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Book]갑질은 학습된다…'갑질사회'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위는 고개 숙이고 아래는 발로 밟기 '자전거 반응'을 아십니까?

갑질사회

갑질사회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갑(甲)과 을(乙)'이란 말은 원래 계약서 상의 용어다. 갑은 계약의 주체가 되어 금액을 지불하는 사람을, 을은 주로 용역이나 상품,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를 지칭한다.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용어에 불과했던 '갑과 을'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상류층-하류층, 가진 자-못 가진 자를 구분하는 용어가 되어버렸다. '땅콩회항 사건', '백화점 모녀 사건', '아파트 경비원 사건' 등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아예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행정 문서에서 '갑을' 용어를 퇴출시키기까지 이르렀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갑'과 '을'의 관계가 존재하게 된 것일까. 신간 '갑질사회'의 저자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환석(47) 씨는 "대부분의 인류 역사에서 계급과 위계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은 언제나 극심했으며 소수 기득권의 갑질은 당연한 일로 치부됐다"며 "이러한 일은 역사를 따라 반복되면서 대부분의 백성들이 항상 피폐한 삶을 살게 한 동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즉, '갑질문제'가 현 사회만이 안고있는 고질적인 병폐가 아니라 신라·고려·조선 등 역사를 거슬러 되풀이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갑을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해석한 역사는 그동안 우리가 배워왔던 역사와 사뭇 다르다. 삼국시대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역사 시간에 백제, 고구려, 신라가 중앙 집권 체제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하면서 차례로 전성기를 맞게 됐다고 배웠다. 왕이 법률을 만들어 통치 기반을 확립하고, 기존 군장 세력은 국왕 아래의 신하로서의 성격을 띤 귀족으로 통합되면서, 점차 나라의 기틀이 갖춰지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책에서 칭송받는 의미로 소개했던 '중앙 집권 체제'야말로 동전의 양면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반박한다.

고구려는 태조왕 때 활발한 대외정복 활동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로써 지배 집단의 경제력은 강해졌지만, 계층분화가 심해져 농민들의 생활고는 더욱 극심해졌다. 백성들의 불만이 커질수록 왕은 왕권을 더욱 강화하고 경쟁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결국 4세기 후반 소수림왕은 국가통치 기본법인 율령을 반포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한다.

문제는 중앙집권 체제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지배층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사용한다는 데 있다. 배타적인 사회를 만들어 권력을 독점해 세습한다는 점에서 중앙집권 체제의 확립은 '독재'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폐쇄적인 권력구조는 정치권의 부패를 낳고, 착취적인 경제구조는 민심의 이반을 불러일으킨다. 중앙집권체제로 전성기를 맞이한 고구려는 곧 내리막길을 걷다 신라에 의해 정복당한다. 이러한 패턴은 백제와 신라, 고려와 조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해방을 거친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도 봉건적 사고의 잔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통령이나 고위직 공무원들을 과거의 왕이나 관리를 보듯 하는 시선이나, 자기보다 서열이 높아 보이는 사람에게 쉽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 등이 그 방증이다. 기득권층의 폐쇄성과 배타성 역시 갈수록 공고화되고 있다. 게다가 현대의 차별은 더 교묘하고 복잡해졌다.

일상생활에서 대학생들이 자주 쓰는 말이 "수능시험을 망쳐서..."이다. 하지만 이 말에도 "자신이 원래는 이 위계에 속할 사람이 아닌데 실수로 속하게 됐으니 나를 차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호소가 담겨있다. 자동차 딜러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소수 인종이나 종교를 가진 딜러들이 오히려 손님들을 차별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자신의 사회적 처지에 대한 불만으로 다른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은 '자전거 반응'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다. 경주용 자전거를 탈 때 상체를 숙이고 페달을 밟는 모습이 마치 권위에 고개 숙이고 낮은 계층을 학대하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저자는 "계층화가 심한 불평등 사회일수록 하위계층에 대한 편견이 증가하고 그들에게 우월감을 표시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전작 '나는 한국경제보다 교육이 더 불안하다(2013)'에서도 한국의 교육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왜곡된 교육 현실이 현재의 '갑을사회'와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 날카롭게 분석한다. "인간의 한 단면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해버리는 탈인간화의 과정"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분야가 교육이라는 지적이다.

결국은 우리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전 사회가 나서서 협렵해야만 갑질사회의 폐해를 바로잡을 수 있다. 사회문제를 내버려둔 채 단순히 갑질하는 사람을 비판하고 공론화시키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오히려 갑질이 더 교묘해지거나 눈에 띄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해갈 수 있다.

저자는 기득권층의 횡포와 폭력이 되물림되지 않도록 하는 가장 바람직한 해결방법으로 '선거'를 든다. 선거에서 대중은 대중의 이익을 증가시켜줄 사람들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얼핏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한국사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플라톤)

(갑질사회 / 최환석 / 참돌 / 1만48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