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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시집 '호야네 말'‥"마포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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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이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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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전화를 걸었다. 아직 방배동 자택을 나서지 않은 시간이다. 이미 깨어난 지 오래 인 듯, 시인은 "귀하고 소중한 말씀" 대신 처연한 목소리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부터 언급했다.

"여전히 멀고도 어둡다. 졸속이 판치는 세상에서 아직도 우리가 응전해야할 것이 많다는 걸 절감한다."
올해 '자유실천문인 101선언' 40주년이다. 현재 이시영은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으로 '한국 작가 40년사', '70년 문학운동사' 등 정사와 증언론을 만들고, 각종 기념행사를 펼치느라 여념 없다. 그런 가운데 최근 열세번째 시집 '호야네 말'(창비 출간)을 펴냈다. 시력 45년, 결코 만만치 않은 열정이다. 후배인 박형준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지금은 결빙(結氷)의 시절('십이월')이라 하더라도 그 찬 샘에서는 끊임없이 뜨거운 김이 올라오고 있다"고 헌사했다.
이시영 시집 '호야네 말'

이시영 시집 '호야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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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오정희씨가 서울 나들이를 위해 춘천 역사에 들어서면 어떻게 알았는지 금테 모자를 눌러쓴 귀밑머리 희끗한 역장이 다가와 이렇게 인사합니다./"오 선생님, 춘천을 너무 오래 비워두시면 안 됩니다./그리고 측백나무 울타리 가에서 서울행 열차의 꽁무니가 안 보일 때까지 배웅한다고 합니다./아, 나도 그런 춘천에 가 한번 살아 봤으면!"('춘천' 전문)"

시인에겐 '강홰년'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며 웃으실 땐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흐르고 양 볼엔 간혹 홍조를 피우시곤 하였다"(낙타교)는 박완서 누님, "이대로 이대로는 절대 보낼 수 없"었(이대로는)던 이문구 형님, "남루를 걸치고 다니다 음식점 입구에서 내쫓기던"(민병산 선생) 민병산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면/풍로를 아예 길바닥에 내놓고 입김 호호 불어가며 밥 지어주던" 아내와 "독립문밖 외로운 아파트"에 살았던(독립문 밖)박정만님들이 맡겨놓은 책무가 있다.

이시영은 '시대의 증인'이다. 진술의 대상에는 어릴적 친구들은 물론 수많은 형님, 누나, 동생들이 포함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언제나 애뜻하고, 눈물겹고, 미안스럽고, 그립고, 아프고, 신산하다. 진술하는 어법은 서사에 서정을 입혀가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시인은 그들의 이야기와 삶을 통해 "세상이 그렇게 빨리 망하진 않을 것"(조춘(早春))이란 걸 발견한다. 이어 스스로 "동구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오래된 팽나무"(정자나무) 아래 "영원한 대지의 자식들"(엣날엔)을 불러 "국경도 없고 경계도 없고 그리하여 군대나 경찰은 더욱 없는"('나라' 없는 나라),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꿈을 끊임없이 설파하고 있다.
그는 이제 한국 현대문학의 근거지인 '마포'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시인에게 있어서도 마포라는 공간은 삶과 문학, 운동의 배후가 돼준 곳이다. 마포에는 문단의 말석에서 1974년 자유실천문인 '101 선언'에 참여한 이후 '창작과 비평'사(이하 '창비')가 들어서고,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이하 '자실')가 입지했다. 창비에선 편집주간, 대표이사로 문예운동과 민주주의 이론의 생산·축적·관리를, 자실이 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로 이어지는 동안 연행과 구금을 반복하며 전위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또한 한시도 창작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시정신의 본령을 지켜왔다.

"시대와의 불화가 정신과 문학을 치열하고 충만하게 했다. 결코 불행한 삶은 아니다. 지금은 자유가 신장되고, 경제가 풍요로와졌다. 그러나 소통 불능이 만연하다. 아직 시인의 책무를 내려놓을 때가 아닌 것 같다."

그런 까닭에 "마포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수사적 표현이기는 하나 그 의미는 간단치 않게 들린다. 시인은 "한강철교에서 서강대교에 이르는 마포강변의 산책길, 작은 풀 포기 하나 기억될 만큼 선연하다"는 말로 마포에 대한 유별스런 애정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이시영은 말한다. "따뜻한 가슴이 없으면 어찌 시를 쓰고, 세상을 아파할 수 있겠는가 ?"

"양들이 조심조심 외나무다리를 건너 귀가하고 있습니다./곧, 저녁입니다."('곧' 전문)

한편 이시영은 194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만월', '바람속으로', '길은 멀다 친구여', '이슬 맺힌 노래', '무늬', '조용한 푸른 하늘', '은빛 호각', '바다 호수', '아르갈의 향기',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등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및 단국대 문예창작과 초빙교수로 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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