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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감사합니다"‥박노해 사진진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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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안데스의 농부들은 세계에서 가장 험한 지형에서 수천년간 이어온 토종 감자를 재배하며 산다. 이들이 일 하는 모습이 마치 거친 산을 오르는 듯 하다.

안데스의 농부들은 세계에서 가장 험한 지형에서 수천년간 이어온 토종 감자를 재배하며 산다. 이들이 일 하는 모습이 마치 거친 산을 오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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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의 사진 '안데스 고원의 감자 농사'를 보면 사람들이 거칠고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안데스 농부들이 험한 지형에서 감자를 기르는 풍경이다. 이에 박노해는 안데스 감자를 '인류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의 씨알'이라며 "저 춥고 험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늘도 고귀한 선물을 길러 세상에 내려 보내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박노해가 안데스 감자를 '희망의 씨알'이라고 칭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감자는 8000여년전부터 재배되기 시작한 토종으로 세계의 감자가 병들 때마다 인류에게 전해져 오늘날까지 수많은 목숨을 구해줬다.
해발 수천미터에 이르는 만년설산 아래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 집과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 혹독한 기후와 풍토에 구불구불 자란 나무는 안데스를 지키는 사람들과 겹쳐진다.

해발 수천미터에 이르는 만년설산 아래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 집과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 혹독한 기후와 풍토에 구불구불 자란 나무는 안데스를 지키는 사람들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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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푸스카'라는 사진속에서는 수줍음 가득한 처녀가 따사로운 햇살속에서 알파카 털을 깎아 실을 잣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선조들과 내면의 끈을 잇는 듯 고요히 침잠한 표정으로 말한다. "여섯 살 때 할머니로부터 작은 푸스카를 선물받았어요. 어깨 너머로 실 잣는 법을 배운 뒤 우린 늘 함께 했죠. 실을 자을 때면 모든 근심과 슬픔이 사라져요."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에서는 옥수수 막걸리 치차를 나눠 마시며 한숨 돌리는 안데스 고원의 농부들이 나온다. 그들은 만년설 바람에 땀방울을 씻으며 힘들 때 서로 인정을 나누며 함께 일하며 살아간다. 때로 수천년 이어온 노래와 시와 춤을 추며 오랜 지배와 수탈, 아픔을 토해낸다. 그리곤 말한다. "기쁨이 없고 노래가 없는 노동은 삶이 아니지요.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내 삶에 감사합니다."
올해 초 '노동의 새벽'(1984년) 출간된 지 30년, 사진전 '다른 길'로 돌아 왔던 박노해가 이번에는 또다른 사진전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를 연다. 사진전은 오는 21∼2015년 3월18일까지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라 카페 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작품은 총 27점이다. 이로써 실패한 혁명가는 티베트, 라오스, 파키스탄, 버마, 인도네시아, 인디아 등 인류문명의 오랜 성지를 돌아 드디어 안데스에 도달, 색다른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 여행지는 페루와 안데스산맥이 그 중심이다.

페루는 남미에서 유일하게 4000년 넘는 고대문명을 간직한 나라로 '태양의 후예'라는 잉카제국의 심장을 품고 있다. 페루인들은 험난한 지형에서 안데스의 토종감자를 지키며 살고 있으며 3000m가 넘는 산속, 살리나스 염전에서 전통방식으로 소금을 만든다. 또 고산지대에서 '알파카'를 기르고 카페트를 짠다. 이런 노동과 생산 방식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삶의 원형들이다. 박노해는 거친 환경속에서도 자연에 순응하며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노동의 본질을 표현하고 있다.

박노해의 사진속에는 스페인 정복군에 짓밟히고, 인종 차별과 가난에도 인간의 위엄을 지키며 사는 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그곳에서 만난 이들을 통해 삶의 감사함을 전한다. 사진에서는 안데스 산맥의 농부들, 실을 잣는 여인들, 옛 잉카제국 제사장의 후예 등 다양한 이들이 등장한다.
박노해는 이번 사진전을 "대지의 노동과 내 곁의 친구와 기쁨의 노래로 충만한 삶으로의 초대"라고 설명한다. 이어 "산다는 건 살아 춤추며 가는 것, 어둠속에서도 노래하고 춤추며 싸워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박노해는 현장노동자로 활동하던 중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 한국사회와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해 활동하던 중 1991년 체포, 구금돼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옥중에서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1998년 석방돼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 가난한 나라 등을 돌며 평화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자급자립하는 '나눔농부마을'을 세워가며 새로운 대안적 실천을 하고 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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