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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칼럼]퍼거슨의 손목시계, 최경환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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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없었다면, 2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축구감독의 자서전을 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종반이 가까워지면 손목시계를 손가락으로 두드려 대는 알렉스 퍼거슨. 그의 자서전을 구입한 것은 브라질 월드컵 열기에 편승한 충동구매였다.

웬만한 축구팬이라면 잉글랜드 프로축구클럽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군림하며 숱한 드라마를 연출한 퍼거슨을 기억할 것이다. 지난해 고별 경기 때에는 구장에 '불가능한 꿈을 이뤄 낸 퍼거슨경(卿) 26년'이라는 헌사가 걸렸다. 영국 왕실은 기사 작위를 수여했고, 구단은 그의 전신 동상을 세웠다.
'알렉스 퍼거슨, 나의 이야기'라는 제목에서부터 그의 자긍심 내지 오만한 풍모가 묻어나는 자서전은 당연히 맨유에서의 축구와 선수들의 이야기였지만, 단지 축구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예컨대 데이비드 베컴이 미국 코스모스팀으로 떠날 때의 표현이 그렇다. "무엇인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려면, 그것을 빼앗겨봐야 한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리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감독들을 목격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0대 5로 패하자 즉시 감독을 자른 나라도 있었다. 그런데 퍼거슨은 어떻게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영국 프로축구 리그에서 26년을 살아남아 전설이 됐을까.

예측 불허와 이변은 스포츠의 묘미다. 축구도 그렇다. 영원한 우승 후보가 어느 날 1대 7 대패의 수모를 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퍼거슨이라 해서 그런 패배를 맛보지 않았을 리 없다. 누구나 마주치는 패배다. 인생이 그렇다. 그가 달랐던 것은 패배와 맞서는 방식이었다.
그는 말한다. "패배는 나를 크게 흔든다. 잠시 되짚어보지만 예전 방식 그대로는 한 번도 내 선택권에 들어 있지 않았다. 곧장 개선과 회복의 문제로 달려갔다. 불행에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자질이다. 반격은 늘 우리 존재의 일부였다."

브라질 월드컵 알제리전에서 한국은 전반에 3점을 잃었다. 후반 5분, 손홍민이 1점을 만회했으나 승부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반전의 전략은 없었다.

퍼거슨에게도 그런 경기가 있었다. 2001년 9월 맨유는 토트넘과 맞붙어 전반 3실점했다. 퍼거슨은 풀죽은 선수들을 호통치는 대신 나직하게 말했다. "좋아, 우리는 후반을 시작하자마자 첫 골을 집어넣을 거야." 후반 1분, 맨유의 첫 골이 터졌다. 리더는 진정한 예언자였다. 선수들은 승리를 믿었고 혼신을 다했다. 맨유는 이후 4골을 쏟아부어 5대 3 대역전의 역사를 썼다.

퍼거슨이 손목시계를 두드릴 때는 대개 종료 15분 전. 맨유 선수를 격려하는 게 아니다. 적을 겁주기 위해서다. 지고 있어도 맨유는 마지막 15분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손목시계가 알리는 마법의 15분은 적에게 공포를, 맨유 선수에게는 승리의 믿음을 주는 골든타임이다.

조직을 묶어 목표에 헌신하게 만드는 것은 탁월한 리더의 카리스마다. 박근혜정부 들어 리더십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말 뿐인 책임총리, 유약한 경제부총리가 그랬다.

2기 내각이 짜였다. 그 중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특별하다. 유일 후보로 떠올라 그대로 내정됐고 청문회도 무사통과했다. 인사 논란을 비켜선 화려한 등장이다. 그뿐인가. TK(대구경북), 옛 경제기획원 출신에 요즘 잘 나간다는 위스콘신대 학맥이자 여당 원내대표를 지낸 친박 3선 의원이다. 명실상부 실세다. 등장 일성, 성장을 외치자 벌써 시장이 술렁인다.

그는 한국경제가 3개의 함정(저성장ㆍ축소균형ㆍ성과부재)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축구로 치면 3실점 상태. 시간은 없고 함정은 깊다. 시험대에 오른 최경환 리더십을 주목한다. 소리만 요란한 수레인가, 아니면 경제를 흔들어 깨울 마법의 시계가 될 것인가.





박명훈 주필 pm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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