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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다시보기]10-② 원로의원들의 아지트 헌정회관 '기우회'

최종수정 2014.07.04 15:13 기사입력 2014.06.2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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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선 지냈었나" 묻자 "제대로 된 국회의원이냐가 중요하지"
한번이라도 금배지 달았다면 헌정회 회원
65세 이상땐 매달 120만원씩 지원금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국회 헌정회관 2층. 복도 어딘가에서 '탁탁' 바둑알 놓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그 소리를 찾아간 사무실에는 '기우회'라는 문패가 달려 있었다. 약 10㎡(3평 ) 규모의 사무실 안에는 70~80대 노인 5명이 모여 있었다.

"거 누구요?" 홀로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한 어르신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알은체를 한다. 가슴께에 붙인 선명한 '금배지'가 전직 국회의원임을 알려줬다. 그는 13대 국회의원을 지낸 A씨. A 전 의원을 빼고는 아무도 의원 배지를 달고 있지 않았다.

"저짝 양반이 장면 내각 때 의원 지낸 사람이야. 원래 군인 출신이지." A 전 의원이 지칭한 사람은 H 전 의원(88). 바둑시합에 온전히 정신을 쏟고 있는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6ㆍ25 때 중대대장을 지냈다. 6ㆍ25 전쟁이 끝난 뒤 경북의 한 지역구에서 당선돼 제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A 전 의원은 첫 번째 소파에 앉아 있는 H 전 의원부터 시계방향으로 돌며 " 저쪽 양반이 5대, 그 다음이 10대, 12대, 8대, 13대야"라며 의원과 이름자(字)를 생략하고 소개했다. 평범한 노인들처럼 보이지만 이래 봬도 이들은 5ㆍ16 군사정변, 10월 유신, 10ㆍ26 사태 등 격동기 때 나랏일을 맡아했던 전직 국회의원들이었다.
후배 의원들은 안 보인다고 하자 "젊은 사람들은 잘 안 와. 보호해 줄 사람도 없고 와봐야 막내 노릇 해야 하잖아"라는 답이 돌아온다. 낯선 이의 등장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선배' 의원들은 긴급 뉴스가 흘러나오자 바둑판에서 눈을 뗐다. 이때다 싶어 '몇 선 지내셨어요'라고 묻자 "몇 선인지는 중요 하지 않아. 제대로 된 국회의원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란 질책이 돌아온다.

의원직은 반납했지만 국회의원을 한 번이라도 지낸 사람은 자동으로 헌정회 소속이 된다. 헌정회는 1968년 국회의원 '동우회'가 시초가 된 원로단체다. 현재 이곳에 소속된 회원 수는 19대 의원을 제외하고 1095명. 이 중에서도 나이 지긋한 전 의원들이 주로 찾는 곳이 바로 헌정회관이다. 이곳 2층에 위치한 기우회 사무실은 원로 국회의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다. 주말엔 문을 닫고 평일 오전 9시에 문을 여는데 보통 10시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어느 때는 20여개 남짓한 소파가 꽉 찰 만큼 북적인다고 한다.

"오전에도 열댓 명 계시다가 점심 자시고 가셨어. 자주 안 나오시지만 이재현 의원(97)도 가끔 나오셔." A 전 의원의 설명이다. A 전 의원이 근황을 전한 이 전 의원은 지난달 1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에 따르면 느긋이 아침 먹고 나온 노장들은 바둑을 두고 스크랩한 신문 기사도 돌려보다가 사무실이 문 닫는 오후 6시가 되기 전에 다들 자리를 뜬다고 한다.

한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들이었지만 이제는 '시계'를 볼 필요가 없을 만큼 시간이 가는 것에 무감하다. 기우회 사무실에서 총무 역할을 한다는 A 전 의원은 경남 통영ㆍ고성에서 딱 한 번 의원을 지냈다. 한 번 이기고 내리 세 번을 다 졌다.

"4번 출마하고 한 번밖에 몬했거든. 지역구서 한 번 해묵고 그냥 세 번 내리 떨어졌어. 살림 있는 거 다 까묵었지." 오기가 생겨서 선거에 또 나가려고 고집을 부렸다가 자녀 등록금을 꾸러 다녀야 할 만큼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다음에야 재선 도전을 멈췄단다.

갑자기 사무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웃기고 있네, 참나." 내기 바둑을 두다가 승강이가 벌어진 모양이다. 한 판 내준 B 전 의원이 C 전 의원에게 배추 잎 한 장을 건넨다. 그걸 얼른 받아 주머니에 넣는 C 전 의원의 모습에서 국회를 드나들던 시절 권위는 온데간데없고 또래 어르신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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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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