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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책과 저자] 박정희, 독도를 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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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두 나라(한국과 일본)가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며, 동시에 그것에 반론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②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할 경우 두 나라가 독도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긋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③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늘리거나 새로운 시설을 증축하지 않는다.

'독도밀약'. 박정희가 일본과 체결한 독도에 관한 밀약이다. 한국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용인하는 것처럼 읽힌다. 그래서 '박정희가 독도를 일본에 넘겼다'는 비판이 있다. 두 사람이 독도밀약의 내용을 공개했다. 김종락과 시마모토 겐로. 김종락은 한국 측 대표로 협상장에 나간 김종필의 형이다. 시마모토는 당시 요미우리신문 특파원으로서 협상 참관인이었다. 두 사람은 언론 인터뷰와 기고문 등으로 독도밀약을 증언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증거를 내놓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흘렀다. 독도밀약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합의했다는 내용은 모두 현실이 되었다. 두 나라는 ①각자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반론했다. 1995년까지 영유권 주장을 담은 외교문서를 주고받았다. 일본 방위성이 작성해 나카타니 겐 방위상이 지난 2일 각의에 보고한 2016년 일본 방위백서에는 "우리나라 고유 영토인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영토문제가 여전히 미해결된 채로 존재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그들은 최근 12년 연속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②1998년의 어업협정을 통하여 독도 주변 바다에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수산자원을 관리하는 공동수역을 설치했다. ③독도에 시설이 증축되지 않았다. 한국 내에서 발생한 독도 개발계획은 지속적으로 회피 또는 억제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밀약과 달리 한일 어업협정의 내용은 선명하게 공개되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으나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영유권 문제는 '차후' 해결하기로 하고, 협정문에 독도를 지명으로 표기하지 않는 대신 좌표로만 표기했다. 그래서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남았다. 결론적으로 독도를 기선으로 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확보하지 못했다. 독도는 한국 전관수역에서 배제된 채 중간수역에 포함되었다. 독도 영유권의 배타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김대중이 독도를 팔아먹었다'는 욕을 먹는다. 그런데 밀약이 사실이고 그 내용이 독도 영유권의 훼손, 독도 팔아먹기였다면 이미 옛날에 박정희가 해치웠다는 뜻이다.

월간중앙 2007년 4월호의 보도에 따르면, 독도밀약은 1965년 1월 11일 서울특별시 성북동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 자택에서 정일권 국무총리와 우노 소스케 자유민주당 의원 사이에 이루어진다. 독도는 한일정상회담에서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 풀기 어려운 장애 중 하나였다. 독도밀약은 이튿날 박정희의 재가를 받았다. '미해결의 해결'이라는 대원칙 아래 이루어진 밀약은, 지난해 12월 28일의 '위안부 문제 타결'을 닮았다. 한일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명의의 사죄 표명과 일본 측의 위안부 지원 재단 설립 기금 출연, 양국 정부 간의 최종적ㆍ불가역적 해결 확인 등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아베의 사과'를 들어보지 못했다. '기금'과 '불가역적 해결'은 한국의 대일 역사청산 외교에서 결정적인 약점으로 작용하는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을 떠올리게 한다.
박정희, 독도를 덮다

박정희, 독도를 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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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독도를 덮다'를 쓴 이재석은 일본 외무성 문서를 통해 밀약의 진위를 가린다. 결론은 한일 양국의 밀사가 서울에서 비밀리에 만나 독도 문제 처리 방안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외무성 문서에 기록된 막후교섭의 참석자들과 그들이 만난 장소와 일시 모두 김종락과 시마모토가 밝힌 내용과 일치한다. 이재석은 그들이 만났던 장소 또한 실존함을 확인했다. 외무성 문서에는 독도밀약 조항이 언급되지 않는다. 중요한 대목은 먹칠이 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내용들이 일치하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밀약의 내용 역시 사실일 것으로 추론한다. 그리고 밀약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는데, 읽는 사람에 따라 수긍하거나 혐오감을 느낄만한 내용이다.

이재석이 보기에 독도밀약은 '일종의 신사협정 내지는 휴전협정'이다. 결판이 안 나는 문제니 더 이상 싸우지 말고 그대로 두자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독도밀약 전이나 후나 변함없이 독도가 자기들 땅이고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한국도 그 전이나 후나 독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건 변함이 없다. 양국 모두 뚜렷한 해결을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독도 문제를 덮었다. 그의 인식은 이렇다. "그때의 독도 처리는 한국의 실효 지배를 영구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중략) 우리가 그들에게 내준 것은 '주장할 수 있는 권리'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내준 것은 '실제로 지배할 수 있는 권리'였다."(175쪽)

판단은 당신의 몫이다. 나는 '박정희, 독도를 덮다'를 몹시 괴롭게 읽었다. 이 책을 덮은 다음 졸저 '스포츠공화국의 탄생'에 적은 한 대목을 다시 읽었다. "박정희가 1961년 11월 미국을 방문하기에 앞서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당시 일본 총리였던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를 만난 자리에서 했다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박정희는 '나는 메이지 유신을 지도한 일본 지사들의 기개를 본받아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하겠다'라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박정희가 집권기간 내내 견지한 통치이념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이념이 한국사회 전반에 실제적으로 미친 영향을 헤아릴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지향점마저 짐작하게 해준다."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를 쓴 전재호는 박정희 시대 근대화의 성격을 서구의 근대성이 지닌 진보성ㆍ혁명성ㆍ합리성ㆍ민주성이 거세된 불완전한 근대화라고 규정한다. '반동적 근대주의'는 근대성을 기술만으로 한정시킨 저발전국가에서 등장했다. 전재호가 보기에 박정희의 군사정권은 반통일 세력으로서 구조적으로 분단 고착화, 분단강화에 이바지했다. 그 행태는 민족주의와는 대립적인 '국가주의'의 행태로 드러났다. 독도밀약은 박정희의 정체성, 그 내면의 모순을 드러내는 노두(露頭)이며 상처투성이 우리 역사의 한 모서리다. huhball@

<박정희, 독도를 덮다/이재석 지음/개마고원/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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