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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다시보기]10-① 줄 서거나, 떠나거나…금배지들의 各自圖生

최종수정 2014.07.04 15:13 기사입력 2014.06.2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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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시리즈 Story #10. 국회의원 이후의 삶

[국회 다시보기]10-① 줄 서거나, 떠나거나…금배지들의 各自圖生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강기갑 전 의원은 19대 때 3선에 실패하고 고향인 경남 사천으로 돌아갔다. 십 년 만에 농부로 돌아간 그는 요즘 매실 농사 짓기에 한창이다.

◆'강달프' 유명했던 강기갑 의원, 사천서 농사=국회의원이었을 땐 비가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이었다. 홍수 등 자연재해가 터지면 현장에 가서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가시방석이었다. 이제는 비가 오면 소매 걷어붙이고 나가 매실 농장이 피해 입지 않도록 조치한다.

시간표를 마음대로 짤 수 있다는 점도 일반인으로 돌아간 뒤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예전엔 자기 시간이란 게 없었다. 모든 시간과 에너지는 의정활동에 집중됐다. 이제는 흙과 일상에 온전히 집중한다. 그는 "책임감 하나가 사람 마음을 이렇게나 편안하게 해주는 게 스스로도 놀랍다"면서 "농부의 삶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강 전 의원은 보통 새벽 4~5시에 일어난다. 해 뜨기 전에 일어나 1~2시간에 걸쳐 명상이나 요가, 기도 등을 한다. 오전 7시부터는 농부의 일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키우는 토종닭도 둘러보고 한우 축사에 들러 퇴비를 마련 하기도 한다. 이렇게 낮 12시까지 쉼 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덧 점심시간. 아침을 일부러 거르는 강 전 의원은 점심만큼은 든든히 챙겨 먹는다고 했다. 국회의원 시절 언감생심이었던 가족·지인과 함께 여유 있는 점심시간을 즐긴다.

오후 시간 역시 매실을 따거나 가공하는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덧 저녁시간. 때에 따라 밤 10시까지 가공작업을 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밤 10시 전에 취침하는 것이 예사라고. 강 전 의원은 "국회의원 시절이었으면 이 시간까지 보고서를 들여다보거나 사람을 만나느라 한창 바빴을 시간"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두루마기 하면 강 전 의원이 떠오를 만큼 두루마기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지금은 두루마기는 웬만해선 입지 않는다. 일요일 성당에 가거나 행사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걸친다고. 대신 농부의 복장을 한다. 농장에서 물일이나 궂은 일을 해야 할 때는 장화를 신지만 대개 맨발을 선호한다. 쨍하는 햇볕을 피하기 위해 모자 착용도 필수다. 국회의원이었다면 체통을 지키라며 지적받았을 행색이다. 영락없는 농사꾼의 모습에 동네주민들은 처음 그를 보고도 'TV에 자주 모습을 비치던 전 국회의원'인 줄 몰랐다고 한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국회에 있었는데 정치에 대한 향수는 없을까. 그는 단호하게 "다시 당선됐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당시 가정형편이 파산직전이었다. "초등학생 아들도 있는데 국회의원을 계속했으면 가정이 박살 났을지도 몰라요."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의정활동을 펼치며 '공중부양' ' 강달프' 등의 별명을 가진 강 전 의원은 국회의원 시절의 일이 "꿈속에서 일어난 일 같다"고 말했다.

강 전 의원처럼 19대 총선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18대 의원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찾는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정계에 발을 담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다. 국회의사당으로 출퇴근하며 나랏일을 돌보다가 4년 만에 범인(凡人)으로 돌아간 전직 의원들은 배지를 반납하고 나서 어떻게 지낼까.

◆18대 前의원 193명 중 정계 잔류 '최다'=금배지 뗀 18대 전 의원 193명의 근황을 전수 조사해 본 결과, 역시나 아직 정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67명으로 가장 많았다. 셋 중 하나는 정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셈이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캠프에 합류한 의원들이 많았는데 이에 대해 19년차 보좌관은 "지방선거 경선 후보자의 가닥이 잡히자마자 당내 유력 후보자 캠프에 줄을 대려는 전직 의원들이 줄을 이었다"면서 "자신이 미는 후보가 당선되면 한자리를 약속받는 등 정치권에 재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공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24명. 김성회·김학송·이상권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각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도로공사, 전기안전공사 등 공기업 수장 자리에 올랐다. 이전 경력을 살려 법조계로 돌아간 사람이 9명,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8명이었다. 금융·기업인·방송인 이 각각 4명, 학계에 있는 사람은 6명이었다.

한때 나랏일을 관장했던 이들은 국회의원직을 상실하는 순간 이전에 보장 받았던 혜택과 특권을 모두 잃게 된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달 1000만원가량의 세비를 받는다. 일반수당(646만4000원), 관리업무 수당(58만1760원), 정액 급식비(13만원), 입법활동비(313만6000원), 특별활동비(매월 변동)가 매달 지급되는 돈 외에 1년에 두 차례 지급되는 정근수당(646만4000원), 명절휴가비(775만6800원) 등을 합치면 연간 약 1억3000만원에 달한다.

선거에서 떨어져도 공기업 수장 등 국회의원 못지않게 보수가 좋은 자리로 옮겨가면 걱정이 없지만 그렇지 못한 전 의원은 갑자기 소득이 뚝 끊기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낙선 후 '개인 파산선고'를 하거나 '생활고'를 호소하는 의원도 여럿이다. 지난해 A 전 의원은 개인 파산선고와 동시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여전히 정치권에서 A 전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고 한 보좌관은 귀띔했다.

◆모셨던 분 낙선후 보좌진 1000명도 실업자 신세=의원과 운명을 같이하는 보좌진 역시 당연히 퇴직 처리된다. 의원 한 명당 최소 7명의 보좌진을 둔다고 볼 때 18대 때만 1351명이 실업자 신세가 된 셈이다. 낙선한 의원을 모셨던 한 보좌관은 "내가 쏟았던 열정과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고 생각하니 당시엔 정말 처참한 기분이었다"면서 "이제 다른 일을 찾아봐야 되는데…. 향후 내 삶은 어떻게 되나 등 걱정이 앞섰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국회의원 시절을 잊지 못하고 국회 주변을 배회하는 전 의원들도 있다. 지금도 국회엔 서류 뭉치를 들고 본청 등을 기웃거리는 전직 의원들이 눈에 띈다. 사그라지는 인지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일면식이 있는 기자들에게 나눠주는 의원도 있다.

국회도서관으로 출근하는 전 의원도 있다. 의원직이 종료되면 '국회사무실 관리 규정'에 따라 의원임기가 끝난 날로부터 7일 이내 사무실을 비워줘야 하는데 갈 곳은 마땅찮고 국회도서관에 날마다 얼굴도장을 찍는 것이다. 6년차 한 보좌관은 "18대 B 전 의원이 국회도서관에 자주 나타나는데 그를 목격한 보좌관들끼리 'B 전 의원은 또 왔더라' '도서관에서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 등의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의원직은 반납했지만 국회의원을 한 번이라도 지낸 사람은 자동으로 헌정회 소속이 된다. 다만 초선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할 경우 회원 자격이 박탈된다. 최근 의원직 상실형을 받은 김선동 전 의원의 경우 선거법 위반으로 형이 확정된 것이 아니어서 헌정회원에 남은 경우다.

헌정회 관계자는 "헌정회원은 만 65세 이상부터 매달 120만원씩 헌정회 연로회원지원금을 받는데 헌정회원직이 상실되면 이 같은 혜택마저 못 받게 된다"고 말했다.

[국회 다시보기]10-① 줄 서거나, 떠나거나…금배지들의 各自圖生


◆원로 의원들의 아지트 헌정회관 '기우회'

국회 헌정회관 2층. 복도 어딘가에서 '탁탁' 바둑알 놓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그 소리를 찾아간 사무실에는 '기우회'라는 문패가 달려 있었다. 약 10㎡(3평) 규모의 사무실 안에는 70~80대 노인 5명이 모여 있었다.

"거 누구요?" 홀로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한 어르신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알은체를 한다. 가슴께에 붙인 선명한 '금배지'가 전직 국회의원임을 알려줬다. 그는 13대 국회의원을 지낸 A씨. A 전 의원을 빼고는 아무도 의원 배지를 달고 있지 않았다.

"저짝 양반이 장면 내각 때 의원 지낸 사람이야. 원래 군인 출신이지." A 전 의원이 지칭한 사람은 H 전 의원(88). 바둑시합에 온전히 정신을 쏟고 있는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6·25 때 중대대장을 지냈다. 6·25 전쟁이 끝난 뒤 경북의 한 지역구에서 당선돼 제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A 전 의원은 첫 번째 소파에 앉아 있는 H 전 의원부터 시계방향으로 돌며 " 저쪽 양반이 5대, 그 다음이 10대, 12대, 8대, 13대야"라며 의원과 이름자(字)를 생략하고 소개했다. 평범한 노인들처럼 보이지만 이래 봬도 이들은 5·16 군사정변, 10월 유신, 10·26 사태 등 격동기 때 나랏일을 맡아했던 전직 국회의원들이었다.

후배 의원들은 안 보인다고 하자 "젊은 사람들은 잘 안 와. 보호해 줄 사람도 없고 와봐야 막내 노릇 해야 하잖아"라는 답이 돌아온다. 낯선 이의 등장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선배' 의원들은 긴급 뉴스가 흘러나오자 바둑판에서 눈을 뗐다. 이때다 싶어 '몇 선 지내셨어요'라고 묻자 "몇 선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제대로 된 국회의원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란 질책이 돌아온다.

의원직은 반납했지만 국회의원을 한 번이라도 지낸 사람은 자동으로 헌정회 소속이 된다. 헌정회는 1968년 국회의원 '동우회'가 시초가 된 원로단체다. 현재 이곳에 소속된 회원 수는 19대 의원을 제외하고 1095명. 이 중에서도 나이 지긋한 전 의원들이 주로 찾는 곳이 바로 헌정회관이다. 이곳 2층에 위치한 기우회 사무실은 원로 국회의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다. 주말엔 문을 닫고 평일 오전 9시에 문을 여는데 보통 10시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어느 때는 20여개 남짓한 소파가 꽉 찰 만큼 북적인다고 한다.

"오전에도 열댓 명 계시다가 점심 자시고 가셨어. 자주 안 나오시지만 이재현 의원(97)도 가끔 나오셔." A 전 의원의 설명이다. A 전 의원이 근황을 전한 이 전 의원은 지난달 1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에 따르면 느긋이 아침 먹고 나온 노장들은 바둑을 두고 스크랩한 신문 기사도 돌려보다가 사무실이 문 닫는 오후 6시가 되기 전에 다들 자리를 뜬다고 한다.

한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들이었지만 이제는 '시계'를 볼 필요가 없을 만큼 시간이 가는 것에 무감하다. 기우회 사무실에서 총무 역할을 한다는 A 전 의원은 경남 통영·고성에서 딱 한 번 의원을 지냈다. 한 번 이기고 내리 세 번을 다 졌다.

"4번 출마하고 한 번밖에 몬했거든. 지역구서 한 번 해묵고 그냥 세 번 내리 떨어졌어. 살림 있는 거 다 까묵었지." 오기가 생겨서 선거에 또 나가려고 고집을 부렸다가 자녀 등록금을 꾸러 다녀야 할 만큼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다음에야 재선 도전을 멈췄단다.

갑자기 사무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웃기고 있네, 참나." 내기 바둑을 두다가 승강이가 벌어진 모양이다. 한 판 내준 B 전 의원이 C 전 의원에게 배추 잎 한 장을 건넨다. 그걸 얼른 받아 주머니에 넣는 C 전 의원의 모습에서 국회를 드나들던 시절 권위는 온데간데없고 또래 어르신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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