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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문화프리즘]시인 방기홍과 화가 '뚤르즈 로트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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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기일에 천재 시인을 기억하며

시인 방기홍이 쓰고 그린 시화 '화가 뚤르즈 로트렉'.

시인 방기홍이 쓰고 그린 시화 '화가 뚤르즈 로트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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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어깨동무를 하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스크럼을 짠 채 교정을 수없이 돌았다. 퇴계로나 장충동으로 나가는 길목에서 한바탕 짱돌과 최루탄을 교환한 다음 먼지와 최루탄 가루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수돗가에서 씻고 옷을 툭툭 털고, 마지막으로 코를 한번 팽 풀었다. 오월의 도서관에 발을 들이면 왜 그토록 정처 없는 서글픔이 사무쳤던가. 김수영과 조태일과 신경림과 김지하와 브레히트의 시를 찾아 읽을 때 개가식 열람실에서는 아직도 목탄 난로가 온기를 간직한 채 흘러가는 시간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은하수께 놓은 다리를
 누군가 별이 되어 떠나고
 때론 거친 몇 개의 신호를 남기기도 하고
 모두가 다 눈을 벗어나선
 무슨 말도 할 듯해
 시린 등 세우고 남은 밤엔
 귀가 헐도록 창(窓)을 열어 놓아도
 바람 두세 가닥 보이기만 하지
 아무려나
 길거나 짧거나 우린 동행(同行)하니까
 시작할 때도 수렁이었지
 살지 않는 꿈은 외계의 빛으로 피고
 그는 낮은 곳에서 그림 그리고
 그러다 보면 마지막 동행 일러주는 말이 보여
 종소리든가
 새소리든가… 함성이었어.
시인 방기홍이 대학생일 때 쓴 시다. 그가 속해 활동한 동인지 '소리내부(內部)'에 실렸다. '화가 뚤르즈 로트렉'. 나는 이 시를 '소리내부'에서 읽지 않았다. '발견'했다. 1983년 5월, '서클룸'에서 축제 행사인 시화전을 준비하다가. 문이 반쯤 열린 철제 캐비닛에 들어 있었다. 10호쯤 되는 캔버스였다. 유화를 그리고 시를 썼다. 원래 있던 그림과 시를 지워내고 그 위에 새로 시와 그림을 쓰고 그릴 참이었다. 말하자면 재활용품. 나는 오래 캔버스를 들여다보았다. 미색 바탕에 리드미컬하면서도 힘차게, 그러면서도 감미롭게 그려 넣은 그림과 글씨. 도저히 그걸 약품으로 밀어버리고 그 위에 새 그림과 글씨를 넣을 수 없었다. 그래서 따로 두었다. 지금도 가지고 있다. 내가 아는 한, 그 글씨도 그림도 방기홍의 작품이다. 그는 대학교 3학년일 때 문학전문지 '한국문학'의 신인상을 수상해 문단에 나왔다. 신문에 삽화를 그릴만큼 미술 실력도 뛰어났다.

  시인 방기홍의 대학 졸업사진. 앞에서 두 번째 줄 왼쪽이 방기홍. 그 옆이 '소리내부' 동인인 시인 정광호. 앞줄 왼쪽부터 윤재웅(문학평론가, 동국대 교수), 임종욱(소설가 겸 문학평론가), 유임하(문학평론가, 한국체대 교수).

시인 방기홍의 대학 졸업사진. 앞에서 두 번째 줄 왼쪽이 방기홍. 그 옆이 '소리내부' 동인인 시인 정광호. 앞줄 왼쪽부터 윤재웅(문학평론가, 동국대 교수), 임종욱(소설가 겸 문학평론가), 유임하(문학평론가, 한국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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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80년대였다. 1980년대 초였으며, '광주'의 시대였다. 광주는 젊은이들의 영혼과 의식을 온전히 지배했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겠다며 대학에, 국문학과에 몰려든 젊은이들도 예외일 수 없었다. 시나 소설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합평회에서는 험한 말이 예사로 오갔다. "그래요, 잘 썼어요. 그런데, 그래서, 이런 글이 무슨 의미가 있죠? 이런 작품이 무얼 바꿔 놓을 수 있습니까? 이따위 글이나 쓰고 있어도 괜찮나요?" 더러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중에 태반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일찍이 재주를 인정받은 천재와 수재들조차 수없이 포기하거나 좌절했다. 평범하지도 못한 시를 만들어 내다 기진해 쓰러져 버리기도 했다. 더러 야학 선생이 되고 더러 탄광이나 공장에 갔다. 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광주의 참상, 시대의 무게를 알면 알수록 시 쓰기가 불가능했다. 따라잡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쓰는 시는 바둑으로 치면 '더 두어 본다'는, 그 정도다. 진정 그 시대를 이겨낸 생존자가 있다면 그들의 내면을 살펴보고 싶다.

방기홍은 강한 사나이였다. 어떠한 현실도 외면하지 않았지만 '꿈'과 '외계'를 노래했다. 맑고 건강한 목소리로. 차원을 달리하는 탁월함에는 시대의 창검조차 상하게 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방기홍과 한 시대를 살았거나 그 일부를 나누어 산 사람들에게 그가 쓴 시 몇 소절이 스며들었다. 나에게는 '화가 뚤르즈 로트렉'(국립국어원의 표기원칙에 따르면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다)이 그 중에 하나다. 시세계의 범박한 추종자인 나와 같은 위인도 그의 행간 속에 몸을 감추고 호흡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어떤 시대, 어떤 공간에서 로트레크는 메타포인 동시에 은밀한 음모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섬광과도 같은 사치이거나 사기였으리라. 나는 방기홍과 그가 쓴 로트레크가 좋았다.
화가 툴르즈 로트레크.

화가 툴르즈 로트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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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크에 대한 매혹은 장애와 결핍이라는 그 시대의 본질을 모르는 사이에 체득한 데서 비롯했을까. 로트레크는 흔히 '난쟁이' 화가로 알려졌다. 사실 그의 작은 키는 어릴 때 몸을 다쳐 하반신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일종의 장애다. 열네 살 때인 1878년과 이듬해에 사고를 당해 대퇴골이 부러졌다. 호세 페러가 주연한 영화 '물랑루즈'(1952)에서 어린 로트레크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귀족 집안의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 요인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로트레크는 남프랑스 알비의 백작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림은 열 살 때부터 배웠다. 아마추어 화가인 삼촌과 아버지의 친구인 화가 르네 프랭스토가 첫 스승이었다. 1882년부터 파리에서 코르몽의 지도를 받아 화가의 길을 걸어갔다.

로트레크는 몽마르트르에 화실을 열고 파리의 홍등가를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거리의 여성들을 많이 그렸으나 그들을 결코 동정하지 않았다. 로트레크에게 인간은 작품의 대상이나 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었다. "로트렉은 냉혹하리만큼 꾸밈없는 인간 표현을 통해 비극을 넘어서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포용한다. 인간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었기에 그는 어떠한 비극이나 추악함마저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었다. 사랑함으로써 비극은 극복된다. 아니, 본질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비극은 이미 비극이 아닌 것이다. 로트렉은 결코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참모습을 찾아내어 표현함으로써 현실에 영원한 생명을 부여할 뿐이다."(장소현)

로트레크가 그린 판화 포스터 '물랑루즈 : 라 굴뤼'.

로트레크가 그린 판화 포스터 '물랑루즈 : 라 굴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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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크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독한 술을 즐겨 마셨다. 매독 같은 성병을 앓았다고도 한다. 거리의 여인들과 친구가 되고 때로는 사랑을 나누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1899년에는 정신착란을 일으켜 3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1901년 말로메에 있는 별장에서 요양을 하다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로트레크의 어머니 아델은 아들이 남긴 작품을 수습해 파리시 미술관에 기증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녀는 고향인 알비시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했고 그 결과 1922년 로트레크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알비는 고풍스럽고 세련미가 넘치는 도시다. 그의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선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로트레크가 알비에서 살다 귀족으로서 삶을 마감했어도 어울렸겠다 싶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숙명이 있느니, 누군들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랴.

오늘은 9월 9일, 로트레크가 죽은 날이다. 로트레크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반사적으로 방기홍과 그의 시를 떠올린다. 대학을 마친 그는 서울에 있는 개신교 계열의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일했다. 교직에 몰두한 나머지 시작(詩作)은 뜸했다. 그러다 잠시 그가 중병을 앓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방기홍의 신작시를 읽을 수 없었다. 그를 사랑한 선후배들이 크게 걱정했다. 누군가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도 했다. 그러나 최근 방기홍과 함께 공부한 대학 후배가 저녁 산책길에 그를 봤다고 한다. 운동모자를 눌러쓴 그는 별 말이 없었다. 그 후배가 본 방기홍이 환영이 아니라면, 곧 그의 새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와라, 방기홍.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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