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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돈과 예의

최종수정 2020.02.12 11:53 기사입력 2014.04.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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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은 비정하다. 한쪽에서는 전쟁으로 수만의 인명이 희생되고 있는데 이걸 이용해 전쟁 관련주를 사서 차익을 얻는 곳이다. 유조선 침몰로 기름이 유출돼 어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뉴스에 기름 제거와 관련된 종목이 오르고, 방사능이 유출됐다고 하면 방사능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갖가지 종목이 테마를 형성한다.

온 국민을 슬픔과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에도 이런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초기 전원 구조라는 소식이 오보로 밝혀지고,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메신저'를 통해 테마주에 대한 제보가 쏟아졌다. 'S사가 구명조끼 일체형 위성위치 발신기 개발사업의 주관기관이 됐었다' 'B사는 위치추적을 할 수 있는 RFID 칩을 개발한 회사다' 'H사는 세계 1, 2위를 다투는 구명정 회사다' 하는 식의 제보들이었다. 방수케이스폰을 만드는 상장사에 대한 제보도 있었다.
돈도 좋지만 이 판국에 꼭 저런 뉴스를 찾아야만 할까 하는 생각에 심란하던 중 기자실 건너편 자리에서 열심히 보험사를 취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취재 요지는 '보험료를 얼마나 받을 수 있는가'였다. 대형사고가 나면 으레 보험료와 관련된 뉴스들이 나오긴 하지만 막상 옆에서 취재를 하는 것을 들으니 불편했다. 씁쓸한 마음과 함께 내가 보험 담당 기자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웬 보험금 타령이냐는 게 일반적 상식이지만 특종과 낙종에 대한 압박은 이런 상식을 가끔 잊게 만든다. 안타까운 마음에 복잡한 심경까지 겹쳐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기도 전에 습관적으로 제보된 기업들의 주가를 봤다. 대부분 종목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었다. 일부 언론은 관련 특징주를 다루기도 했다.

주식투자의 목적은 누가 뭐래도 수익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도 중요하다. 주식투자만으로 100억원 가까운 재산을 모은 A씨는 '데이 트레이더'지만 그의 원칙 중엔 '남의 불행을 틈타 오르는 주식은 손대지 않는다'는 게 있다고 한다. 그가 험난한 주식시장에서 장기간 승자로 살아남은 건 이 같은 원칙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날 오후 데스크가 "세월호 관련 증권기사는 쓰지 말라"는 지시를 했다. 다른 곳에서도 과거처럼 관련 특징주가 줄줄이 쏟아져 나오진 않았다. 아직 사람에 대한 예의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구나 생각이 드는 순간, 또 젊은 넋들에게 미안했다.
전필수 팍스TV 차장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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