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지폐, 베끼는 자와 벗기는 자의 전쟁…100달러 위조 '슈퍼노트' 기술 최강은 북한
영화 '영웅본색'의 주윤발(소마)이 담배에 불붙일 때 사용했던 100달러 역시 암흑가에서 유통시키려던 위조지폐였다. 돈을 벌 수 없다면 만들겠다는 논리는 급기야 화폐를 조직적으로 위조하는 범죄의 단계로까지 진화해나가고 있다. 사진 = 영화 '영웅본색' 스틸 컷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단편영화 촬영에 쓸 지폐를 찍어내던 후배는 연신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게 다 돈이었으면 좋겠어요” 프린터는 쉴 새 없이 돈이 찍힌 종이를 뱉어내고 있었고, 스태프들은 종이의 귀퉁이를 잘 맞춰 반듯하게 칼로 자르고 있는 중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꿈에서 깨보니 돈더미가 눈앞에 쌓여있는 장면을 위해 그들은 밤새 가짜 돈을 만들고 있었고, 촬영이 끝난 후엔 가짜 돈을 모두 회수해 소각시키느라 또 밤을 지새웠다.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하는 것만큼이나 위조지폐 제작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하기 때문에, 자연히 고액권 위조사건이 빈번히 일어난다. 처벌에는 차이가 있지만 인류 역사상 화폐가 생긴 이래 화폐위조범의 처벌은 참형이었다. 중국 원나라에서는 화폐에 아예 ‘위조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문구를 새겨 넣었고, 유럽에서는 기름에 넣어 죽이는 화형을, 조선 시대에도 효수형에 처할 만큼 중범죄로 취급했다.
복사와 인쇄
조악한 수준의 위조지폐는 복사에서부터 시작한다. 지난 4월 컬러복사기로 1000원권 지폐를 위조한 여성은 컬러복사기로 양면 복사하는 방식으로 1000원권 지폐 36장을 위조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처럼 복사를 통한 위조는 육안으로 판별 가능할 정도의 조악함으로 사용 즉시 손쉽게 탄로 난다.
막대한 위조지폐의 통용은 한 국가의 경제근간을 흔들만큼 강력한 위험요소이다. 때문에 대한민국은 고액권 발행 논의 당시 10만 원권의 발행이 좌절되고, 5만 원권 발행만 통과되기도 했다. 사진 = 영화 '돈의 맛' 스틸 컷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원본보기 아이콘위조지폐와 인플레이션
국내에서 통용되는 지폐 중 최고액인 5만원권은 위조범의 주 타겟이 되고 있다. 개인 차원의 위조는 그 기술의 정교함에 반해 제작여건이 열악하므로 그 액수나 규모가 제한적이지만, 조직적으로 위조시설을 갖춘 집단에서 위조지폐가 대량 제작된다면,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들 만큼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 나치 독일이 영국 경제를 흔들기 위해 영국 파운드화를 위조했던 베른하르트 작전은 다행히 본토가 아닌 유럽에서 유포하는 과정에서 누출이 많아 실제 영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이 작전으로 인해 영국은 화폐를 신권으로 교체할 때까지 구권의 발행을 일괄 중단함으로 통화량을 조절했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도 동일한 작전으로 중국 위안화를 위조했는데 이를 사전에 알아챈 중국 측에서 종전 발행량의 100배가 넘는 1,890억 위안을 발행, 유통시켜 계획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자초해 일본의 작전을 막아낸 사건도 있었다.
국내에서 고액지폐 발행을 논의할 당시 5만원권과 함께 10만원권 고액지폐 발행이 거론됐으나, 화폐발행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위조에 따른 피해가 종전보다 커지기 때문에 5만원권 발행만 통과됐다.
기술과 비용이 비싼 고액권 위조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는 화폐위조 방지의 제1원칙은 누구도 위조할 수 없는 지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화폐 위조로 얻는 이익보다 위조하는 데 드는 비용이 더 많게 하는 것이다. 그만큼 정교한 기술과 비용을 투입해 복잡하고 다양한 방지장치를 투입함에도 위조지폐는 어디선가 반드시 나오기 마련.
미국은 100달러와 같은 고액권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위조지폐가 많아 대형 마트나 상점은 대개 감별기를 갖추고 있다. 액수가 크기 때문에 위조범들의 주 타깃이 되고 있는 100달러는 기계와 사람도 구별이 어려울 만큼 초정밀 위조지폐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른바 ‘슈퍼 노트’라 불리는 100달러 위폐(일련번호 C-14342군) 제조의 주 제조처로는 현재 북한이 지목받고 있는 상황. 북한 노동당 직속 평양 101호 연락소와 평양상표인쇄소에서 1달러 지폐를 표백한 뒤 스위스에서 공수한 조판기로 찍어낸 100달러 위폐, 슈퍼노트는 화폐전문가들 사이에서 “전 세계 위폐 가운데 진짜 지폐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폐 감별법
대한민국 지폐의 위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빛에 비춰 숨은 그림을 찾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여기에 액면 숫자가 인쇄된 곳을 옆으로 기울여 보면 나타나는 ‘WON' 글자가 보이고, 화폐에 인쇄된 글씨 ’한국은행권‘, ’한국은행 총재‘와 같은 글씨와 점자를 만져보면 요철이 미세하게 느껴진다. 한국은행에선 위폐와 진폐를 구별하기 위한 장치를 이미지를 통해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단, 이 같은 정보의 악용에 대비해 보다 전문적인 기술이 적용되어 있으나 이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위조지폐 범죄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상황에 벼랑 끝으로 몰린 무직자 또는 호기심에 한 번 시도해보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나 지폐의 위조는 중범죄며 이를 유통시킬 경우엔 그 죄의 형량이 더욱 무거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2014년 위헌결정 전까지 화폐위조 처벌은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0조에 의하여 살인죄와 똑같은 법정형으로 이뤄진 바 있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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