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 연착된 막차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 여성 시인. 팬티만 입고 발톱을 깎으면서 돈을 달라고 하는 노숙자. 팬티에선 더럽게 까만 털이 보인다. 그게 슬그머니 공포를 만들어낸다. 열차가 연착된다는 전광판 문구. 점증하는 불안. '파출소'라는 글자. 여성부 대표전화. 혹시나 해서 펜을 찾는데...아까 노숙자에게 주려고 했던 커피 캔이 호주머니 속에서 만져진다. 그 따뜻함에서 시 구절을 생각해내고 이성부 시인을 생각해낸다. 아까 불안 속에서 봤던 '여성부'라는 글씨가 '이성부'와 닮아있음도 눈치 챈다.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한 건 무엇일까. 시에 대한 심문일까. 아니면 마음 속의 살풍경을 녹이는, 어떤 구원같은 반전일까. 짧지만 강렬한 심리 드라마같은 전개. 낯선 시의 풍경.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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