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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그 많던 자기계발서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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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그 많던 자기계발서가 어디로 갔을까?" 한동안 직장인들의 필수 도서 목록이었던 자기계발서가 시들해진 지 오래다. 힐링류에 밀리고 소설에 채어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하지만 최근 자기계발서가 줄줄이 베스트셀러 상단을 차지해 눈길을 끈다. 인터파크 도서 9월 첫주 e북 동향에 따르면 ▲1위 미루는 습관 버리기(윌리엄 너스) ▲2위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의 기술 ▲5위 나를 위한 행복한 습관 만들기(강상구) ▲6위 스티브 잡스의 본능적 프레젠테이션(정석교) ▲9위 파라슈트(리처드 볼스) 등 10위권 내에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윌리엄 너스의 '미루는 습관 버리기'는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모토로 어떤 일이든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다양한 예시와 함께 30년 이상 임상 경험과 연구를 통해 시간 관리부터 미루는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자기계발서의 영원한 코치로 알려진 데일 카네기의 조언과 아이디어가 담긴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의 기술'은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화술과 사업, 대인관계, 응용 심리학을 적절히 활용한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독차지했던 데일 카네기의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5위에 오른 강상구의 '나를 위한 행복한 습관 만들기'는 '습관에 미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습관을 바꾸기 위한 현실적 노하우를 안내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나를 바꾸고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담고 있다.
정석교의 '스티브 잡스의 본능적 프레젠테이션'은 6위로 잡스의 연설과 프레젠테이션, 편지 등 방대한 자료와 25가지 화술 코드를 중심으로 생동감 넘치는 프레젠테이션을 분석하고 있다.

취업의 바이블로 불리는 리처드 볼스의 '파라슈트'는 9위로 취업과 재취업, 커리어 전환을 필요로 하는 독자들의 실질적 매뉴얼 역할을 제공한다. 단순히 취업을 잘 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계발과 인생진로에 대한 방법을 제시해 큰 화제를 모은 책이다.

이 같은 자기계발서는 한때 재테크서적과 세트로 움직이며 인문사회과학서적, 소설 등을 밀어내고 가장 강력한 출판 트렌드를 이뤘다. 리더십, 직장에서 살아남거나 새로운 트렌드를 읽는 법, 실직에 대처하는 방법, 인생을 리빌딩하는 요령, 디지털환경에 적응하는 방법 등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독자들을 이끌었다.

출판평론가들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자기계발서 열풍이 불기 시작해 세계금융 위기 이후 퇴조한 것으로 분석한다.

당시 기업마다 구조조정, 인력 감축이 횡행하고 멀쩡한 직장이 하루아침에 도산하는 일이 속출하자 직장인들은 퇴근 후 영어학원에 다니거나 별도의 자격증 획득에 열을 올렸다. 또 다른 사람보다 한 걸음 더 노력해 탈락하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시달렸다. 더욱이 '오륙도', '사오정'으로 전락해 생존에 혈안이 돼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생활 속에서 믿었던 선배도 적으로 돌변해 칼을 휘두르고, 함께 입사했던 동료들마저 우군이 될 수 없어지자 의지할 곳은 점차 좁아졌다.

이 틈을 타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멘토를 자청하고 나섰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들이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고, 수많은 저자들이 책을 팔아먹은 책임과 의무를 지지는 않는다. 자기계발서가 마법같은 비급일 리는 없다. 그럼에도 자기계발서 읽기에 대해 이원석 문화연구가는 "극심한 경쟁과 승자 독식이 강화된 사회,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불합리한 사회에 저항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순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근본적으로 자기계발서의 열풍은 '서로 돕지 못 하는' 풍조를 반영한다. 파편화된 개인들이 연대감을 잃은 후 모든 위기 대처법이 '셀프'일 수밖에 없는 탓이다. 넓게는 사회안전망 부재가 한 원인이다. 따라서 자기계발은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안전과 행복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전가시킨 '이데올로기'의 일종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삶을 스스로 경영하라. 남들보다 조금 더 노력하고, 다른 방법을 찾으면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살아남아서 잘 먹고 잘 살자."

자기계발 열풍 안에는 '웰빙'이라는 키워드가 내재돼 있다. 우리 문화시장에서 '웰빙'은 변화와 개혁, 현실에 대한 비판 대신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탐닉하는 이들이 만연한 데서 비롯된 풍조다.

"스스로 경영하려고 노력해도 세상은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다. 노력해도 고통과 괴로움,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더욱 피로하고 우울하며 화를 참을 길 없다.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갖고, 없는 자들은 더욱 궁핍한 세상이다."

자기계발의 열풍을 밀어낸 것은 힐링이다. 그러나 힐링은 자기계발의 연장이다. 웰빙과 힐링은 같은 맥락이면서도 암울한 현실이 더 깊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자'에서 '살아남아도 견딜 힘조차 없다'로 고통이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빈부 격차, 양극화, 불안한 미래, 지도력의 상실 등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선택이 힐링"이라고 설명한다.

잘 먹고 잘 살기는커녕 살아남느라 탈진해 버린 데서 비롯된 영합적인 문화가 '힐링'이다. 곧 탈진한 사람들은 문화, 취업, 관광ㆍ휴양, 여행, 출판, 교육, 정보기술(IT), 음식료, 금융, 의료 등 산업 전 영역으로 스며든 '힐링'을 구입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대가와 비용을 치르고 '치유'해야 하는 사회는 개인에게 불행을 상쇄시켜주지는 못 한다. '웰빙'뿐만 아니라 '힐링', '행복' 등등 근사한 라벨을 붙여진 상품이 '성공적인 삶'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든 자립해서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수많은 '루저'들과 승자들이 생태계를 이루지 못 하고 대결해야 하는 사회가 가장 큰 위기다. 이것은 승자들에게도 최악의 위협이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삶을 포기하는 것도 어려운' 사람들이 최후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승자의 영역을 파괴하는 방법이다. 어느 사회든 붕괴는 내부에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더 깊이 성찰해야 하는 까닭이다. 스스로 돕는 데서 서로 돕는 삶으로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직장인들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출판계가 답을 내놓기 전에 독자들이 새로운 인문적인 태도를 갖출 때 변화가 가능해진다. 자신의 존재를 보다 폭넓게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책 읽기가 요구된다. 그런 측면에서 자기계발서를 대하는 독자의 깊이 있는 성찰이 절실하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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