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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단골집 '오진암', 자야의 '대원각', 北접객 '삼청각' 요정정치의 개화

최종수정 2016.08.09 07:33 기사입력 2016.07.08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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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경성-서울 집창촌 빅리포트③]이 땅의 <화류(花柳)여지도>…강남은 룸살롱, 용산역·청량리·미아리·천호동은 사창가로 근현대 홍등가 분화

성매매특별법 합헌 결정에 따라 양지로 나오는가 했던 사창가는 이내 법망을 피해 음성적으로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성매매특별법 합헌 결정에 따라 양지로 나오는가 했던 사창가는 이내 법망을 피해 음성적으로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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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엘리, 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나신(裸身)에 못박혀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보여주세요 엘리, 엘리 당신이 승천(昇天)하면 나는 죽음으로 월경(越境)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시집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
- 이성복의 시 ‘정든 유곽에서’ 중
시인이 호명하는 딸, 어머니, 그리고 인용한 문단 앞에 등장했던 누이는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상처를 껴안고 있다. 일제의 강압에 끌려간 일본군 강제위안부, 미군 부대 앞에 늘어섰던 기지촌, 지금은 사라진 그 언젠가의 종삼이나 청량리의 유곽까지, ‘혈관 마디마다 더욱 붉어지는 신음’은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불행한 역사의 반복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시대를 거듭할수록 사창가의 외관은 더욱 크고 휘황해졌으나 그 안의 삶은 병들고 깊은 상처가 패여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그 궤적을 쫓으려 한다.


혼란 속에 꽃핀 향락, 요정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광복을 맞은 경성은 자유와 방종으로 몸살을 앓았다.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 사설은 ‘해방 후 자유의 환성은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사상문화종교 등은 물론이고 오락과 향락에서 자유에 광희하는 것이 억압에 대한 반동적 가세로 지연하고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이내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폐허가 된 서울이 점차 안정을 찾아감에 따라 쇠락해 가는가 싶던 요정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어 성황을 이뤘다.
일제 강점기의 요정문화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편안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의 성격을 획득한 요정에 당대의 유력 정치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파벌과 정당에 따라, 또 자주 찾는 단골(?)손님의 위세에 따라 요정은 그 세력을 확장해 갔다. 이에 항간에는 ‘역사는 밤에 이뤄지고, 정치는 요정에서 이뤄진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을 정도.

익선동에서 철거 위기에 놓인 오진암의 목재와 기와 등을 옮겨와 새롭게 건축한 부암동 무계원 전경

익선동에서 철거 위기에 놓인 오진암의 목재와 기와 등을 옮겨와 새롭게 건축한 부암동 무계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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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첫 등록식당인 오진암은 집단 사창가가 형성된 종삼 인근, 익선동에 위치한 고급 요정으로 야인 김두한의 단골집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1972년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비밀리에 한국을 찾은 박성철 북한 부수상이 7.4 남북공동성명을 사전 논의한 장소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백석의 사랑, 자야 김영한 씨가 운영하던 대원각은 3공화국의 실세들이 애용한 장소로 맹위를 떨쳤다. 시인 고은의 시, 만인보 중 ‘요정 종업원 임도빈’에서는 ‘대연각’으로도 등장했다.

“70년대 성북동 대연각이라 우이동 삼청각이라 아니 코밑의 청진동 장원이라 거기 가면 온통 번드르르르 아리따운 연인의 치맛자락 방바닥을 쓸어가며 (...) 슬슬 졸음 오는 척하면 뒷방으로 모셔가 그 침침한 방 요 위에 눕혀져 졸음은커녕 난데없는 운우의 정이 쏟아지니”

김영한 씨는 1987년,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은 바 있어 그에게 대원각을 통째로 시주했다. 당시 1,000억 원 이상의 감정가를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요정정치의 산실 대원각은 현재 사찰 길상사가 되어 많은 불자와 시민들의 심신을 정화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사진 = 삼청각 전경

사진 = 삼청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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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설립된 다른 요정들과 달리 삼청각은 군사독재 정권 당시 남북적십자회담을 앞두고 북한 방문단의 접객을 위해 계획적으로 설립된 공간으로, 후발주자였음에도 그 규모와 위세가 다른 요정과 견주었을 때 독보적이었다. 현재는 고급한식당으로 운영 중인데, 얼마 전 위탁운영을 맡은 세종문화회관 임직원이 무전취식을 지속적으로 해온 사실이 적발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요정정치가 일반 대중의 입에까지 오르내리게 되자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모두 나서 정치인의 요정출입을 엄단 하겠다 으름장을 놓았으나, 당자의 말로까지 따라붙은 스캔들 역시 요정에서 나온 것은 아이러니였다. 이후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잦아들자 요정은 외국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려 ‘기생관광’의 중심지로 탈바꿈한다. 당시 정부는 물론 국회에서도 기생관광은 훌륭한 외화벌이 사업으로 인정받던 상황. 한 국회의원은 당시 상임위 회의 중 이런 말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요새 말하자면 관광 꺼리란 것이 있어요. 내가 돌아다니면서 보니깐 한국 여성이 세계에서 제일 미인이야. 그런데 가장 미인인 한국 여성의 값이 세계에서 제일 싸. 우선 그 여성지위 향상보다는 여성의 그 몸값을 올려주는 것이 결국 지위 향상이 아니겠어요?”

일본이 우리 땅에 흩뿌린 술, 음식, 그리고 성매매를 함께 제공하는 문화는 역으로 그들이 다시 우리나라를 찾게 하는 부끄러운 ‘기생관광’으로 9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룸살롱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던 경제개발의 그림자로, 강남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유흥문화를 형성해나갔다.

룸살롱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던 경제개발의 그림자로, 강남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유흥문화를 형성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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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룸살롱 공화국

요정의 쇠퇴와 함께 유흥문화의 주 무대는 룸살롱으로 옮겨갔고, 그 규모 역시 연회 중심에서 개별 룸 중심으로 축소됐다. 군사 정권기 산업개발 붐에 힘입어 1970년대 후반부터 강남을 중심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간 룸살롱은 서초동, 신사동, 역삼동에 밀집해 198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전에 없던 초고속 경제 성장기에 중동특수, 부동산 투기와 올림픽 유치가 더해져 강남으로 몰려든 정·재계의 실력자들의 접대와 향응이 이어지면서 편리성을 더하기 위해 술과 성매매가 한 건물에서 이뤄지는 ‘풀살롱’이 등장했다.

강준만 교수는 자신의 책 ‘룸살롱 공화국’에서 한국 남성이 룸살롱을 찾는 이유에 대해 명료하게 밝힌 바 있다.

“한국의 남자들은 룸살롱에 술 마시러 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술 마시려면 포장마차나 음식점에서 마실 일이지, 왜 꼭 룸살롱에서 여자를 옆에 앉혀놓고 마시려 하는가? 만지고 만져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룻밤에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을 내고 룸살롱에 가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만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접대가 아니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권력구조의 이면이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퇴폐적 향락의 공간으로 룸살롱은 아직도 강남 어딘가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일제강점기까지 집창촌은 강북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나, 해방 이후 군사정권에 이르면서 강남이 개발 됨에 따라 룸살롱이라는 새로운 유흥문화를 만들어 번성해나갔다. 일러스트 = 이경희 디자이너

일제강점기까지 집창촌은 강북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나, 해방 이후 군사정권에 이르면서 강남이 개발 됨에 따라 룸살롱이라는 새로운 유흥문화를 만들어 번성해나갔다. 일러스트 = 이경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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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밤의 꽃, 사창가

조선 후기의 갓우물골, 일제강점기의 신정·도산유곽을 거쳐 해방 후 서울 각 지역에 생겨난 사창가는 2006년 경찰청의 실태조사에 근거, 현재 총 9 지역의 밀집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도산유곽의 잔재가 이어진 용산역 일대, 청량리역과 경동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청량리 588, 서부영화 속 1층 술집, 2층 매춘 공간의 영업형태에서 이름을 따온 미아리 텍사스와 천호동 텍사스 등 유리방, 쪽방, 방석집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돼 온 집창촌은 2004년 시행된 성매매특별법 이후 예전의 활기를 잃은 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 서울 종암경찰서장 재직 당시 ‘미아리 포청천’으로 불리며 집창촌 단속을 진두지휘했던 김강자 교수는 지난해 ‘성매매 특별법 위헌 법률심판 공개변론’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현행 성매매 특별법은 위헌이며, 생계형 성매매를 위한 집창촌을 합법화 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실제 경찰의 집요한 단속 끝에 성매매가 근절된 듯 보였으나, 실상은 밀집지를 벗어나 음성적인 주택가, 오피스텔, 안마시술소 등으로 숨어들어 관리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성매매 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자히아 드하르(Zahia Dehar)는 알제리 출신 프랑스 모델로, 부모의 이혼으로 어려운 가정형편에 16세부터 매춘을 시작했다. 2008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과 매춘 스캔들로 유명세를 치렀는데, 관계당시 그녀가 17세 미성년자임이 밝혀져 논란에 휩싸였다. 프랑스는 매춘이 합법인 국가이나, 미성년 매춘과 같은 음성적 행태는 적발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지 경찰의 사건조사 입장이었다. 사진 = Pierre et Gilles 공식 페이스북

자히아 드하르(Zahia Dehar)는 알제리 출신 프랑스 모델로, 부모의 이혼으로 어려운 가정형편에 16세부터 매춘을 시작했다. 2008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과 매춘 스캔들로 유명세를 치렀는데, 관계당시 그녀가 17세 미성년자임이 밝혀져 논란에 휩싸였다. 프랑스는 매춘이 합법인 국가이나, 미성년 매춘과 같은 음성적 행태는 적발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지 경찰의 사건조사 입장이었다. 사진 = Pierre et Gilles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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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등장하는 창녀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 매춘은 인류 역사의 저 밑바닥부터 시작된 뿌리 깊은 문화이다. 근현대사의 격동을 오롯이 겪어 낸 서울에서도 지역과 형태가 바뀌었을 뿐 홍등가의 불은 꺼진 적이 없었다. 지난 3월 31일 헌법재판소는 자발적 성매매 여성의 처벌을 골자로 한 성매매 특별법 조항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법이 성을 규제하는 사이, 그 틈을 비집고 새어 나온 욕망은 더 은밀하고 음습한 곳에서 감시망을 피해 번져가고 있다. 소라넷과 같은 음성적 사이트의 범람과 온라인 매매춘에 대한 사회적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사이 ‘강남패치’와 같은 계정이 등장해 법망 바깥에서의 도덕적 잣대가 해당 업계 종사자 개인을 향하기도 한다.

과거 한 3선 국회의원은 경제정책포럼에서 “일본, 중국 인구가 15억이니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섹스프리, 카지노프리 한 지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여전히 성을 사고팔 수 있고, 이를 산업의 일부로 판단하는 권력자와 소비자가 존재하는 한 서울의 홍등가 불빛은 더 깊고 은밀한 곳에서 밝게 빛나지 않을까.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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