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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마리 원숭이와 함께한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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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 - '12몽키즈'(1995)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1995년작 영화 '12몽키즈'는 지금 봐도 놀라운 영화다. 참으로 우연히 어제와 오늘에 걸쳐 이 영화를 보게 된다. 원숭이해를 맞으면서 원숭이들과 시간여행을 하다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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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에는 원숭이들이 12개의 포인트를 가리키는 시계가 그려져있고 그중에 여섯 시에 앉은 한 마리가 몸집을 키워 시침(時針)을 움켜쥐고 있다. 줄을 타고 이동하는 원숭이가 시간을 움직이는 이미지는 그럴 듯 하다. 올해는 이런 시계를 만들어 팔았으면 대박이 났을 것이다. 우리의 띠나 시간 분할에 쓰고있는 12간지 상징동물 하나가 원숭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동서양의 상상력이 절묘하게 만난 셈이다. 영화 속에서 이 문양은 '12몽키즈'부대의 상징마크이다. 원숭이들이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마크를 쓴 까닭은, 관객에게 반전을 주기 위한 트릭 장치일 것이다.

2015년 여름과 가을 이 땅을 강타했던 메르스 바이러스는 팬데믹(PANDEMIC, 전염병 대창궐)의 공포를 맛보게 해줬다. 의료계는 물론, 정부와 국민 모두가 어마어마한 히스테리에 빠졌다. 죽음이 일상화된 듯한 치명적 감염이 우리 주위를 서성거리는 듯 했다. '12몽키즈'는 1996년 12월에 인류 50억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팬데믹이 일어난다는 '어마어마한 예언'을 담은 영화이다. 테드 길리암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것은 1995년이었고, 우리나라에 개봉된 것은 1996년 4월이었으니, 아직 영화 속의 대창궐은 '오지 않은 미래'였다. 당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지금 영화를 보는 것과는 또다른 기분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시제는 2035년이다. 팬데믹이 일어난지 39년이 흘렀고, 남은 소수의 인간들을 그간 지하생활을 하며 살아왔다. 그 와중에도 인류의 기술은 발달하여 타임머신을 개발했고 과거의 시간대로 투입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게 아직도 완전하지 못하여, 원하는 목적시간대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버리기도 한다. 제임스 콜(브루스 윌리스)은, 감염된 지구를 되돌리기 위해, 대창궐이 시작될 당시의 '바이러스 샘플'을 구하러 1995년의 시간 속으로 보내진다. 그러다가 잘못 이동되어 1990년 속으로 들어가 정신병동에 갇히기도 하고 1910년대의 전쟁터로 보내져 다리에 총상을 입기도 한다. 마침내 제대로 팬데믹 직전의 시간(1996년 가을) 속으로 보내졌고, 바이러스 유포자들로 지목된 '12몽키즈'라는 비밀집단을 찾아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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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몽키즈'는 몇 가지 '이야기의 층위'를 지닌다. 이 점이 영화를 복잡하게 보이게도 하고 애매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 그것이 매력점이기도 하다. 상징적인 고리로 얽힌 이야기 층위 중에서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동물 학대 - 바이러스 - 인류 재앙의 문제이다.

고인즈박사(크리스토퍼 플러머)와 그의 아들 제프리 고인즈(브래드 피트)는 아주 흥미로운 캐릭터이다. 아버지는 바이러스 연구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과학자이다. 아들은 정신이상의 징후를 보이지만, 아버지가 연구를 위해 동물을 학대해온 것에 대해 큰 반감을 지니고 있다. 바이러스를 연구한 것은 인류의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것이 목표였을 것이고, 아들이 고통받는 동물의 해방을 기획한 것은 자연계 전체의 공존이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의 가치와 비전의 갈등은, 사소한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인류 미래와 얽히면서 거대한 문제의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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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파견한 사람들은 아들 제프리 고인즈가 이끌고 있는 '12몽키즈'가 바이러스를 퍼뜨린 주체였다고 믿었다.(이렇게 오인하게 된 것은, 과거의 전화를 도청할 수 있는 미래의 기술력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 제임스 콜을 보내, 제프리가 가지고 있을 '바이러스 샘플'을 구해오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12몽키즈'는 그야 말로 동물보호운동을 하는 조직일 뿐이었다. 그들은 동물원의 동물들을 풀어 도시의 거리로 나오게 했을 뿐이다. 그리고 동물학대를 일삼은 아버지 고인즈박사를 붙잡아 그 우리에 넣어둠으로써 '응징'을 한 것이 그들의 음모 전부였다. 실제 50억명을 죽인 바이러스를 퍼뜨린 사람은 종말론자인 고인즈박사의 조수였다. 바꿔 말하면,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연구업적으로 추출해낸 바이러스를 '참모'가 오용함으로써 생긴 참사였다. 이것이 스토리가 빚어낸 절묘한 역설이다.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동물을 학대하는 각종 실험을 통해 얻어낸 바이러스가, 결국 오히려 인간을 절멸시키는 그 고리가 이야기를 강렬하게 굴리고 있는 셈이다.

두번째 층위는 정신이상과 정상의 문제이다. 제프리 고인즈는 미친 사람으로 보였으나 그가 한 행위는 '치명적이지 않은 낭만적인 결정'일 뿐이었다. 아버지 고인즈박사에 비하면 훨씬 덜 위험한 존재였다는 얘기다. 아버지는 비록 자신이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인류 재앙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 되었다. 부자 중에서 누가 더 정상적인가.

정신치료 전문의사인 캐슬린 레일리(매들린 스토우)는 1990년에 시간을 잘못 찾아온 제임스 콜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주치의 역할을 한다. 그녀에게 제임스 콜은 '미래에서 왔다'고 횡설수설하는 비정상적인 인간이었다. 그때 제프리 고인즈도 그 정신병원에 있었는데, 그 또한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미친 인간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차츰 여러 가지 물증이나 사실 확인을 통해 제임스 콜이 미래에서 온 사람인 것을 확신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카산드라 콤플렉스'를 지닌 사람으로 비웃음을 산다. 카산드라는 미래를 알고 있었고 예언을 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아 고통을 받았던, 신화 속의 인물이다. 정신 병리학에서 생각하는 비정상성 혹은 이상성은 무엇인가. 이것이 흔들리게 된다. 인간이 '미래'라는 시간에서 과거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추인하는 순간, 그녀는 그 자신이 그동안 '비정상적'이라고 단정해왔던 것들에 대해 확신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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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콜은 오히려 거꾸로 간다. 처음엔 '과거'의 사람들에게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지만, 나중엔 그 스스로 정신병자로 존재하고 싶어한다. 즉 그는 '미래'의 시간 속에서 너무나 멀쩡한 존재였으나 그 미래의 시간은 제대로 숨도 쉴 수 없는 지하의 감옥같은 삶일 뿐이었기에, 정신병자로 취급받는 가짜 현실인 '과거'가 진짜 현실이기를 바라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말 미래와 과거 사이에서 '현재'에 대한 깊은 혼란을 느낀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세번째 층위는 '시간'에 대한 문제이다. 영화 '매트릭스'가 나오기 4년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당시로선 참신하고 혁신적인 시간상상력을 보여줬다. 타임머신의 오작동을 스토리 속에 설계해넣은 것도 놀랍고, 그 오작동이 빚어내는 촘촘한 복선들도 뛰어나다. 제임스 콜은 세번의 시간여행을 했는데, 1990년에 한번 보내졌다가, 1910년에 다시 보내졌고, 다시 1996년으로 오게 된다. 1990년의 시간에서 벌인 사건들(정신병원에서 캐슬린과 제프리 고인즈를 알게 된다)은 1996년의 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로 작동한다. 1910년대의 전쟁터 체험은 '총상의 치료'를 통해 캐슬린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낳게 되고, 또 캐슬린이 제임스 콜이 '미래'에서 온 인물을 확신하게 하는 단초를 만든다.

'12몽키즈'가 가장 세심하게 설계했을 대목은, 과거 속으로 침투한 인간이 '미래'를 변형시키지 않도록 하는 점이었을 것이다. 시간여행을 하게된 인간이 미래를 바꾸는 쪽으로 나아가버렸다면 인류절멸의 상황을 모면하는 해피엔딩을 만들어냈겠지만 이야기는 싱거워져버릴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보다 10년전(1985년)에 만들어진 '백투더퓨처' 또한 이 문제를 스토리의 골격으로 삼고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순 있지만 과거가 미래를 바꾸기 시작할 때 생겨나는 '시간 재배열'의 엄청난 스트레스를 막으려 주인공들은 동분서주한다. '12몽키즈' 는 과거로 간 인간 제임스 콜이 어떤 분탕을 치더라도 그것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수준까지 나아가지 않도록 제어하고 있다.

영화 초반에 제임스 콜이 꿈인듯 기억하는 공항의 총격 장면은, 마지막에 현실로 재현된다. 바이러스통이 든 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타러가는 고인즈박사의 조수를 막기 위해 제임스 콜이 총을 겨눈 순간 등 뒤에서 경찰의 총알이 날아와 먼저 꽂힌다. 그가 쓰러졌을 때 현장의 한쪽에서 이 사건을 지켜보는 소년이 있다. 즉 이 장면에서 열살의 제임스 콜과 50세(2035년 기준)의 제임스 콜이 하나의 현장에 동시에 존재하게 함으로써, 스토리는 과거 형질변형의 문제를 해결했다. 제임스 콜은 하나의 시간에 동시에 둘이 같이 존재한 '인간'이 되었고, 영원히 그 시간 속에 반복적으로 살게 되는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가 과거와 미래를 오가면서 존재하는 '이상한 존재방식'을 나름으로 풀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바이러스' 문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미래는 과거에서 무엇인가를 얻어낼 수 있었을까. 2035년의 인간들이 원한 것은 과거를 수정해서 자신들을 '절멸'에서 구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일 것이다. 그보다는 인간적인 해법을 택했다. 즉 팬데믹 직전의 '바이러스 유포자'를 찾아내서 그 샘플을 얻어 그것을 연구함으로써 당시 지상에 만연되어 있는 바이러스의 '항체'를 찾아내려는것이 전부였다.

시간여행은 그들에게 사라진 과거의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 고인즈박사의 조수가 바이러스 가방을 들고 여객기 좌석에 앉았을 때 그 옆에 앉은 여인은 2035년에서 온 '박사'였다. 영화는 이 정도의 암시를 남긴 채 엔딩자막을 올린다. 미래의 인간들은 바이러스 샘플을 구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여기서 다시 원숭이 열 두 마리가 빚어내는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동물들을 학대하는 인간,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이 결국 대재앙을 빚어내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그 어김없는 윤회가 바로, 원숭이의 시간일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빚어낸 참혹한 시간의 저주, 그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자 애쓰는 풍경. 이것이 '12몽키즈'라는 시계가 가리키는 묵시록이 아닐까. 마침 원숭이해를 맞아 우연히 다시 접한 영화 하나. 미래를 미리 본 카산드라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심장한 예언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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