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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기원]풋고추ㆍ된장이 절묘한 한국형 돈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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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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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경양식집을 종종 등장시켜 추억을 자극했다. 가벼운 양식이지만 나름 스프와 샐러드에 이어 돈가스를 코스로 먹고, 빵이냐 밥이냐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경양식집은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30~40대에게는 설레는 외식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경양식집의 돈가스는 요즘 흔히 먹을 수 있는 고기가 두툼한 일본식의 돈가스와는 다르다. 돼지고기를 얇게 저며 튀겨낸 것은 서양음식의 일종인 포크커틀릿을 만드는 방법이다.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서도 포크 슈니첼이라고 부르며 즐겨 먹는다. 프랑스의 돈가스 에스칼로프 역시 고기를 얇게 썬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돈가스는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돈가스라는 이름도 일본서 지어졌다. 첫 등장은 1895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포크커틀릿을 그대로 옮긴 '포크가쓰레쓰'라고 불렀지만 포크를 한자 돈(豚)으로 바꾸고 가쓰레쓰를 부르기 쉽게 만들면서 1929년 돈가스라는 이름이 처음 나왔다. '돈까스'라고 해야 느낌도 살고 맛도 더 있을 것 같지만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돈가스라고 적는 게 맞다.

이 과정에서 얇은 고기를 소량의 기름에 조리하는 방식은 기존 일본 튀김 요리인 '덴뿌라' 등의 영향을 받아 두툼한 고기를 잠길 정도로 넉넉한 기름에 튀겨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1200여년 동안 육식을 금지했던 일본에 서양문화가 급속히 들어오는 과정에서 육식을 국민들에게 권장하면서 만든 요리법이었다.

돈가스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0~1940년대로 추정된다. 하지만 먹고 살기도 쉽지 않았던 시대에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겨 먹는 게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알려지지 시작한 것은 경양식집이 널리 생기기 시작한 1960년대로 보인다.
일본을 거쳐 들어왔지만 경양식집의 돈가스는 포크커틀릿의 조리법을 따라 얇게 튀겨졌다. 기름을 많이 써야 하고 조리 시간도 긴 일본식 돈가스보다 포크커틀릿이 더 만들기 용이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게다가 고기를 두드려 넓게 펴면 큰 접시를 가득 채워 푸짐해 보였다. 여기에 밥을 곁들이고 김치도 제공해 비로소 한국식 돈가스가 만들어졌다.

몇 곳을 제외하고 경양식집이 사라진 지금 한국식 돈가스의 명맥은 기사식당이 잇고 있다. 경양식집의 인기 메뉴 돈가스가 기사식당의 메뉴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980년대 무렵으로 추정된다. 기사식당으로 성북동 일대에 돈가스 식당 열풍을 일으킨 금왕돈가스는 1987년 개업했다.

그러면서 기사식당의 한국식 돈가스는 빨리 조리할 수 있도록 더욱 얇아졌고 밥과 국, 그리고 고추를 곁들이는 모양을 갖춰갔다. 그러면서 돈가스는 더 이상 서양이나 일본의 음식이 아닌 우리나라의 맛이 됐다. 갓 튀긴 돈가스에 소스를 끼얹어 내는 기사식당의 한 끼는 격식을 갖춘 식사는 아니지만 맛에 있어서는 서양에서 시작돼 한국식으로 마무리되는 호방함을 가지고 있다. 칼로 썬 돈가스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분명 서양의 맛이지만 여기에 된장국을 들이키고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으면 어느새 우리의 맛이 느껴진다.

서양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돈가스가 기사들의 인기 메뉴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은 하루 종일 일에 지친 이들에게 필요한 충분한 영양소를 공급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재료로 쓰이는 돼지고기 등심은 쇠고기 등에 비해 저렴한데다가 단백질, 비타민, 철분, 칼슘 등이 풍부했다. 곁들여 먹는 고추는 비타민과 칼륨 등이 많이 함유돼 있고, 고추의 캡사이신은 위액의 분비를 촉진하고 단백질의 소화를 도와 자칫 무겁게 느끼기 쉬운 돼지고기 튀김 요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짝꿍이었을 것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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