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에 재출간된 책 '적과의 대화'
미국-베트남 관계자들 모여 과거 전쟁 복기전쟁 중단 기회 놓친 이유 주제로 날선 논쟁3박4일간 토론의 교훈 '끝없는 대화 필요해'
최근 14년 만에 국내서 재출간된 '적과의 대화'는 일본 NHK 에디터 출신의 국제 관계 전문가 히가시 다이사쿠(현 日 조치대 교수)가 '기회를 놓쳤는가?'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다. 1998년 다이사쿠는 이때의 만남을 소재로 전쟁 특집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 - 베트남 전쟁ㆍ적과의 대화'를 제작했다. 저자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모은 대화 기록과 참여했던 인물들의 인터뷰, 막전막후의 숨은 이야기들을 정리해 책으로 엮었다.
대화의 시작은 그리 매끄럽지 않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는 여전했다. 미국 측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점차 확산하는 '도미노 이론'에 공포감을 느꼈기에 전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베트남 측은 공산주의가 서방 세력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의 연장선이었을 뿐 공산주의 자체의 확대를 위한 싸움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양국 간 비밀 평화 협상이 결렬된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바가 서로 너무나 달랐다. 베트남 측은 "북베트남에 폭탄을 쏟아부으면서 한편으론 (비밀 협상) 대화를 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미국 측은 "북폭의 계기는 북베트남의 선공격 때문이었고, 본국에 폭격을 중단할 것을 거듭 제안했다"며 "베트남이 협상에 비협조적이라 폭격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들의 대화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특히 북한 핵 문제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해 커다란 교훈과 시사점을 제시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당시 미국과 베트남의 대화에선 현재 북ㆍ미 간 비핵화 협상과 비슷한 점이 보인다. 북한과 베트남은 미국식 도미노 이론에 영향을 받은 나라들이다. 프랑스와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다가 독립을 전후해 이념 전쟁에 휘말린 약소국으로서, 줄곧 '적'이었던 미국과 대화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국의 경제적 발전이 과거의 갈등에 우선하는 때다. 이 책에서도 베트남이 미국과의 대화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자국의 경제적 발전을 위한 외무부의 의도가 있었음을 전제한다. 미국으로부터 최혜국 대우를 받아내는 것을 포함해 미국과 베트남의 경제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전략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서 얻어내려는 것도 다르지 않다. 공감대가 있는 만큼 참고할 점도 분명해 보인다. 책에 묘사된 맥나마라의 열린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기회를 놓쳤는가?' 모임 직전 그는 베트남전 당시 최고사령관이었던 보응우옌잡을 만났다. 형식적인 대화가 오가다 만남이 파할 때쯤 맥나마라는 수십 년간 풀리지 않던 의문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보응우옌잡에게 '통킹만 사건(베트남이 미 구축함 매독스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미군이 반격에 나선 사건으로 베트남전이 본격화한 계기)' 당시 베트남이 정말 미국을 공격했는지를 물었다. 보응우옌잡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답했다. 맥나마라는 후에 '회고록'의 개정판을 내며 통킹만 사건에 대한 보응우옌잡의 대답을 더했다. 베트남 측의 증언을 역사적 사실로 존중한다는 자세를 보여준 것이다.
맥나마라는 모임이 끝나고 진행된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전은 지도자들이 현명하게 행동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며 "적을 이해하며 최고 지도자끼리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게을리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맥나마라와 보응우옌잡이 오늘날의 북ㆍ미 간 대화를 본다면 같은 조언을 하지 않을까.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라, 그것만이 국민과 나라가 살 길이다."
(히가시 다이사쿠 지음, 서각수 옮김/원더박스/1만5000원)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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