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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sts] 책, 역사를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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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구의 ‘러시아의 만주 한반도 정책사, 17~19세기’ 등 近刊 세 권

◆러시아의 만주 한반도 정책사, 17~19세기(김용구 지음, 푸른역사)=17세기에서 20세기 초 정확하게는 러일전쟁 직전까지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를 둘러싼 러시아, 청, 조선 및 일본ㆍ구미가 얽혀 치열하게 다투고 외교전과 통상을 벌였던 자취를 국제정치학의 시각에서 조명하였다. 저자의 19세기 한국외교사 5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잊었고 어느새 낯설어진 연해주,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 북부 일대는 러시아가 17세기 이래 ‘모피의 길’을 열며 시베리아로 ‘동진’하고 이에 대해 중국(청), 조선이 치열하게 대응했던 또 다른 무대였다. 그 무대에서 교류와 교섭, 침략과 약탈, 전쟁과 회담 등이 활발히 진행되며 세계 외교의 또 다른 한 축을 구성했다. 이 책은 17세기에서 20세기 초 정확하게는 러일전쟁 직전까지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를 둘러싼 러시아, 청, 조선 및 일본ㆍ구미가 얽혀 치열하게 다투고 외교전과 통상을 벌였던 자취를 국제정치학의 시각에서 조명하였다.
저자는 러시아의 동진(東進) 과정과 청ㆍ조선과의 만남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독특한 국제정치적 행동 양태를 종종 ‘슬라브적’이라는 형용사로 표현했다. 그것은 러시아적인 특징적인 대외 인식으로서, 서유럽에 대한 열등의식, 아시아에 대한 우월의식, 세계를 구제한다는 구원의식의 3가지로 대별된다. 열등감과 우월감 그리고 스스로를 구원자로 여기는 독특한 심정에 기반한 러시아의 극동 정책은 태생부터 침략과 약탈을 동반하였고 결국 러일전쟁으로 파탄났다. 조선과의 만남에서도 이 같은 태도가 유례없이 드러났다.

저자는 이 지역의 장구한 외교사를 복원하는 작업이 서양 중심에 경도된 기존 세계외교사를 보완하고 풍부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서유럽의 동아시아 침략 이른바 영국이 주도한 아편 무역과 뒤이은 동아시아 침탈을 중심으로 한국의 근대 외교사는 집필되었다. 저자는 이 같은 전통적 서술이 무의식적으로 ‘유럽중심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본서에 흐르는 한반도-만주-시베리아ㆍ연해주에서 벌어진 치열한 외교, 투쟁, 교류는 세계 외교사의 한 장면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원로 국제정치학자의 학문 여정의 결정판이다. 김용구 교수는 일찍이 19세기 한국외교사를 5부작으로 집필하겠다고 구상하였다. ‘세계관 충돌과 한국외교사, 1866~1882’(2001),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사대질서의 변형과 한국 외교사’(2004), ‘거문도와 블라디보스토크. 19세기 한반도의 파행적 세계화 과정’(2009), ‘약탈제국주의와 한반도’(2013) 등이 전 4부작이다. ‘러시아의 만주 한반도 정책사, 17~19세기’는 그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다.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김기봉 지음, 문학과지성사)=종래의 인류 문명사가 지식과 정보를 기억하는 것에 토대를 두고 전개됐다면, 빅데이터의 출현은 최초로 ‘기억’보다 ‘망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역사학이 사라진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문자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성립한 학문이라면, 이런 인식의 전환은 앞으로 “역사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정체성과 기능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또한 과학기술이 창조한 ‘포스트휴먼’의 출현으로 현생 인류 종의 종말까지 언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역사학과 인문학 위기를 넘어 인류의 앞날은 어디를 향할 것인가?

김기봉은 역사학을 학문의 틀에 가두지 않고 그 경계를 넘어 사극, 역사소설 등 대중 역사문화 전반을 아우르며 활발히 역사비평 작업을 해왔다. 역사학은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해 묻는 ‘인문학 3문(三問)’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이 책은 이 질문의 답을 탐구하며 인간 삶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아 온 저자의 그간의 작업들과 연장선상에 있다. 이 책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역사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급변하는 오늘의 디지털 환경과 연관 지어 시사점을 던지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생각과 삶, 일을 비롯한 모든 측면에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역사학과 인문학은 이러한 변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은 과거의 사실을 탐구하는 “데이터 학문”인 역사학의 기반을 뒤흔들며 위기를 초래했다. 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오래전부터 주시해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로 대변되는 ‘어제의 역사학’의 그늘에서 벗어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걸맞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며, 역사와 역사학의 향방을 그려본다.

◆역사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강혜정 옮김, 원더박스)=‘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길은 여럿이다. 이 책이 안내할 세상은 세상살이의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지만 사람들이 좀처럼 활용하지 않는 영역, 바로 역사다. 고대 그리스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지난 3,000년의 인류 역사를 펼쳐 보인다. 이를 통해 인류가 일, 시간, 창조성, 공감 같은 일상적이고 중요한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실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만난 다양한 삶의 방식은 나의 삶 역시 지금의 모습으로 고정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고, 새로운 용기를 낼 수 있게 독려한다.

사랑과 가족에 이어 공감, 일, 시간, 돈, 감각, 여행, 자연, 신념, 창조성, 죽음 방식이라는 열두 가지의 주제가 이어진다.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는 사례를 역사 속에서 만나고 나면, 해당 주제에 대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일, 시간, 돈 등 현대인의 삶을 각박하게 만드는 주제들에 대해서는 이런 풍조가 사실 인류 역사에서 굉장히 최근에 만들어진 것임을 확인하고 나면, 그런 흐름에 주눅 들기보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헤쳐 나가는 것이 더 나은 삶에 다가가는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시각 중심의 현재의 우리 삶에 후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이 가져오는 풍요로움을 일깨워주고, 창조성의 문제에서는 천재들의 성과가 아닌 일상에서 무언가를 직접 만들면서 느끼는 기쁨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 것 역시 이 책의 미덕이다.

대단원의 막이 ‘죽음 방식’으로 내려지는 것도 흥미롭다. 죽음 그 자체보다도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장에서는, 인류 역사에서 죽음이 지금처럼 삶과 떨어져 있던 때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불과 몇 백 년 전까지만 해도 공동묘지가 도시의 중심이었고, 아이들이 해골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을 아는가? 역사 속의 일화를 통해 죽음에 대한 망각이 어떻게 삶 역시 허무하게 만들었는지를 살펴보고, 길어진 수명으로 생긴 노인 문제에 대한 해법을 죽음 방식으로부터 찾는 것 등은 이 책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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