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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기원]당면은 잡채의 주연일까

최종수정 2016.02.11 16:12 기사입력 2016.02.1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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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잡채(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잡채는 생일이나 집들이, 명절 등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다. 갖가지 채소와 함께 당면을 섞은 잡채는 밥과 함께 먹는 반찬으로도 훌륭하지만 술 한 잔에 곁들이는 안주로도 제 몫을 한다. 특히 중화요리를 하는 식당에서 독한 고량주와 센 불에 볶은 잡채의 궁합은 그럴싸하다. 그러다 보니 잡채가 우리 음식인지, 중국 음식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언론인 홍승면 선생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한 잡지에 연재했던 음식 칼럼 '백미백상'에 "한국식 잡채와 중국식 잡채는 각각 어떤 유래를 지니고 있는 것이며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가 내 의문이다"고 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현재 잔칫상에 오르고 한정식을 하는 집에서도 곧잘 나오는 한국식 잡채와 중국집에서 잡채밥을 시키면 접시의 한쪽을 차지하는 중국식 잡채의 외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당면 때문이다. 당면(唐麵)은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의 면이다. 중국에서는 '펀탸오(粉條)'라고 한다. 일례로 중국 사천요리 중 '마의상수'는 잘게 다진 고기, 채소를 볶아 펀탸오와 섞어 먹는 것이다. 우리의 잡채와 그 모양이 비슷하다. 이렇게 보면 당면이 들어간 잡채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면이 중국 음식이지 잡채가 중국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조선시대 요리책인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잡채 조리법을 보면 채소와 버섯, 나물, 꿩고기 등을 가늘게 손질해 기름과 간장으로 볶은 뒤 즙을 뿌려 먹는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당면이 들어오기 전 잡채는 채소 등 갖은 재료를 볶고 섞어 먹는 음식이었던 셈이다.

당면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19세기 말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면 공장이 생겼고 성업 중인 중국 요리집에서는 당면을 넣은 잡채를 팔아 큰 인기를 얻었다. 당면은 저렴하면서도 요리의 양을 늘려줬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에도 잘 맞았으니 한국식 잡채에도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됐을 것이다. 1930년 한 일간지에 당면이 들어간 잡채 요리법이 나오지만, 1937년에 조선의 정월음식을 소개하는 기사의 잡채 조리법에는 당면이 빠져 있다. 이즈음에는 당면이 들어간 잡채와 들어가지 않은 잡채를 다 먹다가 이후 점차 당면이 주재료로 자리를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객으로 들어왔던 당면은 이제 숫제 잡채의 주연이었던 것처럼 그 비중이 커졌다. 광주 등 호남 지역의 분식집에서는 떡볶이 튀김뿐만 아니라 잡채를 주요 메뉴로 취급하는데 그 한 접시를 보면 당면이 대부분이고 당근이나 계란지단 어묵 등은 간혹 눈에 띌 정도다. 이렇다 보니 당면 잡채가 우리 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채 100년이 안됐지만 이제 본디 잡채에는 당면이 없었다고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 한다. 하지만 관련 내용을 잘 알고 보면 시금치와 당근은 골라내고 당면만 먹는 어린 조카에게 잡채는 채소 맛으로 먹는 것이라고 설득해봄직도 하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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