 재사용 하고자 했으나 이젠 시장에서 정부를 아예 믿지 못하게 됐고, 세종이 4년 뒤 사망하면서 화폐정책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다. 민간의 불신 속에 이후 논의조차 못하게 된 조선의 화폐도입은 민간의 필요에 의해 200년 뒤인 숙종 때 시작된다.
세종의 화폐경제정책 실패는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정책이라 해도 민간에서, 특히 시장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정착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심지어 왕명으로 생사여탈이 결정되던 절대왕정 시기에도 불가능했는데,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장이 반발하는 정책이 쉽사리 받아 들여질 리가 없다. 그럼에도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남미 여러 나라의 실패와 마찬가지로 정치가 경제를 재단해보려는 실수를 저지르는 정권은 현대에도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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