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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믿을맨

최종수정 2016.12.21 14:24 기사입력 2016.12.1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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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오래전 스포츠편집을 할 때, 축구경기의 미드필더를 '믿을맨'이라고 표현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미드필더는 이름 그대로, 축구장의 가운데를 중심을 한 영역들을 뛰며 볼을 빼앗아 중요한 포지션으로 넘겨주는 역습을 담당하고 번개같은 공격으로 문전까지 쇄도하는 스트라이커 역할도 맡는다. 게다가 상대편 미드필더와 머리게임도 펼쳐야 하며, 같은 방식으로 상대편의 습격에 대비한 발빠른 방어전략도 펼쳐야 한다.

최고의 눈길을 받는 자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경기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플레이를 해내야 하는 중요한 미션을 지닌 선수다. 많이 뛰어야 하고 해야할 역할도 상대적으로 많다. 감독에게 미드필더는 그야 말로 '믿을맨'일 수밖에 없다. 그가 미더워야 경기가 미덥고 안심이 된다.

조직이 커지고 경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니, '믿을맨'을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믿을맨은 단순히 말을 잘 듣는 사람도 아니고, 곧이곧대로만 하는 직원도 아니다. 고집이 강하고 자존감이 너무 강한 이를 앉혀도 팀웍을 해치기 쉽다. 하지만 감독의 복심을 잘 이해하는 미드필더처럼 적극적이면서도 유연한 감각이 필요하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꼼꼼히 상황을 분석하고 챙기는 성실함도 필요하다.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또 신속히 처리해야 하는 것이 많지만, 투명하고 반듯하게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때론 감독을 뛰어넘는 촉수로 출구를 찾아내고 묘책을 발굴해야 하기도 한다. 감독이 그를 믿는 건, 그가 지닌 목표가 감독이 지닌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거기에 사심을 끼워넣지 않기 때문이다. 팬들이나 팀원들의 인기만 의식하며 개인플레이를 자주 하는 스타플레이어는 믿을맨이 되기는 어렵다.

[초동여담]믿을맨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도 어렵거니와 어떤 사람을 깊이 믿을 수 있다는 것도 쉽지 않다. 그저 교제를 위한 말들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마음이 깊이 통하여 나누는 말들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조직은 인간이 99%이며, 그중에서도 인간 사이의 신뢰와 존경이 99%이며 나머지 1%는 조직원의 역량과 센스와 자아감과 행운이다. 창의성도 열정도 참된 즐거움도 신뢰와 존경에서만 나온다. 감독에게는 미드필더가 '믿을맨'이지만, 미드필더에게는 감독이 '믿을맨'이다. 일종의 '미러(mirror)효과'같은 것이다. 감독의 꿈을 필드에서 꾸는 일과도 같다. 공평함과 자유로움과 강력함과 부드러움을 지닌 믿을맨이 없다면 감독도 외롭고 선수도 답답하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문제의 핵심이 뭐냐고 물으면 "믿을맨"에 대한 잘못된 설정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정상적인 조직시스템 안에서 운영되는 '플레이어'에 대한 신뢰를 하지 못해온 한 리더의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국정의 촘촘한 조직을 물먹이고 뒷줄로 '믿을맨'을 줄세운 결과가 이토록 참담한 비극을 낳았다. 선수를 선수로 만들지 못하는 감독이었던 셈이다.

그가 믿을맨이라고 여겼던 비선은 자신들의 탐욕과 권세를 부리는 방식으로 리더의 총애와 신뢰를 악용했고, 리더는 그 실태와 양상과 파장을 파악하는 일에 너무나 무능력했고 무기력했다. 국민들이 날마다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에 혀를 내두르는 까닭은, 그 엉터리 믿을맨으로 국가의 경영을 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맹목적 자신감을 목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입만 열면 외치고 강조했던 국민이 '가장 중요한 믿을맨'어야 했음을,저 촛불들의 분노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까지 패키지로 지니고 있는 게 아닌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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